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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마음에도 없는 예스맨, 계속하다간 병 납니다

[인-잇] 마음에도 없는 예스맨, 계속하다간 병 납니다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SBS 뉴스

작성 2021.06.18 10:59 수정 2021.06.18 11: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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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무원 참 많지만 다 똑같은 공무원은 아니다.

우리가 동사무소나 시청에서 마주치는 공무원들을 일반직 공무원이라 하고 교사, 군인, 경찰, 소방처럼 특수분야의 업무를 다루는 공무원들을 특정직 공무원이라 부른다. 내가 소속 되어 있는 119구조대는 특정직 공무원 중에서도 군 특수부대 (특전사, UDT, 해병수색대 등)에서 2년이상 군간부로 임무수행을 했던 요원들을 시험으로 선발하여 조직한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강철부대'란 TV프로그램을 봐도 우리 구조대에선 "얘는 누구 동기다, 쟤는 누구 선임이다"라며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다. 숟가락을 얹자면 나 역시도 '강철부대'에 나오는 연예인 박군과 같은 부대 선임으로 3년 넘게 같은 건물에서 생활을 했다. 코흘리개로 부대에 전입해 청소의 달인이 되어갈 즈음 박군이 코를 목젖까지 늘어뜨린 상태로 전입을 왔다. 기억에 박군이 좀 까불까불하긴 했어도 참 착하고 뭐든지 열심이었던 군인이었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보니 말이 소방관이지 제2의 군생활을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까라면 까야지'라는 생각이 나에겐 자연스러웠다. 흔히 군대에서 쓰이는 표현인데 윗사람이 시키면 군말없이 따른다는 뜻이다. 나라의 녹을 먹게 된 이상 개인 보다는 조직의 뜻을 더 생각해야 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도 왜 그랬는지 그 마음을 정확히 알진 못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소방서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작년 폭우로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서 밤새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탈진하기 일보 직전인데 비상근무 한명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누구라 할 것없이 그 일거리가 나에게 밀려왔다. 인천공항에 파견을 가는 임무에도 별 고민없이 내가 지정되었다. 어머니 집에서 남원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사실 눈 앞이 깜깜했다. 한달 넘게 사회와 격리된 채 운전만 해야하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 바쁜 훈련이 지나가고 이제 나도 연애도 하고 결혼도 생각을 해야 하는 시점에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순간 혼자 살 팔자인가 싶었다. 차에서 걸려온 구조대장님의 전화에 나도 깜짝 놀란 답변을 하고 있었다.

"예 대장님. 인천 제가 가겠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이건 무슨 고장난 자동응답기도 아니고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이렇게 잘 할까....


예스 예스맨 (사진=픽사베이)
나라는 사람은 우리구조대에 점점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 갔다. 아쉽게도 '최후의 보루'와 같은 명목으로 말이다. 남들이 하기 꺼리는 일들을 군말없이 해치우는 청소기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할 줄 알았다. 일터에서 나를 사람들이 찾아주고 열심을 인정해주면 그게 조직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 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 1년 넘게 마음을 우겨 넣고 살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편해져 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최강소방관 대회 때문에 팀 개편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들 이해해주시고 따라 주길 바랍니다"라고 구조대장님이 교대 시간에 전달을 했다.

팀 개편을 하리란 걸 일찍이 알고 있었고 내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 작년에만 팀을 세번 옮겼고 올해에 왠지 내가 또 움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최강소방관 구조전술팀으로 옮겨 열심히 훈련을 하였지만 성과가 그리 좋진 않았다. 그래서 원래 있던 팀으로 간신히 복귀를 했다. 훈련 때 다친 어깨 때문에 훈련팀에 못 들어가고 내가 또 팀을 옮기게 되었다. 1년 동안 팀을 네번이나 움직이니, 내 마음을 따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나만큼 팀을 옮겨다니던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던졌다.

"야 나도 팀 많이 옮겨봐서 아는데, 그러면 왠지 사회부적응자 같이 느껴지지 않냐. 난 잘못한게 하나도 없는데 말야."

내 마음이 정확히 그랬다. 난 여기에 와서 적응을 잘 해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계속 회사에 안착하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대장님께서는 나를 앉혀두고 다섯번째 팀 이동을 권유하고 있었다.

"최반장 미안한데, 최강소방관 때문에 팀을 또 옮겨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침묵하다 욱하는 마음에 대장님께 대들었다.

"대장님. 솔직히 구조대 뜻이 그렇다고 하면 저는 무조건 옮기는데요, 왜 저만 까나요. 다른 인원들은 가정이 있어서 안되고, 누구는 집이 멀어서 안되고, 하기 싫어서 안 시키고. 매번 왜 저만 구조대 청소기처럼 살아야 합니까?"

참고 참다가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일들까지 다 토해내자 눈물과 설움이 밀려왔다. 단 한번도 상관에게 "NO" 라는 대답을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나를 표현하며 하기 싫다고 말을 했다. 어렸을 때야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잃어버릴까 하는 마음에 매번 알겠다는 대답만 했었는데 크고 나서도 내 주변의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인정 받기 위해 "YES" 만 말하는 예스맨이 되어버린게 너무 속상하고 바보 같았다.

그후로 며칠 나는 방황을 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이건 내가 스스로 만든 덫에 내가 걸려서 허우적 되고 있는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나만의 문제였다. 소방관이 되면 사실 그걸로 끝이겠거니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되었고 운동 밖에 할 줄 몰랐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 난 앞으로 꽃길만 걸을 것이라 여겼는데 삶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남에게 행복하라 말을 하면서 나는 내 행복 하나 찾지 못하고 매일 헤매고 있었다.

늦은 밤 술에 잔뜩 취한 팀장님의 전화가 왔다.

"야 최반장. 힘들었냐?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야지."

"팀장님 아닙니다. 술 많이 드셨어요?"

"나야 뭐 맨날 먹지. 오늘 술 마시는데 니가 계속 마음에 모래알 처럼 까슬까슬하게 걸려. 미안하다. 니가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어. 야 나도 그랬어. 나도 구조대 뜻이라고 하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다 깠어. 내가 최강소방관 대회를 몇번을 나갔는데. 그냥 그렇게 살면 그게 맞는 줄 알았어. 그런데..그런데 너는 그렇게 살지마라. 왜 너만 그러고 사냐. 최반장. 너 열심히 하는거 구조대 사람들 다 알아. 그러니까 너도 못한다고 해."

"예 팀장님…"

이제 한달도 더 지난 일이다. 시간을 지내고 보니 팀장님의 위로가 내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사업하는 친구가 조언을 해주길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근원을 잘라버리면 되는 거라고 했다. "그럼 나를 잘라내?" 힘들게 들어간 구조대에 퇴사를 종용하는 친구의 위로는 참 도움이 1도 안되었다. 그런데 팀장님의 위로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 말도 없는 사람이 술의 힘을 빌려 겨우 부하 직원에게 꺼낸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힘을 준것 같았다.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에 힘이 붙으니 괜찮아졌다.

꼭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직장생활이야 이미 꼬일대로 꼬여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보다 사람은 사랑, 위로, 배려, 인정, 공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힘을 얻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같다.

 
<청학동에서 가르치는 행복의 조건>

첫째 먹고 살아야 한다.
배가 고프면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먹는 걸 훔치게 된다.

둘째 인정 받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인정을 받는 것은 행복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직장생활을 하기도 훨씬 전에 저 청학동에서 가르치는 행복의 조건을 읽고 마음에 새겼다. 그땐 '그게 맞구나' '아 그런거 같아' 하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고보니 행복은 훨씬 더 복잡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동료의 위로도 저 조건 중에 하나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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