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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도 커졌어요!…오진영 '새엄마 육아 일기' [북적북적]

아이가, 나도 커졌어요!…오진영 '새엄마 육아 일기'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0 : 아이가, 나도 커졌어요!.. 오진영 '새엄마 육아 일기'
 
스무 살의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꿈을 향해 더욱더 가열차게 달려라"는 아니다. 그보다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너무 자신을 미워하지 마라"이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 일생에 한 번뿐인 가장 눈부신 청춘 시절에 한국에서 대학 교수되긴 다 틀린 게 너무 원통하고 절망스러운 나머지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서 싸구려 포도주만 마시고 있었던 그때의 나에게 가서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까지 불행해하지 않아도 되니 일어나서 쇼핑이라도 하러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여름의 한 복판이자 올해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지금. 내 인생 전체에서 보면 지금은 어디쯤일까요. '100세 시대'라니 아직 전반도 지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마무리할 때가 그리 머지않은 건지... 전체 인생에서 한 40%? 아니면 70%? 그런 걸 알 수 있다면 꽤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는 것 또한 자연스럽겠죠. 최근 올 상반기를 돌아봤던 것처럼요. 이제까지는 어떻게 살았고 남은 인생은 무엇을 해야 할까, 버킷 리스트 중 꼭 해야겠다 싶은 걸 선별하고 그렇게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할 듯싶습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도, 일종의 정리에 관한 책입니다. 제목처럼 육아 일기이긴 한데 실은 이 '육아'라는 프리즘을 통해 돌아본 내 삶 일기 - 오진영 작가의 <새엄마 육아 일기>입니다. 오 작가는 포르투갈어 번역가로 여러 편의 포어 소설을 번역해 낸 바 있는데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닌 첫 에세이집입니다.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나이 마흔에 다다라 재혼하면서 남편이 데려온 여덟 살 아이의 새엄마가 됐고 17년 간 그 아이를 키운 육아 일기"라고 하겠습니다만,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한다면 "그렇기는 하지만..." 하면서 그 이상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들어갈 겁니다.
 
나는 서른아홉 살에 결혼하여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 후 주위 친구들에게 "나 이제 엄마 됐어. 아들은 여덟 살이야."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는 표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딱 한 명, 이렇게 말해줬던 친구가 있었다.
"어머 횡재했네! 완전 날로 먹었잖아!"

...
아들이 나를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 너무 좋아 심장이 통통거리며 나대던 기분이 바로 심쿵이었다.
그날 아들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갑자기 그간의 모든 사정을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아들은 본능적인 지혜로 누군가에게서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뿐이었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는 걸 타고난 현명함으로 알았던 거였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줄 안다는 건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자산인가.
-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당시 내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 돌아와서 다른 길을 찾았어도 크게 늦지 않았을 나이였건만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났고 미래가 없어 보였다. 나는 잘난 척하면서 남들 안 가는 브라질로 유학을 왔다가 인생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은 머저리였고 남들 다 들고 귀국하는 박사 학위를 못 딴 무능력자였다. 창피하고 망신스러워서 도저히 얼굴을 들고 대한민국 땅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브라질에서 이혼하고 돌아오다>

어느 정도 살아보니 딱 그대로 경험하진 않았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이를테면 작가가 젊어서 겪었던 좌절의 경험들이 그렇습니다. 제 버전으로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썰을 풀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육아라는 영역은 그런 차원이 아닌 데다 더군다나 '제가 낳은 자식이 아닌데 어떻게..' 하고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편견이겠다 싶었습니다. 새엄마, 의붓자식, 재혼 가정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 왜 그랬냐고 굳이 따지지는 않잖아요? 그냥 그런 거니까요.

오히려 더 놀라웠던 건 작가가 고백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좌절의 경험을 자기 자식에게 부정적으로 투사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는 걸 우리는 직접 혹은 간접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실현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건 꽤 흔한 서사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경험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내 눈에 비친 엄마는, "나는 어쩌다 보니 세상에 너희를 내놓아서 그 책임을 져야 하니 너희를 열심히 키우기는 한다만 자녀의 양육이란 벗어나고 싶은 일종의 형벌 같은 것이란다"라고 잊을 만하면 큰소리로 짚어주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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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결혼을 했던 삼십 대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그렇게까지 불행한 일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반대라는 사실을. 우리 엄마도 결코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우리를 키우면서 아주 많이 행복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내가 어느 날 덜컥 여덟 살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였다.

...
내가 열심히 보살펴준 아홉 가지는 당연하게 여기고 다 잊어버리면서 내가 미처 못 챙겨준 한 가지만 기억하며 노여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또 깨닫는다. 나도 그랬을 거라고. 엄마가 베풀어준 아홉 가지는 제쳐두고 한 가지만 오래 끌어안고 살았던 거라고.
-<미처 몰랐던 엄마의 사랑을 알게 해 준 아들>
 
너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단다. 네가 살아갈 험한 세상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내 마음속에서 혼자만 감당하고 그 불안을 네 앞에 드러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엄마는 언제나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칭찬하고 자랑할 것이다. 너도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엄마가 원하는 거니까.
-<처음으로 받은 어버이날 꽃바구니>

잘은 몰라도, 육아라는 건 아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자기도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상호작용일 테니까요. 회사에서도 처음엔 후배나 말단 직원으로만 배우고 혼나고 경험하다가 하나씩 직위가 올라가고 책임이 더해지면서 선배나 팀장, 관리자의 입장을 알게 될 때 그러하듯이,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로서 나도 자라지 않았을까요. 이 책에서 십칠 년 세월 동안 여덟 살 아이가 스물다섯 살 청년으로 장성하는 모습을 읽지만 그와 함께 서른아홉 청년이 쉰여섯 살 장년으로 성숙하는 과정 또한 읽을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부모가 아닌 이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은 그런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무 살 시절뿐만 아니라 어쩌면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해도 될 완벽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여기면서 그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다 세월을 보내는 건 아닐까.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는 완벽한 타이밍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니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결심할 테다.
-<내가 아닌 내가 되려 하지 말자>
 
우리 사는 세상에는 완벽하지 않은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는 불화와 갈등을 부각시키는 부정적인 낙인이 많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약하고 여린 존재에 대한 따스한 온정과 배려, 애틋한 연민과 공감이라는 긍정적인 감정도 많다. 부정적인 낙인은 부지런히 내려놓고 긍정적인 감정은 서로 열심히 부추기고 띄워주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이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을 더 넓게 여는 작은 손짓이 되었으면 좋겠다.
-<맺는말>

*출판사 눌민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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