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집합건물에서 온 제보는 이런 법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건물은 오피스텔과 호텔, 상가가 각각 66%, 30%, 4% 정도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현재 이들 거의 모든 주체와 건물 관계자는 한 사람을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자신이 건물의 통합관리인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하는 53살 A 씨이다.
오피스텔과 상가 입주민들은 주차 문제와 관리비 지출 내역 공개를 두고 A 씨를 상대로 시위를 벌였다. 호텔은 A 씨와 무려 13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6년 넘게 일한 보안요원들도 A 씨 부임 이후 일을 그만뒀는데 A 씨는 "스스로 그만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보안요원은 "A 씨의 갑질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고 말한다. 현재 근무 중인 보안요원들은 보디캠(Body-cam)을 달고 항의하러 오는 입주민들을 촬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등의 골이 계속 깊어만 가는 것이다.
입주민인데 주차비 51만 원…"관리규약 따른 것"
이런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자 A 씨는 "지정 주차면은 분명히 한시적인 조치라고 명시했었다"고 주민들에게 공지했다. 취재진에게도 "입주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차단기가 올라갈 때까지 6분 걸렸다"며 기사가 문제를 과장했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취재진이 A 씨와 변호인의 해명을 듣기 위해 1시간 반 동안 만난 자리에서 지정 주차가 한시적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주차장 운영 방식을 바꾸기 직전에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 불법 주차했을 경우 정기 차량 등록을 삭제하고 하루 최대 6만 원의 요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으로 주차 관리규정을 개정했다는 설명만 했을 뿐이었다. 한시적인 조치였을 뿐이라면 왜 굳이 규정까지 바꿨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입주민이 기다린 6분은 정말 그저 짧은 시간일 뿐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관리비 지출 내역 공개하라"…"권한 없다"
A 씨와 변호인은 이를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결산 자료, 회계 전표, 통장 거래 내역의 등사는 입주민이 이를 신청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취재진에게도 "현재 호텔과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비용 지출 내역이 담기지 않은) 외부 회계감사보고서 외에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집합건물법과 그 시행령에는 관리단이 얻은 수입과 사용 내역에 관한 사항 등을 관리인의 보고 의무로 두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동부지법 역시 서울 송파구의 한 집합건물 회계 장부 등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에서 자금 수입과 지출 현황, 관리단 통장 예금 거래 내역과 주차장 수입 자료 일체 등 현황을 공개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지난해 중순부터 A 씨 측 변호를 맡고 있다는 법률대리인은 취재진에게 "진행 중인 소송 비용은 입주민들이 내는 관리비가 아닌 관리비 외 운영 수익에서 충당한다"고 말했다. 집합건물법상 공용 부분에서 생기는 이익은 각 공유자가 취득하게 돼 있다. 실제로는 관리비 인하 등에 쓰여야 할 돈이 십여 건의 소송 비용 명목으로 변호사에게 돌아간다는 것인데 입주민들은 그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른다고 주장한다.
관리규약 없어도…집합건물법 맹점
해당 관리규약 문건에는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문구'가 있다. 집합건물법에 따라 관리규약은 전체 소유자의 75%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30% 정도의 지분을 가진 호텔이 동의하지 않았다. 규약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관리규약 자체가 무효로 인정되더라도 근거 없는 전횡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A 씨와 법률대리인은 "건물 전체가 대상이라는 문구는 전문가가 작성하지 않아서 생긴 사소한 오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관리비 장부 보관 안 해도…개정안은 계류
이런 문제가 계속 대두되자 법무부는 지난 3월 집합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관리 감독 규정을 넣고 관리비 장부의 작성, 보관,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법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겼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거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는 상태이다. 주민들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A 씨와 법률대리인이 다음 달 열겠다고 한 총회에서 비용 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외부 회계감사보고서 수준이 아니라 수입과 지출 내역을 상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당연한 주민의 권리를 떳떳하게 들어주면 될 일이다.
▶ [2021.06.16 8뉴스] "입주민 주차비가 51만 원"…집합건물 관리 공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