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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환자에게는 지옥, 의사에게는 천국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자신의 얼굴 형태에 콤플렉스가 있던 20대 한 모 씨는 2012년 서울 강남의 A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 당시 병원장 유 모 씨가 양악수술 권위자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한 모 씨는 턱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굴 형태가 넓적해진다며 양악과 턱수술을 함께 하라는 권유를 받고 예약금을 걸었다. 하지만 비용이 1,000만 원이 넘고 수술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6개월이나 망설였다.

"원장님은 VIP 환자 아니면 진료도 안 보십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장이 직접 수술을 해주는 겁니다"라는 병원 측의 말을 들으니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에 2013년 1월, 한 모 씨는 수술을 결심했다. 초소형 녹음기를 몰래 숨겨 수술실에 들어갈 정도로 수술 성공 여부에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걱정이 그저 기우에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수술 후 2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5년 8월 '광대축소술 후 감각 소실 및 비대칭, 양악수술 후 좌측 턱 비대칭, 양악수술 후 상악 돌출변형'이라는 후유증 진단을 받을 만큼 수술은 대실패였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건 수술실에 숨기고 들어간 녹음기에 직접 수술을 한다고 약속한 병원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2년이 넘는 수사 과정을 통해 이 수술은 성형외과 전문의인 병원장 유 모 씨가 아닌 치과의사 김 모 씨가 진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치과의사 김 모 씨는 기능적인 측면을 도와주는 의사라고 병원장에게 소개받아 상담받았던 적이 있었을 뿐 수술에 동의한 바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 모 씨를 속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 이 수술을 진행한 병원장과 치과의사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한 모 씨를 비롯하여 33명의 환자를 속이고 수술비 약 1억 5천만 원을 편취한 사기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은 2020년 8월 징역 1년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되었고,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그러나 치과의사 김 모 씨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수술 동의를 받지 않은 의사가 한 모 씨의 얼굴에 칼을 들이댄 것은 형법상 상해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아래와 같이 판단해 불기소 처분했다.

[2016. 4. 1.자 불기소이유서 중 일부]

"그래도 면허 있는 의사인데 칼을 휘두른 사람과 똑같이 상해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의사는 누구 몸에나 칼을 댈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긴급한 상황이라면 몰라도 환자의 동의가 없는 한 아무리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이라해도 타인의 몸에 칼을 대는 건 형법상 상해죄다. 독일은 이미 1894년 판결을 통해 환자의 동의 없는 수술의 경우 상해죄 성립을 인정해왔으며, 미국 뉴저지주의 1983년 판결에서도 사전 동의서에 확인된 사람이 아닌 다른 의사가 집도한 수술은 폭행, 상해라고 판시했다.

대검찰청이 2021년 보건, 의약 분야 2급 공인전문검사(블루벨트)로 인증한 유재근 검사가 2015년 7월 18일 보건의약식품전문검사 커뮤티니와 대한의료법학회 공동으로 진행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수술환자의 권리보호에 대한 형사법적 쟁점)에도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의를 받지 않은 의사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는 - 의료행위의 긴급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 사실상 환자에 대한 '적대적인' 신체 손상을 인식하고 의도하였다고 볼 수 있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위와 같이 특별한 사유 없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수술을 강행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사회 상규에 위배되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바, 상해죄의 죄책을 인정함이 상당하다.

그러나 대리수술을 한 의사들을 상해죄로 기소한 검사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모 씨를 수술한 치과의사 김 모 씨는 지금도 바로 그 성형외과에서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환자로부터 동의 받지 않은 수술을 감행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의사 면허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대한민국은 피해 입은 환자에게는 지옥이고 의사에게만 천국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고 윤리적 선택을 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영업 이익의 극대화에만 혈안이 되어 윤리적 선택을 저버리는 의사들은 계속 세상에 폭로되고 있다. 지난 달 인천의 한 척추전문병원, 이번 달 광주의 한 척추전문병원에서는 의사도 아닌 간호조무사들이 의사를 대신해 수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렇다 보니 90%가 넘는 국민들은 수술실 내 CCTV 설치와 관련된 법 개정에 동의하고 있다.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가 이토록 파탄의 지경에 이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물론 영업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환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일부 의료진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특단의 노력을 하지 않고 이제 와서 CCTV 설치 법안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수술 수술실 병원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보건당국과 수사당국은 어떠한가? 대리수술을 한 의사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계속 의사면허를 유지하며 당당하게 문제의 병원에서 다른 환자를 수술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보건당국과 수사당국은 정상인가? 코로나 19로 인해 K-방역이 세계적으로 칭송받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리수술에 대한 보건당국과 수사당국의 대처는 왜 이리 후진적인가? 대리수술에 대한 이런 후진적인 수사와 조치가 결국 의사들에게 대리수술 천국을 만들어 준 건 아닐까?

작년 병원장 실형선고 이후 한 모 씨는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긴 의료진들을 중상해죄(또는 살인미수죄)로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제출했고 현재 검찰에서 수사 진행 중이다. 대리수술을 진행하다 사망한 고 권대희 씨 사건에서도 검찰은 이미 기소된 업무상과실치사죄에서 상해치사죄(또는 살인죄)로 공소장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영업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윤리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해 대리수술을 감행하고 있거나 감행할지 망설이고 있는 의료진들이 바로 이 결과를 주목하고 있음을 수사당국은 반드시 기억했으면 좋겠다. K-방역으로 전 세계에 위용을 떨친 대한민국에서 이런 후진적인 대리수술 행각은 하루빨리 근절되고 환자의 의사 상호 간의 신뢰가 회복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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