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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롭게 생겨버린 고위공직자의 방패들

[취재파일] 새롭게 생겨버린 고위공직자의 방패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21.06.25 09:42 수정 2021.06.25 16: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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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고발장이 공수처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시민단체 '사법정의 바로세우기 시민행동'은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10번째 고발장을 공수처에 접수했습니다. 3일 뒤인 어제(24일), 반대 성향의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윤석열 X파일이 정부기관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의심된다며 고발장을 공수처에 접수했습니다.

이처럼 최고위급 공직자들에 대한 고발이 공수처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속, 언론에서는 공수처의 사건 처리 역량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공수처의 사건 처리 역량이 향후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게 하는 근본적 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치밀하지 않게 설계된 공수처법으로 인해, 수사를 받는 고위공직자들이 공수처 탄생 전보다 더 많은 법률적 방어 수단을 갖게 되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번번이 발생하는 이첩 줄다리기…행정소송 제기 가능성도 대두

고위공직자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법률적 방어자원을 동원하기 마련입니다. 최근 서초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고위공직자들이 수사기관을 상대로 세세한 절차 하나하나를 문제 삼으며 방어권을 행사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행 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들이 예전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법률적 쟁점을 다툴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에 연루된 검사들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공수처는 지난 3월 검찰로부터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김형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A 검사의 불법 출금 연루 혐의를 이첩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당시 수사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다시 검찰로 이첩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검사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다시 사건을 가져오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검찰은 수원지검 형사3부 (이정섭 부장검사) 수사팀의 반대 의견을 전달 받아, 사건을 다시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공수처에 통보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검찰에서 아무런 내용을 통보받은 적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처럼 양 기관이 사건 이첩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황은 이첩 기준에 대한 세부 내용이 현행 공수처법에 빠져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생기는 논란이 고위공직 피의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방패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이 공수처로 이첩됐을 경우, 피의자인 검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사건의 이첩은 공수처장이 하는 행정 처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위법하다고 행정 소송을 제기함으로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원지검 수사팀 또한 대검찰청에 보낸 의견서에서 '해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할 경우 행정소송 제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분석을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고발장이 줄을 잇고 있는 고위공직자 수사에서도 공수처-검찰 간 이첩 논란이 벌어질 개연성이 큽니다. 미비한 공수처법으로 인해 혐의를 받는 고위공직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추가적인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일반 형사 피의자들은 다툴 일이 없는 수사 과정의 절차가 또 한 번 생기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고위공직자들만 행사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 됐습니다.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 구속영장 청구에도 논란 따를듯

공수처가 검사 아닌 고위 공무원을 구속하고자 할 경우에도 여러 가지 법적 쟁점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현재 공수처는 검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 권한은 있지만, 검사가 아닌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기소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국회의 법안 조율 과정에서 '공수처가 과도한 권한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기소권을 분산해 놓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벌어질 실무적 상황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장치를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수처가 '채용 비리' 의혹 수사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조 교육감처럼 검사가 아닌 고위공직자의 경우, 수사는 공수처에서 담당하더라도 기소는 검찰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 교육감에 대한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가 수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자 할 경우 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기소권'이 없는 사법경찰관에게는 구속영장 청구 권한이 없고, 영장을 발부받아도 10일 동안만 구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수처 검사는 이름은 '검사' 이면서도, 조 교육감과 같은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검사'의 핵심 권한인 '기소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수처 검사는 검사가 아닌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때는 '반쪽짜리 검사'가 돼버리는 것입니다. 이때 공수처 검사에게 구속과 관련한 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인지와 관련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공수처 1호 사건은 '조희연 해직교사 특채 의혹'
현 정부 수사기관 개혁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온 양홍석 변호사 (법무법인 이공)는 "현 공수처법 하에서는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에 대해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의 구속 기간을 몇일로 해야 하는지, 구속 기간을 연장하려면 사건을 검찰로 넘겨야하는지와 같은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신 구속과 관련된 문제는 법률적으로 엄격히 따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공수처가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를 구속 수사한 뒤 검찰이 사건을 기소했을 경우, 구속 이후 확보한 증거가 적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재판 과정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뚜렷한 정답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검사 작성 피신조서 증거능력은 사라지는데…더 복잡해진 고위공직자 수사

이런 문제점들은 현 정부에서 실행된 사법제도 개편과 맞물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는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공수처법 개정과 비슷한 시기 이뤄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내년부터는 피고인이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하면 해당 조서의 증거능력이 사라집니다. 쉽게 말해 공수처나 검찰에서 작성된 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저때는 저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법정에서 주장해버리면 그 조서가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폐쇄적인 수사 절차보다는 공개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겠다는,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에 따른 개편입니다.

하지만 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 방편은 너무도 부실합니다.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범죄 혐의 사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형사법 전문가인 검사나 수준 높은 변호인단을 선임할 여력이 되는 고위공직자는 법정에서 최대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 수사기관 조사 내용을 부인할 가능성이 큽니다. 재판은 더 길어지고, 혐의 입증 과정은 지난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을 다투는 법정이 고위공직에 있는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 대응하는 검사 숫자를 확충하거나, 사건을 더 자세히 심리하도록 법관 숫자를 늘리는 방안 등은 간혹 열리는 토론회에서나 논의될 뿐 아직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 수사기관 사이 사건 이첩이나 강제 수사 권한을 둘러싼 논쟁점만 많아지면서, 설익은 수사의 결과물이 법정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 공수처와 검찰을 둘러싼 갈등 기사를 보면서, 재판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저런 수사 과정을 거쳐 기소된 사건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심리해야할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화되고 있는 사법 현장의 여러 혼란과 부작용들은 좋은 슬로건만 있을 뿐 디테일은 부족했던 입법 과정이 초래한 것들입니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했던 법의 잣대를 바로하자는 애초 의도와는 달리, 우리는 새롭게 생겨버린 고위공직자들의 법률적 방어수단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이런 과제들을 던져놓은 정치권은 내년 초 있을 대선으로 관심을 돌린 상태입니다. '사법제도를 완수하겠다', '정치 영역에서 법과 정의를 지키겠다'는 말과 함께 정치권으로 향한 법률가들의 목소리도 언제부터인가 듣기 어려워졌습니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공정과 정의'는 이번 대선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공정과 정의'라는 상징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뜨거운 말들을 쏟아낼 것입니다. 선의로 가득 찬 사법제도 관련 공약들도 표를 모으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유권자들에게 던져질 것입니다. 하지만 공약의 주체가 누구든, 좋은 말들 뒤에 자리한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좀 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있다는 서양의 오랜 격언처럼, 정의로 포장된 공약들은 현실 속에선 부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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