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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여제' 도쿄도지사의 병가…고차원의 '작전'인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쿄올림픽. 이제는 취소라는 선택지는 테이블에서 사라진 걸로 보입니다. 지난 21일 일본 정부와 도쿄도(都),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의 이른바 '5자 협의'가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가는 관중 규모를 경기장 수용 인원의 50%, 최대 1만 명으로 결정하면서 올림픽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정말 결정된 대로 관중을 입장시켜도 되는지로 논쟁의 초점이 이동했습니다. 일본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여전히 많은 일본 국민들이 경기장에 관중을 입장시킬 경우 코로나 감염이 다시 확산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여론이 이번 결정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앞서 열거한 '5자 협의'의 구성원 가운데 개최 도시인 '도쿄도'가 있습니다. 지난 25일 도쿄도의 의회 의원을 뽑는 도의회 선거가 고시됐습니다. 투표일은 오는 7월 4일 일요일이고, 여기서 도쿄도의회 127석의 주인공들이 결정됩니다. 여야 정당은 이번 도의회 선거를 올림픽 직후로 예상되는 중의원 총선거(총선)의 전초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중요한 선거인데, 특히 이번 도의회 선거는 코로나 사태와 도쿄올림픽 강행 같은 굵직한 이슈의 한가운데서 치러집니다. 이번 선거가 단순히 도쿄도의 '일꾼'을 뽑는 게 아니라, 향후 일본 정계의 흐름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도쿄도의회 선거 공식 포스터. "'지금'의 마음을 도쿄의 에너지로"

그래서인지 주요 언론사들이 선거가 고시된 직후인 지난 주말, 도쿄도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모두 집권 자민당의 '우세'로 나왔습니다. 지금 도쿄도지사는 지난해 당선(재선)돼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고이케 유리코(小池 百合子,68세) 지사로,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도쿄 지역 정당인 '도민 퍼스트 회(會)'의 특별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도민 퍼스트 회'는 현재 도쿄도의회 127석 가운데 50석(39.4%)을 차지한 도의회 제1 정당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자민당에 1당 자리를 내준다는 예측이 나온 겁니다. 교도통신 여론조사 결과 이번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투표 정당을 정한 유권자의 31.8%가 자민당에 투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그 뒤를 연립여당인 공명당(14.1%), 공산당(13.1%)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도의회 제1당인 '도민 퍼스트 회'는 12.1%로 4위에 그쳤습니다.

흥미로운 건 지난 주말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 고이케 도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57%로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겁니다. 도지사 개인에 대한 지지율은 높지만, 그 도지사가 특별고문으로 있는 정당은 그만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얘깁니다. 이번 도의회 선거에서 도의회 내 1당의 위치가 바뀌게 되면 향후 고이케 지사의 정책이 사사건건 자민당의 견제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고이케 지사는 이념적으로는 일본의 우익에 가깝고 자민당 정권에서 환경상, 방위상 등 요직을 거쳤기 때문에 사실상 정당만 따로 만들었을 뿐 '여권 인사'로 봐도 무방합니다. 고이케 지사는 2016년 도쿄도지사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 했지만 공천에서 배제됐고, 이에 대한 반발로 자민당을 탈당해 당선됐습니다. 친정인 자민당 후보까지 꺾고 이뤄낸 당선이라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고, 심지어 차기 총리 후보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고이케 지사가 재선을 노리고 출마한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서도 특유의 카리스마에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자민당이 따로 후보를 내지 않고 사실상 고이케 지사의 재선을 묵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을 중의원 총선거는 얘기가 다릅니다. 고이케 도지사는 보수 성향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자민당 내부의 견제를 받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1당이 된다면 자민당 입장에서는 고이케 지사의 다리를 걸 수 있는 썩 괜찮은 교두보를 확보하는 셈이고, 반대로 고이케 지사 입장에서는 중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필연적인 재편 과정을 겪게 될 일본 정계, 특히 여권 내에서 '뒤가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일본 정계, 그리고 도쿄도의회를 둘러싼 이런 미묘한 상황 속에서 지난주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모든 공식 업무를 잠시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코로나 대응과 올림픽 준비로 쌓인 '과로'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 23일부터 활동을 중단하고 도쿄의 한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원래는 27일까지만 쉬고 복귀하겠다고 했는데, 어제 며칠 더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판단이 나왔다며 휴식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도쿄도의회 선거 고시는 지난 25일이고, 1주일 동안의 짧은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황인데 '도민 퍼스트 회' 입장에서는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해야 할 특별고문이 자리를 비운 셈입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거운동 초반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휴양에 들어간 고이케 지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과로로 인한 휴양'이 완전히 거짓은 아닐지라도, 도의회 선거 전략 논의를 위한 '작전'이 아닐까 하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도민 퍼스트 회'의 인기가 상당히 빠진 상황에서 고이케 지사가 이른바 '개인기'로 불리한 선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겁니다. 실제로 고이케 지사는 그동안 주말에도 도쿄도 코로나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감염 상황을 챙기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자회견에 나서는 등 업무 부담이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코로나 긴급사태 해제(21일)를 전후해 도쿄의 코로나 신규 감염자가 다시 반등하고, 올림픽 개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도정 공백'의 우려를 낳으면서까지 전면에 나오지 않는 건 역시 뭔가 꾸미는 게 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고이케 지사 측은 복귀 일정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이번 주 중반 이후에는 도정에 복귀할 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도의회 선거를 코앞에 두고 돌아와 건재를 과시하며 '도민 퍼스트 회'에 지지를 호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스가 내각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발판으로 '도민 퍼스트 회'의 극적인 막판 대역전극을 연출하려 할 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2016년 첫 도지사 당선 이후 집권 자민당과 때로는 같은, 때로는 다른 길을 걸으며 주목을 받아왔던 고이케 도지사이기에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5일 집권 자민당의 도의원 후보 지원 연설에 나선 아소 다로 부총리가 고이케 지사의 현재 상황을 두고 '자업자득' 이라며 내뱉은 독설에 대해 일본 내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도 고이케 지사에게는 좋은 복귀 재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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