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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동생 살해 뒤…석연치 않은 부모의 죽음, 그리고 화재

[취재파일] 동생 살해 뒤…석연치 않은 부모의 죽음, 그리고 화재

남은 의혹들, 서울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이 검토

한성희 기자 chef@sbs.co.kr

작성 2021.07.16 13:36 수정 2021.07.16 20: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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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동생 살해 뒤…석연치 않은 부모의 죽음, 그리고 화재
"의심을 해야 돼. 부모가 건강했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됐잖아. 의심을 해서 재조사를 해야 돼."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음식점. 기자와 만난 음식점 주인 A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혀를 찼다. 지적장애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형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 '이게 몇 번째일까?' 말을 잇는 A 씨 앞에 서 있는 기자의 머릿속엔 비슷한 주장을 한 여럿의 목소리가 스쳤다.

20명. 형제의 친척, 형의 지인과 동생의 친구…. 동생을 살해하고 허위 실종 신고를 했다가 발각된 남성을 둘러싼 열흘간의 취재 과정에서 기자와 마주 앉거나 길게 통화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유사한 의심을 털어놨다. 4년 전 하루 간격으로 일어난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수상하단 거였다.

동생을 살해한 게 탄로 난 44살 이 모 씨가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어떻게 한 게 아닌가' 하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은 의심들. 리포트엔 미처 담지 못한 내막을 그냥 묻어야 할까, 고민하다 이렇게나마 취재의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지적장애 동생죽인 형











 

드러난 허위 실종 신고와 살해

"지적장애 2급인 동생이 집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영화를 본다면서 오후 3시쯤 나갔는데 저녁 7시부터 전화도 안 받고요."

지난달 28일 오전 2시 50분쯤, 이 씨는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동생의 인상착의와 말이 어눌한 등 특이점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실종 신고로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하지만 하나둘 형의 진술이 거짓말임을 확인하고 다음 날인 29일 오후 형을 긴급체포했다. 연락이 두절됐다던 시간에 동생을 차량에 태운 이 씨가 서울 용산 모처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렌터카로 차량을 바꿔치기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CCTV엔 바꿔 탄 차를 몰고 경기 구리시의 한 강변으로 향하는 모습도 담겼다.

동생의 시신은 경찰이 형을 체포하기 1시간쯤 전인 29일 오후 2시 30분쯤, 서울 강동대교 북단에서 발견됐다. 행인이 "물에 남성이 숨진 채로 떠 있는 거 같다"고 신고했다. 형의 차량이 멈춘 강변에서 약 1km 떨어진 지점이었다.

부검 결과 동생의 시신에선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형의 휴대전화와 PC를 압수해 디지털포렌식한 결과 형이 '마취' 등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본 사실도 드러났다. 범행 며칠 전 형이 다량의 수면제를 지인으로부터 구한 점도 밝혀졌다.

형은 계속된 경찰 조사에서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여러 증거를 앞세워 혐의를 살인으로 최종 결정해 이 씨를 서울중앙지검으로 구속 송치했다.

경찰이 주목한 범행 동기는 4년 전 부모가 남긴 약 40억 원 상당의 유산이었다. 유산을 나눠 가져야 하는 동생을 없애버리기 위해 실종으로 포장해 동생을 살해했단 것. 여기까지는 SBS가 <8뉴스>에서 잇달아 전한 보도의 요약이다.

지적장애 동생죽인 형











 

4년 전, 석연치 않은 부모의 죽음

"멀쩡했던 사람이 둘 다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말 그대로 초상집이죠. 부부가 같이 사진 걸린 건 처음 봤어요. 영정사진이 나란히 있는 걸 처음 봤다고…."

이 씨 형제의 아버지와 오랜 친구 사이라는 B 씨는 통화 너머로 허망해했다. B 씨 등 지인을 비롯해 4년 전 건강했던 부부를 잘 알던 신당동 주민들 사이에선 갑작스런 죽음 뒤 여러 말이 오갔다고 한다.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도 취재해주세요.' 이달 2일 허위 실종 신고에 주목해 사건을 최초 보도한 뒤 SBS 제보 창구로 여러 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엔 '부모의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형제의 친척도 있었다. 그는 "부모가 갑자기 죽고 상속이 이뤄진 뒤 의혹을 제기하는 구성원이 있어 가족 사이도 소원해졌다"고 전했다.

형제의 아버지는 2017년 6월 숨질 당시 69세였다. 어머니는 65세였다. 2명 모두 별다른 지병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고 한다. 친척을 포함해 복수의 이들이 기억하는 부부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전언에 기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형제와 부모는 자택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를 마셨다. 아버지가 "오늘따라 술맛이 쓰다"는 말을 했다고, 이번에 숨진 동생은 주변에 말을 했다. 또 동생은 (이 글의 A 씨에게) "저녁자리에서 형과 아버지가 돈 문제로 다퉜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쓰러졌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의식불명 상태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심폐소생술을 해 잠시 의식을 깼다가 이내 다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입원 며칠 뒤 형은 친척들에게 "아버지에게서 호흡기를 떼어 내겠다"고 했다. "몇 달도 아니고 며칠이 됐다고 그러느냐"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던 중 병원을 지키던 어머니는 여분의 옷을 챙기러, 또 친척의 "잠시 가서 눈을 붙이라"는 말을 듣고 밤늦게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동생이 집에 가서 욕실에 숨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현장에선 컴퓨터로 작성해 뽑아둔 유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하루쯤 뒤 아버지도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원인 모를 불…방화미수 전력

지인들은 가뜩이나 씀씀이가 헤펐다는 형 이 씨가 유산 상속 뒤 '더 돈을 펑펑 썼다'고 했다. 한 지인은 "(상속으로) 재력이 생긴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둘렀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직후 50평이 넘는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했다. 이들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식당에서 불이 나서 보상을 받은 것도 미심쩍다"고도 했다.

서울 중구청에서 몇 달간 계약직으로 일한 것 말곤 줄곧 직업이 없었다는 형 이 씨는 부모가 세상을 뜨기 전 서울 지하철 3호선 약수역 근처에서 2층짜리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은 형제의 부모가 형 이 씨 명의로 차려준 것이었다고 한다. 명의는 형 앞으로 돼 있었지만 이 씨의 어머니가 장을 봐 찬을 내는 등 운영을 도맡았다. 그랬던 가게에서 어느 날 원인 모를 큰불이 났다. 이 씨의 지인 C 씨는 "화재보상금을 6천만 원인가 받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다른 지인 D 씨는 "운영하던 식당에서 불이 나 보험금을 탄 게 한 번이 아닌 걸로 안다"고도 했다.

이번 수사에서 경찰은 형 이 씨가 과거 방화 시도로 징역을 살고 나온 데 주목했다고 한다. 이 씨는 18살이었던 1995년, 집에 불을 지르려 했다가 현주건조물방화미수 등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불을 지르려 했던 집엔 이 씨가 좋아했던 여성과 사귀고 있던 이 씨 친구의 형이 살고 있었다. 이 친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불이 크게 날 뻔했지만 빨리 잡혀서 실제 피해가 크진 않았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소년범이었던 이 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징역 장기 3년에 단기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씨는 항소했고, 이듬해 1월 2심에선 술을 마시고 범행 했단 이유로 장기 2년, 단기 1년 6개월로 감형돼 형이 확정됐다. 경찰이 주목한 건, 10대 때부터 전력에서 드러나는 형 이 씨의 목적을 이루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모가 아니었을까?

형에게 죽임당한 지적장애 동생











 

쉽지 않을 재수사…"그렇지만"

SBS는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여러 확인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을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울 중부경찰서로 알렸다. 대부분은 경찰 역시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것들이었다. 경찰서 담당자는 "이미 수년이 지나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설령 뭔가 있었다고 해도) 입증이 어렵다"고 답했다. 검찰로 넘기기 전 조사에서 부모의 죽음에 대해 물었지만 이 씨는 범행 가능성을 부인했다고 한다.

과연 재수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4년 전 병원에서 숨진 아버지와, 자살로 종결됐을 어머니에 대해선 당시 부검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건 주변인들의 증언뿐이다. '이춘재 살인사건'의 이춘재처럼 자신의 입으로 자백하지 않는다면 입증은 어렵다.

그렇지만, 남은 의혹을 밝혀야 한다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역시 수사기관밖에 없다.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 씨를 찾아가 만날 수 있는 건, 또 강제수사를 동원해 이런저런 증거를 모을 수 있는 건 수사기관의 고유 권한이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 씨를 검찰로 넘긴 이후 남은 의혹을 그대로 묻지 않고 서울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으로 보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정식 수사나 내사에 착수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서류를 넘겨받아 의심이 드는 부분이 없는지 검토하는 단계에 있단 취지다.

따라서 이 사건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한 목소리로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죄가 아닌 걸로 드러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의심을 해서 의심이 풀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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