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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이 IOC에 농락당하는 이유

[취재파일] 한국이 IOC에 농락당하는 이유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1.06.15 08:54 수정 2021.06.15 09: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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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가 국제올림픽위원회, 즉 IOC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된 지도와 관련해 IOC가 '오불관언'과 '수수방관'을 넘어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버젓이 지속하는데도 사실상 속수무책이기 때문입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일 독도 표기 문제와 관련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개입과 중재를 요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로부터 9일이 지난 10일 IOC가 공식 답변을 보냈는데 형식과 내용 모두 한국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분명히 바흐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답장은 그보다 지위가 한참 낮은 제임스 매클리오드 IOC 올림픽연대국장 명의로 작성됐습니다.

내용은 더 가관입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와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독도 표기는 단지 지정학적인 표시일 뿐 정치적 선전은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IOC에게 질의했는데 자신들의 의견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일본 측 주장만 그대로 전달한 겁니다.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서 일본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는 독도
독도 표기 문제가 처음 논란이 된 것은 지난 2019년 여름이었습니다. 2019년 8월 9일 IOC가 보내온 답변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독도 표기 문제와 관련해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것은 지형도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IOC는 이 문제와 관련해 도쿄조직위와 계속 논의해나가겠다(This topic has been raised with the Tokyo 2020 Organising Committee, and we refer you to their statement in which they make it clear that the map on their website is a topographical map of the area. We will continue our discussions with the Organising Committee about this topic)."

지난 10일 IOC의 답변은 2년 전 것을 사실상 재탕한 것에 불과합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IOC의 권고에 따라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삭제하고 홈페이지에서 독도 표기를 없앤 한국으로서는 배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 IOC는 왜 일본 편을 들고 한국을 무시하는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IOC가 정의와 상식보다는 돈과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IOC의 돈줄인 13개 올림픽 파트너 가운데 일본 기업은 도요타, 브리지스톤, 파나소닉 등 3개사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1개사뿐입니다. 삼성전자의 계약기간은 2028년까지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현재 재계약 여부로 IOC에 영항력을 행사하기도 어렵습니다.

도쿄올림픽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도쿄올림픽 전면 보이콧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불참한다고 해도 IOC와 일본에게 이렇다 할 불이익을 줄 수 없습니다. 야구, 축구, 유도 등 주요 종목에서 라이벌 한국과 치열한 메달 경쟁을 해야 하는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불참이 오히려 '희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IOC는 한국이 보이콧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보이콧을 할 경우 결국 IOC는 정치적 이유로 불참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고, 이렇게 되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비롯해 앞으로 국제대회 출전에 제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국의 경우 올림픽에 병역 특례, 연금 수령, 각종 포상금 등 엄청난 혜택이 걸려 있어 보이콧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IOC가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IOC는 정치 배제라는 속성상 웬만해서는 각국 정부와 맞상대를 잘 하지 않습니다. 결국 IOC와 제대로 싸우려면 대한체육회가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IOC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상급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장관이 대통령에게 덤벼야 하는 격입니다.

더군다나 IOC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엔트리를 파격적으로 늘려주며 출전을 성사시켰고,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마찰을 빚을 때마다 체육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게다가 오는 10월 서울에서는 제25차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스포츠계의 UN총회로 불리는 ANOC 총회는 해마다 전 세계 206개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표가 참석하는 회의로 각 NOC의 현안을 논의하고 세계 주요 인사와 교류 활동을 펼치는 대표적인 국제스포츠행사 중 하나입니다.

대한체육회 (사진=연합뉴스)
만약 대한체육회가 IOC와 전면전을 벌이면 체육회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이 행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2024년 강원유스동계올림픽 준비와 각종 국제대회 유치, 그리고 태권도 정식 종목 유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IOC가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드는 것은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IOC와 싸울 수도 없고 싸워도 불이익만 받게 된다. 독도 표기는 영토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외교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다급해진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0일 황희 장관 명의로 중재를 촉구하는 서한을 IOC 위원장에게 긴급 발송했지만 돌아올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IOC와 일본의 행태를 응징할 뾰족한 묘수가 없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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