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행복한 직원이 많을수록 세상도 행복해집니다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radahh@gmail.com)

우리보다 훨씬 앞서 배려와 행복을 고민한 외국 기업들,
그 중에서도 '인권 선진국'으로 불리는 곳의 기업들은 어떤 모습일까.

사무 설비 부분에서 시장 선도 업체인 핀란드 스타트업 '프레이머리(Framery)'사는 세계 최초로 직원을 대상으로 '행복 보험'을 실시했다. '행복 보험'은 회사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직원에게 5,000 유로(우리 돈 약 650 만 원)를 보상해주는 프로그램이다. 2019 년에는 실제로 이 회사 직원 4 명에게 5,000 유로씩 지급됐다.

이 회사의 슬로건은 "행복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serious about happiness)"이다.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회사가 기울이는 배려는 먹을 것으로 가득 찬 회사 냉장고, 놀이터 같은 멋진 사무실 인테리어, 돈을 많이 들인 단체 행사와 여행 등 화려한 외양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열려있는 조직 운영'이다. 회사는 직원의 행복을 보장하려면 먼저 조직이 투명하고 수평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회사 정보는 모든 직원이 다 공유하며, 누구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위계 서열을 없애기 위해 중간 관리자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행복 보장 외에 회사가 직원들에게 한 약속이 하나 더 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여도 되는' 직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행동하는 것이 더 안전한, 험난한 직업의 세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도 된다'는 말은 왠지 눈물 나도록 고맙다.

반면 이와 대척점에 있을만한 사건이 얼마 전 네이버에서 벌어졌다. 한 직원이 직장 내 갑질 상사의 괴롭힘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문제의 상사는 이미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악명이 꽤 높았던 것 같다. 전 직장에서 그 상사 밑에 있던 직원이 이렇게 증언할 정도였다.
 
"이거 말 XX 못하네' 하면서 뒤통수를 팍 쳤었죠. 당시에 차도로 뛰어들고 싶고 이대로 있으면 뭔일 나겠다 싶어서…"

이 사건이 남 이야기 같지 않은 건 오래 전 한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이 나비효과처럼 돌고 돌아 핀란드 이주로 이어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핀란드 이주 후, 이곳의 직장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됐다.

언젠가 한 핀란드 직장인으로부터 "핀란드에서는 직장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그는 핀란드 사회가 수평적 사회여서 직장에서 상사도 직함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직장 내 갈등이나 집단 따돌림이 있지만, 상사보다는 오히려 동료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다는 설명도 들었다. 그래도 '을'끼리 벌이는 갈등은 갑질이 동반된 갈등보다는 덜 치명적일 듯 싶었다.

그리고 몇 년 전 당시 핀란드 노동부 장관 라우리 이할라이넨 (Lauri Ihalainen) 을 만났을 때는 정말 정신적으로 한 방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때 장관에게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다소 평이한 질문을 했었다. 그런데 장관의 답변은 내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직장은 사주(社主)가, 직원이 회사 밖 개인의 사생활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존중해주는 직장입니다."

나는 이같은 말이 한 나라의 노동부 장관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회사 회사원 직장 직장인 업무 (사진=픽사베이)

4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된 핀란드이지만 이 나라는 '직장인의 행복도 분야'에서 여전히 배가 고픈 것 같다. 핀란드 정부는 2030년까지 직장인 행복도와 웰빙을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공식 방침까지 세우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프레이머리'와 핀란드 정부 모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는 '직장인의 행복'이 직장 뿐만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생산성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영국 워릭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이 행복할수록 근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따라서 생산성은 12%까지 올라간다. 통계적으로도 행복한 판매자는 행복하지 못한 판매자보다 최대 37%까지 판매 실적을 높일 수 있으며 직장에서 병가를 낼 확률도 훨씬 낮다. 직장인 개개인의 행복이 그 사람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이유이다.

주변 환경 등 외부 요인을 10% 정도로만 여기던 소냐 류보미르스키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의 행복 파이 모델은 불과 몇 년 사이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게 됐다. 긍정적 사고방식과 행복감이 상당부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생기는 것인데도 행복을 개인의 문제로만 전락시켰기 때인데, 우리 사회에서도 더 이상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의 립서비스가 통하지 않는 것 역시 같은 이유로 보인다.

핀란드의 저명한 행복 연구가 일로나 수오야넨(Ilona Suojanen)박사는 최근 발간한 신간 『Onnellisuuspaineen alla』 (뜻: 행복의 압력에 눌러)에서 행복을 4 차선 도로에 비교했다.

각 차선마다 행복의 책임 소재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운전을 하고 있다.

1차선에는 행복이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차선에는 행복은 바꿀 수 없는 환경에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운전 중이다. 3차선에는 행복은 자기 스스로와 자신이 속한 사회, 그리고 환경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마지막 4차선에는 행복은 전적으로 외부 요인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1차선에 몰려 그곳에만 정체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제는 행복은 개인과 사회,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책임지며 만들어가는 것으로 믿고 한산한 3차선으로 바꿔 타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서로의 행복을 책임지려는 배려심은 의무감만으로는 탄생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라는 책에서 적자생존으로 부(富)를 집중하던 시대는 끝났고 공감(empathy)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공감 뉴런(empathy neuron)'이란 별칭을 가진 거울신경세포의 유전학적 발견의 성과로 인류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인간의 고차원적 욕구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공감과 협력을 통해 유대감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여러 연구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눈높이로 시선을 맞추는 '공감의 정신'은 상대방의 행복을 배려하는 행동으로 가시화된다.

우리는 남의 불행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배려하며 더 행복해진다. 행복의 3차선 도로에서 내 행복과 함께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여하며 함께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은 절대로 개인적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고 한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 소감을 살짝 패러디해보면 "가장 개인적인 행복이 가장 사회적인 행복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힌두교의 속담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형제의 배가 항구에 도착하도록 도와주라. 그리고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의 배도 무사히 항구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인잇 이보영 네임카드

#인-잇 #인잇

# 본 글과 함께 읽어 볼 '인-잇', 만나보세요.

[인-잇] 아이스맨도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힘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