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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출가스 위조' BMW가 환경부에 승소, 사실은?

배출가스 위조는 이미 재판 확정…번지수 틀린 과징금에 사태 지연

[취재파일] '배출가스 위조' BMW가 환경부에 승소, 사실은?
BMW가 환경부를 상대로 낸 '과징금 처분 취소' 행정 소송에서 원고 측인 BMW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했다는 소식이 7월 2일 언론 보도로 전해졌습니다. 당초 환경부가 부과한 과징금 628억 원 가운데 90%가 넘는 584억 원에 대해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온 만큼 언론이 BMW의 '승소', 혹은 '사실상 승소' 이런 제목으로 보도한 게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 보도를 접한 뒤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징금 90%를 취소하라는 건, 수년 전 언론이 떠들썩하게 보도했던 'BMW 배출가스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이 사실과 다른 것 아니냐는 겁니다. 당시 환경부의 조사 결과에 큰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의문인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BMW의 시험성적서 위조 문제는 검찰의 기소를 통해 지난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배출가스 관련 인증 서류를 위조하고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혐의로 전·현직 BMW 임원들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습니다. 벌금도 145억 원이 부과됐고요. 앞서 1심 형사재판에선 위조에 직접 가담했던 직원들이 법정구속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BMW 실무자들의 증언을 통해 인증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다른 차종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따라서 BMW 인증 서류 위조 문제는 그 실체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분명히 드러났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형사 재판과 별도로 BMW가 제기한 행정 소송은 어떻게 된 걸까요? BMW가 사실상 승소했다는 행정 소송의 1·2심 판결의 주된 취지는 과징금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여러 처분 조항 가운데 환경부의 선택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겁니다. 해당 규정을 찬찬히 보겠습니다. 대기환경보전법상 자동차 인증과 관련된 처벌 조항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56조 1항 1호는 '인증을 받지 아니하고 차량을 제작 판매한 경우'에, 2호는 '인증 내용과 다르게 차량을 제작 판매한 경우'에 적용합니다. 환경부가 부과한 과징금 628억 원은 위 1호 적용 부분과 2호 적용 부분으로 둘로 나뉩니다. 과징금 584억 원은 인증 서류 위조 혐의를 받은 28개 차종 8만 여대에 대한 과징금이었고(1호 규정), 나머지 44억 원은 변경 인증 미이행 혐의로 3개 차종 4천600여 대에 대한 과징금입니다(2호 규정).

환경부

이 가운데 소송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1호 규정에 따른 과징금 584억 원 부분입니다. 환경부는 BMW가 거짓 인증으로 인증이 취소되면 인증을 받지 아니한 것과 동일하다며 1호 미인증 규정을 적용해야 옳다는 주장입니다. 1호 규정이 2호에 비해 과징금을 더 높여 강도 높은 처분이 가능하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자동차 메이커의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던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1·2심에서 공히 "제1호에서는 인증을 받지 아니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인증에 아무런 하자가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며, 과징금 처분 사유의 내용 자체로도 형식적으로나마 인증을 받은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재판부는 "인증이 취소돼 법적 효력이 상실되더라도 인증을 받았다는 객관적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를 처음부터 인증을 받지 아니한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며 584억 원 과징금 처분이 위법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서 "해당 처분 대상이 된 행위는 '2호'의 인증과 다르게 차량을 제작 판매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1호 규정을 적용할 게 아니라 2호 규정을 적용했어야 맞는데, 환경부가 규정 적용을 잘 못 했다는 겁니다. 다만 재판부는 "그러나 환경부가 제1호를 처분사유로 삼은 만큼 이 소송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이렇게 형사 및 행정 소송을 둘러싼 그간의 맥락을 따져보면 BMW의 일부 '승소'가 배출가스 인증 위조에 대한 면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환경부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갈지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환경부가 재항고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와 584억 원 과징금 취소가 확정되면 이 사건이 끝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환경부가 BMW에 대한 새 과징금 재부과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1·2심 결과대로 확정될 경우 1호 규정 대신 2호 '인증받은 내용과 다르게 제작' 규정을 다시 적용해 과징금을 새로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과징금 재부과와 관련된 법리 검토도 이미 마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리 검토상 쟁점은 일사부재리 문제입니다. 한번 처분한 사안이 법원에 의해 취소됐다고 재처분에 나서려는 시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검토 결과 일사부재리는 형사 재판에 적용되며, 이번 소송과 같은 행정소송에는 적용되지 않는 만큼, 과징금 재부과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호 규정 적용 시 새 과징금 규모는 455억 원 대로 알려졌습니다.

환경부가 과징금 재부과에 나서려는 데에는 책임 회피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습니다. 법원 판결을 통해 환경부가 BMW 과징금 처분에 어처구니없는 규정 적용을 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과징금 재부과에 나서지 않을 경우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게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배출가스 시험성적서 위조가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의 어처구니없는 처벌 조항 적용으로 BMW가 과징금에서 빠져나갈 빌미를 정부 스스로 만들어 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규정을 어긴 채 시험성적서 위조의 방법으로 영업을 하려 했던 BMW에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죠. 다만 여론에 편승해 섣부른 규정 적용을 하면서 환경부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꼬인 문제를 올바로 풀어야 할 책임은 환경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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