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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법조인이 대통령 되려면 '법조 근성' 탈피하라

[깊은eye] 법조인이 대통령 되려면 '법조 근성' 탈피하라

'대쪽'과 '불타협' '강직'은 정치의 장애 요소

고철종(논설위원) 기자 sbskcj@sbs.co.kr

작성 2021.07.16 11: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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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깊은eye] 법조인이 대통령 되려면 법조 근성 탈피하라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출신 직업을 살펴보면 단연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관료나 언론인, 기업인 출신들도 상당수지만 법조인이 비율 면에서 가장 높다.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해보면, 관료나 기자를 포함한 다른 직종이 정치를 하려면 아예 그만두거나 사실상 기존 생업을 포기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변호사 자격증이라는 마지막 보루를 가지고 있는 데다, 선거에서 낙마하더라도 얼굴을 알릴 수 있어 그만큼 사건 수임 등에서도 유리하기에 손해 볼 게 없는 선택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참여자적 직업군과 관찰자적 직업군으로 편의상 나눠본다면, 참여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기존의 것을 지속 가능하게 가꾸고 키우는 역할을 한다. 그에 비해 관찰자는 참여자의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결과를 관찰하면서 참여적 행위가 잘 이뤄지도록 지적하고 그것을 해치는 행위를 징벌하는 역할을 한다.

전자에는 기업가나 예술가, 크고 작은 자영업자 등이 포함될 것이고 후자에는 언론인이나 교수, 법조인이 해당될 법하다. 관찰자들은 매서운 지적과 잣대로 참여자의 영역을 관찰하고 지적하며 규율하지만, 정작 참여자의 내밀한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잘근잘근 지적질하던 관찰자에게 참여자의 역할을 맡기면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법조인은 관찰자이면서도 공권력을 가진 징벌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원고와 피고를 구분하고, 누군가는 이기고 져야 하는 송사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며, 징벌의 정도를 결정한다.

법조인이 가진 공권력의 힘의 바탕은 법률이다. 그런데 이 법은 주로 기존 질서와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이기에, 새로운 것의 창조나 합의 및 조율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존경받는 대쪽 같은 판검사와 정의로운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과거 지향적이고 융통성 없는 원리원칙 중심의 직업 근성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직업 근성은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국가 운영의 비전을 창조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만드는 활동이다. 또, 필요하다면 법률 제정을 포함한 새로운 질서도 창의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가장 창의적인 역량과 소통의 능력이 필요한 참여자의 영역이다.

모든 대상을 선과 악, 원고와 피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려면 숙성과 적응단계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지 않고 바로 국회에 들어가 입법자가 되는 사례가 많아지면, 사회의 창의성과 활력을 북돋우는 입법보다는 징벌과 억제, 통제를 위한 과잉입법이 난무하게 된다. 또 상대편과의 조율과 합의가 필요한 정치적 과제가 수시로 고소나 고발을 통해 사법적 판단에 맡겨지는 '정치의 사법화'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법원 판사 판결문 (사진=픽사베이)
또, 법조 근성을 벗지 못한 정치 리더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갈등의 조율을 통한 통합의 절차는 사라지고, 국민들이 진영을 갈라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때까지 싸우는 극한 대치의 상황이 조장될 수 있다. 그러기에 혹자는 법조 근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정치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과거 지향적 '적폐 청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어떤 직업보다도 법조인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숙성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 리더에 도전하는 많은 법조인들은 그들이 법조계에서 존중받았던 그 캐릭터가 오히려 정치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염려를 가져야 한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과 대쪽 같은 성품은 정치를 할 때는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 원리원칙도 중시하되, 때에 따라서는 융통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가 원하는 정치의 기술이다. 재판에서 승소하거나 패소하는 것처럼, 어느 한쪽이 완전히 이기거나 질 때까지 항소하고 상고하는 쟁송의 정치행태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법조 근성이 때로 책임회피로 나타날 수 있는 부분도 경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대형재난에 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할 상황에서 "내가 책임질 테니 모든 역량을 동원해 시행하라."가 아니라, "당신네 부처의 권한을 최대한 동원해 완벽하게 수습하기를 바란다."며 이른바 유체 이탈적 화법을 쓰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법조인으로서는 합당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틀린 화법이다.

정치 리더가 이런 화법을 자주 쓴다는 것은 포괄성을 경계하고 명확성과 구체성을 존중하는 법률의 속성을 빌미로 '포괄적 지시의 책임'을 벗어나려는 의도로 읽힌다. 때로는 국민을 웃고 울릴 수 있는 웅변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말실수를 우려해 검증된 내용만을 읽어 내리는 것 역시 그렇다.

관찰자로 살아온 사람들, 특히 관찰자이면서 권력을 가진 징벌자로 살아온 정치 지망생은 본인의 뛰어난 학습 능력을 장점으로 삼아, 속성으로든 아니면 선배 정치인의 핵심 노트라도 전달받든, 정치의 본질을 빨리 습득해야 한다. 대권 도전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수많은 전문가 집단을 수시로 만나는 것도 법조 근성이 지닌 약점을 빨리 극복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법조 출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나 여당의 익히 알려진 법조 출신 대권주자들 역시 여전히 법조 근성으로 대권에 도전하고 있지 않나 돌아봐야 한다.

그쪽 분야에서는 존경받을 만한 대쪽 같은 법조인들이, 정치인으로의 충분한 우화(羽化)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너도나도 '투사형 대권주자'로 나서게 된 작금의 정치 현실이 많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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