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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몰수당한 재산 되찾을 수 있을까? ②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북한에서 몰수당한 재산 되찾을 수 있을까? ②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지난 글( ▶ 북한에서 몰수당한 재산 되찾을 수 있을까? 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에서 몰수재산 처리 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와 동구 사회주의권 사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통일 이후 북한에서의 몰수재산 처리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몰수재산 반환 쉽지 않아

북한 정권이 해방 이후 몰수한 재산을 지금에 와서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먼저 원론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북한 정권에 땅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땅을 반환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를 떠나 북한 정권으로부터 강제로 몰수된 땅을 원주인에게 찾아주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볼 때, 북한 정권의 불법적인 몰수 행위를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법치국가의 의무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할 경우 북한 정권의 과거 조치는 적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몰수재산의 원소유자 반환 문제는 이런 법적인 차원을 떠나 정치경제적 차원의 고려도 필요해 보입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원소유자 반환은 북한 주민들의 70년 간의 삶을 부정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남북 분단이 70년이 넘어 북한 주민들 나름대로 삶을 꾸려온 지가 오래됐는데, 이제 와서 남한 사람들이 북한 지역의 땅을 다시 찾겠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그동안의 삶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어떤 맥락 하에 살아왔던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이 있는데, 이를 부정하고 70년 전의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거부감을 줄 수 있는 행동입니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한이 한반도에서 또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엄연히 존재해 왔고 우리 정부도 북한을 상대로 여러 정치적 행위를 해 왔던 만큼, 북한이 한 행동들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무효화시키는 것이 반드시 타당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지역의 옛 땅을 반환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통일 이후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낙후된 북한 지역을 어떻게 재건하느냐가 될 것입니다. 재건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든 기업이든 재건 작업을 담당할 주체들이 북한 지역으로 신속히 들어가 현지 실사와 건설 등의 작업을 진행해야 할 텐데, 해당 지역의 소유권 문제가 명확치 않으면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옛 땅을 찾겠다고 들어가 현지 주민들과 소유권 분쟁이 생기게 되면 그 지역에 대한 재건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독일, 몰수재산 반환 정책으로 223만 건 소송

독일은 통일 이후 원소유자 반환 원칙에 따라 구동독 정권이 몰수한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정책을 택했는데, 이로 인한 토지 소유 관련 분쟁으로 무려 223만 건의 부동산 반환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소송에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가 소비됐음은 물론 토지 소유 관계가 장기간 미해결된 상태로 가면서 토지 활용과 도시개발 등 전후 동독 재건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됐습니다.

결국 독일 정부는 일자리 확보나 창출, 주거 공간 확충이나 투자 등에 필요할 경우 재산권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투자를 우선하도록 하는 '투자우선법'(재산권 반환청구시 투자우선순위에 대한 법, 1992년)을 제정해야만 했습니다. 체코의 경우도 원소유자로의 재산 반환 원칙을 채택했는데, 소유권 분쟁이 급증하면서 지역 개발과 투자 유치를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북한 내 소유권 확인 어려워

북한 재산의 원소유자 반환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북한 내 소유권 확인이 어렵다는 점에 있습니다. 북한은 1946년 토지개혁을 추진하면서 소유권을 표시했던 등기부를 모두 소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등기부와 지적도 등이 일부 소각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으나, 6.25 전쟁을 거치면서 관련 문서들이 상당 부분 소실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북한에서 농업집단화가 이뤄지기 전까지의 소유상황을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사라진 셈입니다.

북한은 이 밖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토지정리 사업을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을 깎아 밭을 만들고 소규모 농지들을 대규모 협동농장으로 통합하는 작업 등을 통해, 예전 토지형태와 다른 형태로 토지의 모양이 변형된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분단 70년이 지난 상황에서 예전의 토지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시 말해, 문서도 남아 있지 않지만 문서가 남아 있다 한들 그 문서로 예전의 토지를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북한 마을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 지역의 재산을 남한의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반환 대신 상징적인 보상으로

그렇다면, 북한에서 토지를 몰수당하고 내려온 사람들의 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상 대대로 북쪽 지역의 고향에 살면서 터전을 가꿔왔던 사람들에게는 통일 이후에도 몰수된 재산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박탈감을 고려해 상징적인 수준의 보상은 검토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사회주의 성립 이전의 옛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반환하지 않고 상징적인 보상을 하기로 한다면 그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통일헌법에 원소유자 반환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추상적으로 포함시키거나 특별입법, 대통령 긴급명령 등의 형식으로 향후 생길 수 있는 법적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옛 재산을 찾지 못한 실향민들이 사유재산권이 침해됐다며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인 보상을 하더라도 무엇을 근거로 보상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보상의 근거가 되는 증빙자료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등기부를 모두 소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북한 내에 증빙자료가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현실적으로 남아 있는 증빙자료는 실향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올 때 가지고 온 옛 집문서, 땅문서 밖에 없을 것인데, 이런 자료는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잃어버린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으로 소유관계를 인정하는 인우보증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이미 70년이나 지난 소유관계에 대해 사람들의 증언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결국, 증빙자료는 문건으로 존재하는 것만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70년 전의 문건인 만큼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작업도 신중히 이뤄져야 합니다. 보상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최대 상한선에 해당하는 금액도 그리 크지 않게 한다면 논란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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