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2021, 1989, 2013 톈안먼 광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설렙니다. 공산당원으로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2021년 7월 1일 오전 6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취재를 위해 도착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감격에 찬 모습이었습니다. 9천5백 만 공산당원 가운데 선발된 사람들이 참석했다는 자부심과 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도 묻어나왔습니다. 100 개의 빨간 대형 깃발에 둘러싸인 톈안먼 광장 행사장은 7만 명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옷을 맞춰 입은 젊은 학생들이 톈안먼 망루를 바라보는 맨 앞자리에 앉았고, 수십 개의 좌석마다 무전기를 귀에 꽂은 사람들이 배치돼 있었습니다.

시진핑 주석 등장에 환호하는 참석자들

함성과 박수 속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톈안먼 망루에 등장했습니다. 시 주석은 망루에 걸린 초상화 속 마오쩌둥 전 주석처럼 인민복(중산복)을 입었습니다. 2015년 9월 전승절 기념행사와 2019년 건국 70주년 행사에서도 시 주석은 인민복을 입고 망루에 올랐지만, 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하고 2023년 세번째 집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인민복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됐습니다.
 

2021년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중화민족도 없다"

시 주석은 1시간이 넘는 '중요 연설'에서 '공산당의 위대한 업적'과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했습니다. "중화민족은 다른 나라를 압박한 적이 없다. 중화민족을 압박하는 세력은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땀으로 쌓아 만든 강철 장성에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는 이례적으로 강력한 발언도 내놓았습니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광장은 큰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 주석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공산당의 업적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공산당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무너뜨렸으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했고, 개혁·개방을 통해 빈곤 탈출, 경제규모 전세계 2위의 대국을 이뤘다고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성립 이래 100년의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70여 년의 역사는 모두 중국 공산당이 없다면 신중국도 없고 중화민족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며 "중국 공산당의 강인한 지도력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암시는 없었지만, 여느 때보다 성대하게 열린 행사와 '공산당 통치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중국 관영매체들의 선전은 시 주석의 집권 기반이 공고하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광장 곳곳에서 "공산당이 없었으면, 신중국도 없었다.", "시 주석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의 영도를 따라야한다"고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참석자들이 진행 요원 지시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라져 가는 1989년 6월

행사장 가운데서 참석자들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32년 전 바로 이 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1989년 톈안먼 광장에는 정치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 100만 명이 있었습니다. 이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덩샤오핑은 6월 4일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을 전개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사건 사망자가 2백여 명이라고 말하지만, 최소 수천 명에서 1만 명 이상이 숨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톈안먼 사태를 '1980년대 말 발생한 정치 풍파'라고 표현하면서 당시 행동은 완전히 옳았고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참석자들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 궁금했습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국부로 추앙 받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란 큰 과(過)를 남겼습니다. 열악한 현실을 외면하고 무리한 경제 성장을 추진했던 대약진운동은 경제 파탄에 자연 재해까지 겹치며 수천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내고 말았습니다. 권력 투쟁의 성격이 강했던 문화대혁명은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숙청되고, 중국의 경제와 문화가 피폐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공산당이 목표로 내세운 중화민족의 부흥이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과 권력 투쟁으로 큰 후퇴를 겪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경축일에 과거의 잘못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 공산당은 과오를 역사에서 지우거나 의미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공산당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 시각에 대응하라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를 받은 중국역사연구원이 과거사 재포장 작업을 하는 한편 공산당의 위상을 위협하는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산당과 애국주의, 민족주의 교육을 강화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공산당의 통치는 정당하고 '중국=중국 공산당'이란 사상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2013년 톈안먼 광장의 전단지와 테러

연수 시절이던 2013년 9월 톈안먼 광장. 남쪽에서 톈안먼 망루로 걸어가던 순간, 한 여성이 광장 한 복판에서 갑자기 가방에서 전단지를 꺼내 하늘로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보려고 하기 무섭게 말 그대로 사방에서 여러 명의 사복 공안들이 이 여자를 덮쳤습니다. 뒤이어 정복 공안들이 달려와 여자를 연행해가고 사람들이 보기도 전에 전단지를 수거해 갔습니다.

그리고 한달 뒤인 2013년 10월 28일 오전 톈안먼 광장 앞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한대의 지프가 톈안먼 인도로 돌진한 뒤 폭발하면서 관광객 2명이 숨지고 차안에 타고 있던 3명이 숨졌습니다. 부상자는 40여 명에 달했습니다. 중국 공안 당국은 신장위구르인들에 의해 계획된 무장테러라고 규정했고. 위구르 독립운동단체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해인 2014년에는 윈난성 쿤밍 철도역 흉기 테러와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공원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각각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2013년 10월 톈안먼 차량 테러.

2009년 7월 5일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족과 한족 간에 발생한 폭력 사태로 2백여 명이 숨지고 1천7백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신장위구르 지역의 경비가 강화된 상황에서, 일련의 테러는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전방위적인 감시와 통제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2016년 티베트자치구 당서기였던 천취안궈가 신장위구르 자치구 당서기를 맡으면서 수용소 설치와 최첨단 감시 시스템 구축에 나섰습니다. 미국과 유엔 등은 신장에 약 100만명 이상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있으며 고문 등 인권탄압을 받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수용소가 아니라 테러리즘과 분리주의, 극단주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인도적 직업교육센터'라며 서방의 인권 탄압 주장은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비롯해 홍콩 범민주진영 탄압,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서 국제 사회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체제가 다른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및 군사 발전에 대한 위기감, 코로나19 기원국 논란이 겹쳐지면서 반중국 정서, 차이나 포비아(공포)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설문 조사에서 세계 대부분의 선진 경제국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거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공격적인 '전랑(늑대 전사) 외교'에서 보듯이 중국은 막대한 경제·군사력과 함께 엄청난 돈을 투자한 일대일로 국가와 아프리카를 우군으로 내세우며 계속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발톱을 숨기던 '도광양회'는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외부의 비판은 '내정 간섭이자 중화민족의 부흥을 막으려는 외세의 압박'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공산당, 특히 현 지도부의 통치 정당성을 강조하고 느려지는 경제 성장에 대한 불만과 심각한 빈부 격차에서 비롯된 불평등에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있습니다. 내년인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세번째 연임을 확정 지을 것으로 보입니다. '종신 집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1인 지배가 중국에 독이 될 것이다' 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톈안먼 광장은 앞으로 어떤 역사를 기록할 게 될 지 궁금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