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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험지서 국민 안전 지키다 감염…청해부대, 당당히 입국하시길

현재 아프리카 모 항구에 정박 중인 문무대왕함

아프리카 해역에 파병됐던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장병 총원 301명 가운데 82%인 247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고, 나머지 음성과 판정 불가의 54명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악의 집단 감염입니다. 현재 함장부터 막내 수병까지 지친 몸 이끌고 공군 공중급유기편으로 귀국하고 있습니다. 오늘(20일) 오후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합니다.

왜 집단감염됐고 대처가 늦었는지, 백신과 항체진단키트는 왜 보내지 않았는지를 두고 말들이 참 많습니다. 집단 감염과 늦은 대처에 대한 비판은 청해부대를 향한 것입니다. 백신과 항체진단키트에 대한 비판은 국방부, 합참, 해군 등 군 지휘부가 짊어질 몫입니다.

사실, 파병 함정에 백신과 항체진단키트를 보내지 못한 과정은 이해할만한 구석이 제법 있습니다. 지금 와서 되짚어 보니 100% 완벽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애는 썼는데 허점이 있었습니다. 손 놓은 무방비는 아니었습니다.

청해부대 34진은 긴급 명령을 받고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작전을 하던 중 감염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상당히 열악한 작전구역으로 긴급히 이동해 국민 보호 임무를 수행하다 감기 환자에 이어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실수가 있었다 한들 그들을 힐난할 수는 없습니다. 청해부대원들은 어깨 펴고 머리 들고 당당히 입국할 자격이 있습니다.

문무대왕함 귀환 작전에 투입된 해군 요원들이 문무대왕함의 선실을 방역하는 모습

낯설고 열악한 지역에서 국민 보호 임무 중 감염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은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아프리카의 한 항구에 기항했습니다. 식품, 식수 등을 보급 받았습니다. 기항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덴만의 청해부대 모항 무스카트가 아닙니다. 아덴만에서도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대단히 열악한 지역입니다. 우리 국민 보호 임무를 띠고 긴급 출동한 곳입니다.

물자 선적 중 방역에 신경 쓴다고 썼겠지만 기항지의 환경상 역부족이었고, 결국 함정은 바이러스에 뚫린 것으로 보입니다. 7월 2일 첫 감기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청해부대는 합참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골든타임 8일을 허비한 뒤 7월 10일 감기 환자가 속출하자 합참에 보고했습니다. 그렇다고 제때 보고 못한 청해부대를 탓하는 것은 야박합니다.

7월 2일 환자는 약을 처방했더니 금방 호전됐다고 합참은 설명했습니다. 해군 관계자는 "여름철 함정의 감기는 흔한 일인데 약으로 쉽게 치료되니 대수롭지 않게 여긴 면이 있다"며 "7월 10일 감기 환자가 늘어나니까 그때야 사태의 엄중함을 파악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은 국가의 명에 따라 험한 곳으로 급파돼 국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아덴만에만 머물렀다면 감염은 없었을 것입니다. 7월 2일 감기 환자를 코로나19의 전조로 알아차리지 못한 실수는 그들의 헌신을 한 치도 범할 수 없습니다. 임무 수행 중 전염병에 감염된 청해부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합당한 처사입니다.

청해부대 34진을 태우고 아프리카를 이륙하는 공군 공중급유기

유독 청해부대에만 백신 공급 안 된 이유는

국방부와 질병관리청은 지난 봄 해외 파병 부대의 백신 접종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협의 결과는 "백신의 해외 수송, 접종 관리 등을 고려했을 때 파병 장병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주둔국이나 유엔이 제의할 경우 접종은 가능하다"입니다.

그래서 유엔평화유지군의 일부인 한빛부대는 유엔 협조로 백신을 접종했습니다. 아크부대는 파병을 요청한 주둔국인 UAE가 제공한 백신을 맞았습니다. 유엔 소속도 아니고 주둔국도 없는 청해부대는 백신 협조를 받을 나라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군이 어떻게든 백신을 보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군인에 대한 접종이기 때문에 제약사와 협의해서 백신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청장은 "비행기를 통해서 백신을 보내야 하고, 백신 유통에 대한 문제 등이 어렵다고 판단돼 백신을 공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군이 만약의 사태를 상정해 청해부대 백신 공급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운 것이지, 그렇다고 군을 매도할 일도 아닙니다.

청해부대가 2월 초 출항할 때 가져간 항체검사키트도 말썽입니다. 항원검사키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청해부대가 출항할 때는 항원검사키트 사용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청해부대가 항체검사키트를 사용한 이유입니다.

항원검사키트의 사용 허가는 지난 4월 떨어졌습니다. 그 때라도 청해부대에 보냈으면 좋았을 것을, 군은 보낼 생각을 안 했습니다. 보냈다면 현지 병원 도움으로 유전자증폭(PCR) 샘플 검사하기 사흘 전에 코로나19 창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군이 청해부대를 방치한 처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 좋은 제품을 안 보낸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청해부대원 82%가 집단 감염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습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책임은 군 지휘부에 있습니다. 비판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나름 한다고 했는데 구멍이 뚫린 지금 같은 경우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애정 어린 비판이 더 어울립니다.

그리고 험한 곳에서 임무에 헌신하다 감염된 청해부대 34진 301명을 기다리는 것은 오롯이 위로와 경의, 박수이어야 합니다. 오늘 오후 당당히 서울공항 활주로에 발 내딛는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절대 머리 숙이지 마십시오. 속히 바이러스 털어내고 문무대왕함에 다시 오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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