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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병원 CCTV, 응급실은 되고 수술실은 안된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지난해 9월 경기도에 있는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셀프수유'가 몰래 이루어졌다는 것이 드러나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이 입에 물린 젖병을 혼자 빨다 기도가 막혀 켁켁대고 분수처럼 토하는 등 학대를 당하고 있는 충격적인 사실이 간호조무사의 내부고발로 인해 세상에 폭로되었다.

보도가 나간 뒤 공익신고자 보호제도가 뒤늦게 가동되었지만, 이미 간호조무사는 관련 내용을 외부에 발설했다는 이유로 병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의료단체도 의료범죄 행각을 고발한 간호조무사를 보호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았고, 내부 고발자는 여전히 피의자신분으로 병원과 홀로 맞서고 있다.

지난 달 인천의 한 척추전문병원에서는 의사가 아닌 병원 원무과 직원들이 의사를 대신해 수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또한 내부 고발자가 찍은 영상 덕분에 폭로가 가능했다. 언론에 보도된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병원을 검찰에 고발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겠다는 발표는 없었고, 내부고발자는 비실명대리신고를 통해 또 다시 병원과 외롭게 맞서고 있다.


최정규 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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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는 유령대리수술 등 의료범죄가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무관용 원칙의 엄격한 자정활동을 통해 동일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의 대리수술이 알려져 시끌벅적했던 2018년 10월에는 심지어 대한의사협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대리수술 실태를 조사하고, 내부자 고발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이후 어떤 자정활동을 펼쳤는지, 실태조사 결과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내부자고발 활성화계획을 어떻게 시행했는지 밝힌 바는 없다.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도 유령대리수술 신고 번호는 찾을 수 없고, (회원전용) 의료인 폭력피해신고센터 신고 번호만 적혀 있을 뿐이다. 의사가 피해자가 되는 폭행범죄에만 기민하게 대응하고, 환자가 피해자가 되는 의료범죄에는 뚜렷한 대책 하나 내놓지 않는 것이다.


최정규 인잇

내부 고발자에 대한 특단의 보호조치 등 자정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신고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이라 칭송한다. 문제는 모두가 영웅일 수 없으며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 없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불거지는 문제를 용기 있는 소수의 외침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된다.

결국 국민들의 90%가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안에 대한 심사가 국회에서 진행되었던 지난 23일 대한의사협회는 24시간 제보를 받는 '자율정화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부랴부랴 내놓았지만 법안통과를 어떻게든 막기 위한 꼼수로 비쳐질 만큼 의사집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에 이르렀다.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내 CCTV가 환자와 의료진 상호 간의 신뢰를 훼손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환자와 의료진 상호간의 신뢰가 훼손된 건 바로 의사들 때문 아닐까? 수익극대화를 위해 불법을 감행한 일부 의사들의 일탈 행동이라고 변호하지만 자율정화를 통해 그 일탈행동을 근절시키지 못한 의사집단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CCTV는 환자와 의료진 상호간의 신뢰 훼손이 아니라 신뢰 회복의 지름길임을 더 많은 의사들이 자각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의사를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고 감시하는 건 부당하다며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진 곳에 어김없이 CCTV가 설치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유독 수술실만 CCTV가 들어서면 안 되는 성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든 응급실 내 CCTV 설치 의무화가 담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작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의료진에 대한 폭력 피해를 막기 위해 응급실에서 CCTV로 감시당하며 '잠재적 범죄인' 취급당하는 불쾌함을 시민들이 견디고 있는 것과 동일하게, 유령대리수술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의사들 또한 그 불쾌감을 일정 수준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하루 빨리 내려야 한다. 의료진과 환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 파탄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 90%가 찬성하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제 더 이상 CCTV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90%를 넘어 거꾸로 'CCTV 폐지법'이 만들어지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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