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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방부는 왜 軍을 모욕하나…갈지자 문민 통제

국방부는 청와대를 위시한 문민정부를 대리하는가, 아니면 군을 대표하는가. 민주주의와 안보를 동시에 떠받치는 문민 통제, 즉 문민정부의 군에 대한 통제 이론에 따르면 국방부는 문민정부를 대리해서 군을 통제합니다. 국방부는 본질적으로 군의 대표가 아니라 문민정부의 대리기구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 국방부는 군을 대표하는 성향이 대단히 강합니다. 국방총사령부에 가깝습니다. 군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 또는 경계 실패가 발생하면 국방장관이 군을 대표해 사과합니다. 성숙한 문민 통제 구조에서는 문민정부를 대리하는 국방부가 군을 혼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방부가 군 대신 혼납니다. 이렇게 한국의 국방부와 군은 한 몸입니다. 문민화율 70% 이상의 국방부가 형식적으로 문민정부를 대리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군을 대표하는 한국 문민 통제의 특수성입니다.

공군 성추행사건 국면에서 서욱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군 대신 혼쭐났습니다. 늘 그렇듯 군을 대표한 것입니다. 반면 국방부가 합수단을 구성해 이번 사건을 수사한 양상은 문민정부를 대리한 것입니다. 국방부와 군이 별개의 존재가 되는 한국 문민 통제의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국방부의 문민정부 대리가 낯선 상황이어서 그런지 국방부는 선을 넘어 군을 모욕했습니다. 국방부는 군의 사기를 크게 꺾었습니다. 갈지자 문민 통제 행보입니다.
 

군복 입혀 수갑 채워야 했나

공군 이 모 중사를 추행한 장 모 중사, 그리고 이 중사를 협박·회유한 노 모 준위와 노 모 상사는 나쁜 군인들입니다. 이 중사는 군을 몹시 자랑스러워했지만 군 직속 선임이라는 자들이 못된 짓을 해 이 중사의 극단적 선택을 초래했습니다. 처벌받아 마땅하고 처벌될 것입니다.

국방부는 그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보는 이들마다 분노했습니다. 군인들 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아주 다른 감정도 함께 느꼈습니다.

군복 입고 수갑찬 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노 모 준위-장 모 중사

장 중사와 노 준위는 군복 입고 수갑 찬 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습니다. 오른쪽 어깨에 붙여진 태극기 견장이 도드라졌습니다. 우직하게 제 역할하는 많은 군인들은 탄식했습니다. 한 영관급 장교는 "장 중사, 노 준위처럼 고개 숙이게 되더라"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어떤 장교는 "낯 뜨거워 죽을 지경이었다"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군복은 한 국가의 군인 공동체가 공유하는 제1의 상징입니다. 그런 군복 입고 수갑으로 손 묶인 군인의 머리 숙인 모습이 방방곡곡 타전됐으니 선량한 절대다수 군인들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을지 미루어 짐작됩니다. 군복에 대한 존경이 희소한 사회에서 '수갑 찬 군복'은 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군 사기에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처벌은 장 중사, 노 준위, 노 상사의 몫입니다.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육해공군, 해병대의 장병들은 어깨 펴고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군복을 입혔으면 언론 공개를 하지 말았어야 했고, 언론에 공개할 것이라면 사복을 입혔어야 했습니다. 어제(9일) 국방부 기자실에서 열린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브리핑 때 이와 비슷한 의견이 나오자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은 고개 끄덕이며 "검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앞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
 

자극적 표현에 숫자 부풀린 국방부

국방부는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앞서 기자들에게 설명 자료를 사전 배포했습니다. 발표는 TV로 생중계됐고, 박재민 국방부 차관과 최광혁 국방부 검찰단장이 차례로 자료를 낭독했습니다. 그런데 박 차관이 사전배포 자료에 없던 문장을 추가해서 읽었습니다. "공군 창설 이래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47명에 대하여 수사 및 인사조치가 단행될 예정"이라는 내용입니다.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하는 박재민 국방부 차관

'공군 창설 이래 최대 규모의 수사 및 인사조치'는 언론사들이 독자 시선 끌기 위해 기사 제목 뽑을 때나 씀직한 표현입니다. 통상 정부 기관이 기소 00명, 보직 해임 00명, 징계 00명이라고 담담하게 발표하면 언론은 그 수를 모두 합치고 과거와 비교해 그럴듯한 제목을 뽑아내는데, 어제는 국방부가 언론사처럼 '제목 장사'를 했습니다. 국방부가 앞장서 공군의 치욕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47명도 사실과 다릅니다. 국방부는 중복 조치자들로 인한 계산 착오가 있었다며 어제 오후 부랴부랴 47명을 38명으로 수정했습니다. 국방부가 공군의 수사·인사조치 대상자를 38명인데 47명으로 부풀려 공군을 욕보인 셈입니다.
 

장관만은 지켜라!

이번 사건 관련 각종 정보가 이성용 전 공군참모총장을 거쳐 서욱 장관에게 보고됐습니다. 온 사회가 규탄하는 사건이었으니 창졸간에 이 전 총장이나 서 장관이 깊이 새기지 않고 주고받은 보고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착안해 불명예 경질된 전 참모총장을 형사 처벌하고, 보고받은 장관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통수권자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하라고 지시했으니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을 수사선상에 올리는 것은 이치에도 맞습니다.

그런데 국방부 몇몇 핵심 당국자들은 장관이 거론될 때마다 화들짝 놀랍니다. 불명예 경질로 처벌된 참모총장을 다시 처벌하는 것까지는 용인해도, 장관은 다쳐서 안 된다는 투입니다. 알아듣게 설명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면 참모총장의 부관참시(剖棺斬屍)도 막고 장관도 지킬 수 있는데, 일부 당국자들은 장관 지키기에만 안간힘을 씁니다.

이성용 전 참모총장이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는 수사의 대증적 목표인 고위급 희생양 만들기 시도 정도입니다. 최고 선임 장교의 연루로 공군의 절망적 추락을 바라는 이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국방부 사람들은 장관만 지키겠다고 이른바 갈라치기를 하니 답답합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아닌 말로 장관은 다쳐도 됩니다. 장관을 희생해 군을 지킬 수 있다면 백번 장관을 버려야 합니다. 장관이라고 해봐야 임기 1~2년이면 그만입니다. 반면 군은 대한민국과 함께 굳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국방부의 갈라치기가 보기 안 좋은 이유입니다.

군과 한 몸이었던 국방부가 잠시 군과 익숙지 않은 거리두기를 하느라 군에 깊은 상처를 낸 듯합니다. 이로 인해 군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었을 것입니다. 국방부에 대한 군의 신뢰가 흔들리거나 국방부와 군의 불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국방부와 군이 동체(同體)인 한국식 문민 통제에서 최악의 팀킬(team kill) 시나리오입니다. 국방부와 군은 경각심을 갖고 공군 이 중사 사건 이후 국방부와 군의 화합과 조화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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