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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아이스맨도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힘

[인-잇] 아이스맨도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힘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radahh@gmail.com)

SBS 뉴스

작성 2021.06.20 11: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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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인잇 초콜릿
첫째 아이가 어릴 때 청각장애인으로 오인받은 적이 있다. 만 3세가 다 됐을 때 아이를 처음 유치원에 보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긴급 면담 요청이 왔다. 아이가 선생님 이야기에 전혀 반응을 안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아이의 핀란드 말 배우는 속도가 많이 느렸는데, 이런 사정을 선생님은 아직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선생님은 느닷없이 전문의로부터 청력 진단을 받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 순간 나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아이의 귀에 대고 "초콜릿?"하고 속삭였다. 갑자기 화색을 띠며 아이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 마법의 단어 '초콜릿'은 어떤 진단보다 강력한 한방으로 아이의 청력 논란을 해결해 주었다.

말만 들어도 '텐션'을 올려주는 초콜릿의 진정한 마법은 입에 대는 순간 시작된다. 우리의 몸속에서 행복감을 주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고통과 통증을 완화하는 오피오이드와 엔도르핀,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페닐에틸아민 수치가 모두 상승한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이 실연의 괴로움을 곱씹는 대신 초콜릿을 씹어 먹으면 구급약 역할 정도는 해낼 것 같다.

인류가 처음 카카오나무 열매를 먹기시작한 고대 마야 문명 시대에 카카오는 식품보다 약품으로 더 많이 쓰였다. 먹으면 신기하게도 힘이 펄펄 나 강장제로 쓰였고, 치통과 피로를 덜어주고 해열까지 해주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당시 카카오나무는 귀하고 신령한 나무로 여겨졌으며 열매는 한때 화폐 대용으로 쓰이기까지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잘 알고 있던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카카오에 '신의 음식'이란 뜻의 테오브로마(Theobroma)란 학명을 붙여주었다.

혹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F1(포뮬러1)의 핀란드인 유명 레이서 키미 라이코넨(Kimi Raikkonen)의 무표정 짤을 본 적이 있는가? 슬플 때, 기쁠 때, 질 때, 이길 때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아이스맨(Ice Man)'이다. 세계인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핀란드에서는 지극히 정상적 모습이다. 핀란드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웃는 사람은 미쳤거나, 술에 취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관광 온 미국인이거나 이렇게 딱 세 가지 경우라는 농담 섞인 말이 있다.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만큼 핀란드 사람들은 웃는 것에 인색하다. 그러나 '신의 음식' 초콜릿은 이런 핀란드 아이스맨들의 굳게 닫힌 미소의 빗장도 여는 힘이 있다.

단 이 경우 초콜릿은 가능한 핀란드산이어야 한다. 초콜릿에 있어서 핀란드 사람들은 완전히 '국뽕'이다. 국민 대부분이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은 핀란드' F사'가 만든 밀크초콜릿이라 믿고 있으며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신의 음식' 카카오를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모든 초콜릿이 다 천상의 맛은 아니다. 팜유 등 식물성 유지가 포함되면 맛이 떨어지고 카카오 버터 함량도 30%는 되어야 한다. 카카오 품종 또한 중요하다. 이 요건을 F사의 초콜릿은 다 갖추고 있다.

핀란드의 국민 초콜릿.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서 김치를 못 먹으면 금단 현상에 시달리 듯 핀란드 사람들도 이 초콜릿을 못 먹으면 비슷한 증상을 겪는 것 같다. 호밀 빵과 더불어 해외에 사는 핀란드 사람들이 고국에서 공수받고 싶어 목매고 기다리는 식품이 바로 이 초콜릿이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할 때, 핀란드 지인이 한국에서 유학 중인 자신의 딸에게 전해 달라며 초콜릿이 가득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한국에서 만난 딸은 마치 엄마가 직접 만들어 바리바리 보따리에 싼 음식인 듯 귀하게 봉지를 전해 받았다.

F사의 이 밀크 초콜릿은 오랫동안 핀란드 브랜드 파워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겉 포장부터 핀란드 국가와 자연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애국심을 절로 부른다. 외양부터 '국민 초콜릿'이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이 초콜릿은 1922년 판매가 처음 시작되어 내년이면 벌써 역사가 100년에 이른다. 핀란드 사람이면 거의 누구나 어릴 때부터 이 초콜릿을 먹으며 자라났다. 아마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추억이 묻어있는 익숙한 맛이라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맛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100년 동안 변함없는 레시피는 코카콜라의 극비 레시피처럼 회사 금고 속, 철통같은 보안 하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알려진 것은 세계 최상질의 에콰도르 산(産) 아리바(Arriba) 카카오빈을 사용하는 것, 초콜릿 한 판에 생우유 3잔이 들어간다는 것(대량 생산되는 초콜릿은 보통 탈지분유를 사용) 정도다. 생우유가 많이 들어가서일까? 입에서 살살 녹는 것이 이 초콜릿의 특징이기도 하다. 많이 달지도 않은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넋 놓고 있다 자칫 너무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는 그런 맛이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 내 짐 속에는 언제나 이 초콜릿이 가득하다. 나와 함께 이 초콜릿을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다.

이 비밀 레시피에는 미담이 하나 숨겨져 있다. 창업자 아들이, 본인이 알고 지내던 한 영국인이 사위의 심각한 눈병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본인 인맥을 총동원해 용한 안과의사를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영국인 사위는 시력을 잃지 않았고 제과 업계에 종사했던 그 영국인은 보답으로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스위스 특급 초콜릿 레시피를 건네 주었다는 이야기다. 회사는 그 뒤 레시피대로 만든 초콜릿이 크게 히트하며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핀란드 사람들은 스위스에 가지 않고도 특급 스위스 초콜릿을 맛볼 수 있게 됐다. 겉은 딱딱하지만 입에서 부드럽게 녹는 초콜릿과 잘 웃지는 않지만 진국같이 따뜻하고 소박한 핀란드 사람들은 서로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이보영 인잇 초콜릿
< 초콜릿 볼 만들기>
'초콜릿 볼'은 북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디저트이자 간식이다. 커피 혹은 차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다. 오븐 없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북유럽 부모들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경우도 많다. '초콜릿 볼'은 2차 세계 대전 기간 스웨덴에서 처음 탄생했다. 당시 밀가루 부족으로 오트밀을 대용으로 한 새로운 간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코코스팔롯(kookospallot 뜻: 코코넛 볼), 스웨덴에서는 후클라드볼 ( Chokladbollar뜻: 초콜릿 볼), 덴마크에서는 화와쿠인스쿨레(havregrynskugle 뜻: 오트밀 볼)라고 각각 다르게 불린다. 북유럽 카페나 제과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스웨덴에서는 매년 5월 11일을 '초콜릿 볼의 날'로 경축할 정도로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고급 코코아 파우더를 사용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염 버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면 좋다.

재료 (20개 분량)
- 오트밀 300 ml
- 설탕 100 ml
- 무가당 코코아 파우더 3큰술
- 바닐라 향 설탕/바닐라 익스트랙1 작은 술 (없으면 생략 가능)
- 버터 100g (상온에 두어 표면이 살짝 말랑해진 상태)
- 진한 커피 (예: 에스프레소) 2큰술
- 코코넛 플레이크 100 ml (다른 고명도 가능)

만드는 법
1. 오트밀, 설탕, 바닐라 설탕 (바닐라 액), 버터를 모두 함께 잘 섞는다. (위생 장갑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2. 뜨거운 커피에 코코아 파우더를 넣고 잘 섞은 후 식힌다.
3. 1과 2를 함께 섞은 후 골고루 잘 섞는다.
3. 골프공보다 약간 작은 양을 떼어내 양손으로 잘 굴려 동그란 공으로 만든 후, 코코넛 플레이크 등 고명을 골고루 묻힌다.

* 냉장고에 넣어 차가워진 후에 먹으면 식감이 더 좋다.
인잇 이보영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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