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을 대국민 사과하게 만든 간부는 승진할 수 있을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4일 검찰 중간간부급 인사 발령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인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특히 눈에 띈 것은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으로 영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성남지청장은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자리입니다. 실제로 직전 성남지청장이었던 예세민 검사는 이달 초 검찰 고위간부 인사 때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에 임명됐습니다. 역대 성남지청장 중 검사장 승진을 하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소수일 정도입니다. 바로 이런 자리에 추미애 전 장관 시절부터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지냈던 박은정 검사가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박은정 검사는 지난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징계 청구 작업을 주도했던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심지어 직속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게까지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고 윤석열 징계 청구를 밀어붙이다가 감찰위원회에서 상관인 류혁 감찰관과 충돌하기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물론 이런 파열음 속에서도 징계 청구를 통해 법무부가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박은정 검사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실무자로서 승진할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헌정사상 최초라는 검찰총장 징계 청구 프로젝트는 결국 추미애 장관의 사퇴와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라는 대참사로 끝났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각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사과했지만…요직으로 영전한 박은정 검사
이번 검찰 인사에서 영전한 사람은 '실패자' 뿐만이 아닙니다. 검찰에 의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목된 '피고인'도 검찰에서 승진에 성공했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적으로 출국금지한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가 부부장검사로 승진한 것입니다. 물론 검찰이 누군가를 기소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형사재판 절차에서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무죄 추정 원칙이 있습니다. 이규원 검사는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범죄 혐의가 있어서 재판에 넘겨진 공무원을 승진시키는 경우는 검찰이 아닌 다른 국가기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더구나 이규원 검사를 형사재판에 넘긴 기관은 다른 곳이 아니라 검찰입니다. 검찰이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인물이 검찰 내부에서 승진에 성공하는, 논리적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 같은 경우가 실제로 벌어진 것입니다. 다른 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를 상상해보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더욱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국세청이 어떤 국세청 직원의 탈세 혐의를 적발해 형사고발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사람이 국세청 내부에서 간부로 승진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이런 일이 대한민국 검찰에서는 실제로 벌어진 것입니다. 조직의 가장 중요한 존재의 목적이 범죄 혐의를 파악해 재판에 넘기는 것인 기관이 자기 기관에서 범죄 혐의가 포착돼 재판에 넘긴 인물을 자기 기관의 간부로 승진시킨 셈입니다. 조직의 존재 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성격의 인사라고 하겠습니다.
검찰이 범죄 혐의 있다고 결론 내린 사람이 검찰 간부로 승진
박은정 검사나 이규원 검사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박은정 검사의 '개혁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이규원 검사가 억울하게 기소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된 과정에 책임이 있는 공무원이 영전하는 일, 검찰이 범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재판에 회부한 피고인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승진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도드라지게 영전시킨 이유는 결국 '충성심' 때문일 것입니다. 업무적 무능력도, 형사적 범죄 혐의도 모두 눈감아 줄 정도로 '입증된 충성심'만이 유일한 인사의 잣대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흠결이 있어도 충성하면 보상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밝힌 것입니다.
몇 년 후 이번 검찰 인사는 어떻게 평가될까?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