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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입주민 51만 원 주차비'에 '줄소송'까지…여의도 집합건물에 무슨 일이?

[취재파일] '입주민 51만 원 주차비'에 '줄소송'까지…여의도 집합건물에 무슨 일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 등은 모두 집합건물이다. 건물의 여러 부분을 독립적으로 구분된 소유자들이 쓰는 것인데 이름 그대로 집합건물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는 이 법 대신 공동주택관리법을 별도로 적용한다. 공적 관리의 필요성이 높다는 이유로 특별법 성격을 갖는 법을 따로 마련한 것인데 집합건물은 공적 관리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집합건물에서 온 제보는 이런 법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건물은 오피스텔과 호텔, 상가가 각각 66%, 30%, 4% 정도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현재 이들 거의 모든 주체와 건물 관계자는 한 사람을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자신이 건물의 통합관리인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하는 53살 A 씨이다.

집합건물/입주민 주차 문제

오피스텔과 상가 입주민들은 주차 문제와 관리비 지출 내역 공개를 두고 A 씨를 상대로 시위를 벌였다. 호텔은 A 씨와 무려 13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6년 넘게 일한 보안요원들도 A 씨 부임 이후 일을 그만뒀는데 A 씨는 "스스로 그만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보안요원은 "A 씨의 갑질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고 말한다. 현재 근무 중인 보안요원들은 보디캠(Body-cam)을 달고 항의하러 오는 입주민들을 촬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등의 골이 계속 깊어만 가는 것이다.
 

입주민인데 주차비 51만 원…"관리규약 따른 것"

A 씨는 지난 3월, 공용 부분인 지상과 지하 2층에 '오피스텔 전용 주차면'을 만들어 지정된 입주민만 주차할 수 있게 했다. 지정되지 않은 다른 입주민이 '오피스텔 전용 주차면'이라는 표시를 보고 여기에 차를 댄 경우 대상자가 아닌데 잘 못 주차했다는 이유로 아예 입주민 등록을 해제해버렸다. 50만 원이 넘는 주차비를 내야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입주민들이 따져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입주민이 주차비 미납으로 차단기에 가로막혀 건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A 씨는 "관리규약에 따라 관리인인 본인과 관리위원 4명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집합건물 관리인 주차요금 갈등

이런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자 A 씨는 "지정 주차면은 분명히 한시적인 조치라고 명시했었다"고 주민들에게 공지했다. 취재진에게도 "입주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차단기가 올라갈 때까지 6분 걸렸다"며 기사가 문제를 과장했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취재진이 A 씨와 변호인의 해명을 듣기 위해 1시간 반 동안 만난 자리에서 지정 주차가 한시적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주차장 운영 방식을 바꾸기 직전에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 불법 주차했을 경우 정기 차량 등록을 삭제하고 하루 최대 6만 원의 요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으로 주차 관리규정을 개정했다는 설명만 했을 뿐이었다. 한시적인 조치였을 뿐이라면 왜 굳이 규정까지 바꿨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입주민이 기다린 6분은 정말 그저 짧은 시간일 뿐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관리비 지출 내역 공개하라"…"권한 없다"

오피스텔과 상가 입주민들은 관리비 지출 내역 공개도 요구하고 있다. A 씨는 2018년부터 오피스텔과 상가 관리인이었다가 지난해 말부터 통합관리인이 됐다고 주장하며 3년 넘게 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그 기간 동안 관리단의 수입은 얼마고 또 지출은 어디에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호텔과 상가 측이 내는 공용 부분 사용료와 주차장 운영 수입, 장기 수선 충당금 등 내역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A 씨와 변호인은 이를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결산 자료, 회계 전표, 통장 거래 내역의 등사는 입주민이 이를 신청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취재진에게도 "현재 호텔과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비용 지출 내역이 담기지 않은) 외부 회계감사보고서 외에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집합건물법과 그 시행령에는 관리단이 얻은 수입과 사용 내역에 관한 사항 등을 관리인의 보고 의무로 두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동부지법 역시 서울 송파구의 한 집합건물 회계 장부 등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에서 자금 수입과 지출 현황, 관리단 통장 예금 거래 내역과 주차장 수입 자료 일체 등 현황을 공개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집합건물/입주민 주차 문제

지난해 중순부터 A 씨 측 변호를 맡고 있다는 법률대리인은 취재진에게 "진행 중인 소송 비용은 입주민들이 내는 관리비가 아닌 관리비 외 운영 수익에서 충당한다"고 말했다. 집합건물법상 공용 부분에서 생기는 이익은 각 공유자가 취득하게 돼 있다. 실제로는 관리비 인하 등에 쓰여야 할 돈이 십여 건의 소송 비용 명목으로 변호사에게 돌아간다는 것인데 입주민들은 그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른다고 주장한다.
 

관리규약 없어도…집합건물법 맹점

집합건물법상 관리규약은 필수가 아니다. 없어도 된다. 아무 근거 없이 관리인이 전횡을 행사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공동주택관리법은 관할 행정기관이 관리규약의 제정과 그 적법성 여부까지 관리 감독하지만 집합건물법은 그런 의무 자체가 없다. 실제 호텔과 입주민들은 A 씨와 그의 법률대리인이 모든 조치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관리규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당 관리규약 문건에는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문구'가 있다. 집합건물법에 따라 관리규약은 전체 소유자의 75%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30% 정도의 지분을 가진 호텔이 동의하지 않았다. 규약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관리규약 자체가 무효로 인정되더라도 근거 없는 전횡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A 씨와 법률대리인은 "건물 전체가 대상이라는 문구는 전문가가 작성하지 않아서 생긴 사소한 오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관리비 장부 보관 안 해도…개정안은 계류

법에는 관리비 장부 작성, 보관, 공개 의무도 없다. 실제 다른 집합건물에서도 관리인이 1년 혹은 그 이상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관리비 장부가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입주민은 대응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현행 집합건물법에는 수많은 관리비 항목 중 오직 수선 적립금의 용도만 규정할 뿐이어서 A 씨와 변호인이 소송 비용에 쓴다는 관리비 외 수입은 관리인이 쌈짓돈처럼 썼다 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입주민 측 법률대리인인 부종식 변호사도 "현재로서는 A 씨 해임 추진 말고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호텔은 후보자 등록 등 관리인 선임 절차에 문제가 있어 무효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고 입주민들도 관리인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신청만 했을 뿐이다. 법원이 결정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계속 대두되자 법무부는 지난 3월 집합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관리 감독 규정을 넣고 관리비 장부의 작성, 보관,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법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겼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거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는 상태이다. 주민들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A 씨와 법률대리인이 다음 달 열겠다고 한 총회에서 비용 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외부 회계감사보고서 수준이 아니라 수입과 지출 내역을 상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당연한 주민의 권리를 떳떳하게 들어주면 될 일이다.   

▶ [2021.06.16 8뉴스] "입주민 주차비가 51만 원"…집합건물 관리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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