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레슨비 없어 골프 포기할 뻔한 박민지, 최경주재단 도움으로 '인생 역전'

[취재파일] 레슨비 없어 골프 포기할 뻔한 박민지, 최경주재단 도움으로 '인생 역전'

김영성 기자 yskim@sbs.co.kr

작성 2021.06.23 09:19 수정 2021.06.23 10:31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레슨비 없어 골프 포기할 뻔한 박민지, 최경주재단 도움으로 인생 역전
-코로나19로 해외 전지훈련 못 가 국내서 체력훈련 2배로
-아마추어 시절 하루 12시간 혹독한 훈련…중학교 땐 가세 기울어 운동 포기할 뻔
-"최경주재단에서 구원의 손길…'무료 레슨' 이경훈 프로가 평생의 은인"
-3代가 연금으로 생활하다 '인생 역전'…"상금으로 부모님 노년 행복하게 해 드릴 것"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투어는 '깜짝 슈퍼스타'로 떠오른 박민지의 놀라운 활약에 팬들의 관심과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중계방송 시청률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선수들은 불꽃 튀는 명승부로 필드를 달구고 있습니다.

박민지는 프로 데뷔 첫 해인 2017년 첫 우승을 신고한 뒤 2020년까지 매년 1승씩 쌓아오다 갑자기 올해 들어 9개 대회 출전 중 5승을 쓸어 담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지난 주말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 3·4 라운드에서 박민지와 박현경이 펼친 숨 막히는 우승 경쟁은 남녀 통틀어 한국 프로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박민지는 한국여자오픈 우승 다음 날 탈진 상태로 링거 주사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민지가 갑자기 올해 들어 이렇게 급상승세를 보이는 원동력이 뭘까? 그녀를 골프에 입문시키고 지금까지 뒷바라지 해온 어머니 김옥화 씨(여자핸드볼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부터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수혜자?…해외 전훈 못 가 국내서 체력 키운 게 '신의 한 수'

프로골프 박민지 (사진=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조직위 제공, 연합뉴스)
박민지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지난 겨울 해외 전지훈련을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국내에서 체력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는 게 어머니 김옥화 씨의 분석입니다.

"비시즌에는 라운드 많이 하는 것보다 체력 농사짓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민지가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요. 주 3회 웨이트 트레이닝을 5회로 늘리고 1회 운동량도 2배로 늘렸는데, 결국 그 효과가 시즌 중에 나타나더라고요. 전에는 대회 갔다 오면 허리 아프다고 했는데 이젠 아프다는 말 안 해요. 특히 '턱걸이' 효과를 본 것 같아요. 턱걸이는 트레이너 추천으로 작년 초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엔 1개도 못하다가 차츰 횟수를 늘려서 7개까지 하더라고요. 시즌 중엔 5개씩 하는데 등 쪽에 광배근이 서고 허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샷이 더 안정되고 점점 자신감이 붙어 우승의 물꼬가 확 트이게 된 거죠."
 

경제적 어려움과 절실함으로 다져진 '남다른 승부욕'

박민지는 언론 인터뷰 때마다 "어머니의 운동 유전자를 100% 물려받았다"면서 "딸 뒷바라지하느라 부모님께서 청춘을 다 바치셨기 때문에 제 상금으로 부모님 노년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김옥화 씨는 1984년 LA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리스트로, 선수 시절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던 세대입니다. 김 씨는 박민지가 골프에 입문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프로선수가 될 때까지 자신이 받았던 혹독한 훈련 방식을 딸에게 고스란히 전수했다고 밝혔습니다.

LA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옥화 씨(오른쪽에서 6번째)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켰어요. 아침 5시 반 기상, 6시에 밥 먹고 나가서 하루 12시간씩 매일 딸 옆에 붙어서 감시하고, 공 똑바로 못 치면 윽박지르고 숨도 못 쉬게 했어요. 어찌 보면 참 구시대적인 방식인데 민지가 힘들다고 투정하면서도 잘 따라와 줬죠.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런 방식이 안 먹혀요. 요즘엔 공 칠 때 옆에 얼씬도 못하게 해요. 엄마가 지켜보면 너무 부담스러워 공이 잘 안 맞는대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죠 "못 치기만 해봐라". 그리고 지켜봤는데 더 잘 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 제 역할은 그냥 밥, 빨래해주고 대회장까지 운전해주고 거기까지만 해요."

박민지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1년 반 동안 레슨을 받지 못했습니다. 후배 최혜진과 박현경 등이 먼저 국가대표가 되고 한참 앞서가는 걸 지켜보며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그때 민지 할머니와 같은 집에서 살았는데 제 입장에서는 시어머니를 모셨다기보다 시어머니가 연금으로 생활비를 대주셨어요. 시아버지가 젊은 시절 군에서 사고사를 당해 나오는 유족연금에 제 연금(올림픽 은메달)을 합해 겨우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죠. 그런데 골프 비용은 감당이 안 됐어요. 레슨비는 정말 엄두도 못 냈죠."
 

'최경주 재단'이 구세주…'무료 레슨' 이경훈 프로가 평생의 은인

프로골프 박민지 (사진=KLPGA 제공, 연합뉴스)
"중요한 시기라서 레슨도 못 받는게 무척 안타깝고 걱정이 많이 됐는데 주변에서 최경주재단을 찾아가보라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민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 되고 나서 재단을 찾아갔죠. 어려운 가정 형편 알고 민지를 받아주신 분이 이경훈 프로님이었어요. 김세영 프로의 스승이자 최경주재단 선수선발위원장이었는데, 그분이 용인 88CC에서 아카데미를 따로 운영하고 계셨어요. 그때부터 이경훈 프로님이 1주에 2회 무료 레슨을 해주셨죠. 덕분에 실력이 쑥쑥 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태극마크 달고 세계선수권대회 나가서 금메달까지 땄어요. 최혜진, 박현경 등이 당시 국가대표로 한솥밥 먹었던 멤버들이죠. 이경훈 프로님은 정말 민지의 평생 은인이에요. 이 프로님 덕분에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부터는 돈이 안 들어갔어요. 오히려 합숙 수당을 받아오고 옷이나 클럽, 용품 지원되지, 또 코치가 레슨 다 해주지… 정말 이때부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더라고요. 민지도 어려운 환경을 잘 견뎌냈기 때문에 악착같은 면이 있어요. 그래서 멘탈(정신력)이 강하고 승부욕이 남 다른 것 같아요."

박민지는 올 시즌 다승(5승)과 상금(9억 4천800만 원), 대상 포인트(333), 평균 타수(69.5)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를 질주하며 절대 강자로 떠올랐고, 이런 기세라면 2007년 신지애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승(9승)과 2016년 박성현이 세운 한 시즌 최고 상금(13억 3천309만 원)도 경신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 시즌 9개 대회에 나와 벌써 5승을 했는데, 남은 대회 수는 19개나 됩니다.

지난 13일 셀트리온마스터스에서 우승해 시즌 4승째를 수확한 뒤 박민지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폭포수 쏟아지듯, 미친 듯이 우승을 많이 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고, 바로 다음 주에 한국여자오픈 우승컵마저 품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박민지는 체력 안배를 위해 이번 주 대회는 건너뛰고 다음 주 용평 대회부터 다시 나와 시즌 6승에 도전합니다.

최근 2주 연속 박민지에게 밀려 준우승했던 '메이저 퀸' 박현경은 24일부터 나흘간 포천힐스CC에서 열리는 BC카드 한경레이디스컵에 출전해 시즌 2승을 노립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를 배출하는 '화수분' KLPGA투어는 올해도 걸출한 스타와 명승부로 매주 골프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진=KLPGA 제공,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 조직위 제공,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