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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쫄이'를 벗은 엑스맨?…여름엔 원조 sf! [북적북적]

'쫄쫄이'를 벗은 엑스맨?…여름엔 원조 sf!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295 : '쫄쫄이'를 벗은 엑스맨?...여름엔 원조 sf!


여름입니다. 우리 나라도 이제 차츰 백신이 확산하면서, 일상에 가해졌던 제한들이 조금씩 풀리고 있지요. 지금 제가 있는 뉴욕은 성인 인구의 절반 가량이 백신 접종을 완료함에 따라 5월 말부터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그래도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언뜻 보면 마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보통 여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리의 풍경 속에, '보통 여름'이라면 어디서나 흔하게 눈에 띄었을 무언가가 빠져 있습니다. 마치 '여름 각설이'처럼, 이 계절이면 으레 돌아오는 극장용 블록버스터 영화 광고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1년여 동안 영화 제작이 불가능하다시피 했으니, 이제 영화관들은 모두 문을 열기 시작했건만 정작 내다 걸 수 있는 신작 영화가 별로 없습니다. 여름에는 웅장한 스케일의 판타지SF 계열 영화들이 대대적으로 개봉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걸 무심결에 당연한 것처럼 느껴왔는데 말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가 겪어온 무수한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여름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던 떠들썩한 '단골손님'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길이 멀다는 것을 문득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올해는 보이지 않는 '여름 영화'들 대신 [북적북적]만의 -매우 조촐한- 여름 이벤트(?)로 이 계절을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날 인기있는 판타지형 SF 블록버스터들의 뿌리를 파다 보면 맞닥뜨리게 될 문학작품.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21세기 초대형 문화상품들의 토대를 닦았지만 이제는 많이 잊혀진 SF 걸작 2편을 한꺼번에 만나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내 제의에 존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도, 사람 참!"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존의 입에서 '사람'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대개 '멍청이라는 말과 통했다.

나라고 그냥 듣기만 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왕을 쳐다보지도 말라는 법이 있니?"

"아저씨 말이 맞아요. 하지만 고양이가 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게 어른인 내게 괴상한 꼬마가 던진 대답이었다.

존의 말이 옳았다. 아기 때부터 쭉 지켜본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존이 겪은 몇 가지 굵직한 사건 말고는 그리 알지 못한다. 가령, 존은 여섯 살이 돼서야 걷기 시작했다. 열 살이 되기 전에는 여러 절도 사건에 연루되고 경찰을 죽인 적도 있었다. 겉모습은 아직 어린애였던 열여덟에는 남태평양 외딴 섬에 정착지를 건설하는 황당한 일을 벌였고, 그때보다 별로 자라지 않아 보이던 스물셋에는 존을 체포하려고 6대 강국에서 파견한 전함 여섯 척을 모두 물리치기도 했다. 그 외에는 정착지에 모여 살던 존과 동료들이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이상한 존] 中)

무려 1935년에 발표된 장편소설 [이상한 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기 발췌한 이 서두 부분만 읽고도, '이거…. 영화 '엑스맨' 시리즈랑 구도가 비슷한데?' 이미 느끼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돌연변이처럼 괴상한 아이, 존. 아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한참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도덕률이나 사고방식도 기존의 사회와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지독한 악행에 가까운 짓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그 같은 태도의 뿌리에는 지금의 인류를 '운명이 끝나가는 이등 생물'로 보는 새로운 인류('호모 슈페리어')로서의 시선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상한 존' 같은 초인은 존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형태의 돌연변이 초인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존'은 자기 같은 초인들을 텔레파시로 찾아내 끌어모아서 집단을 이루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외딴 섬에 '정착지'를 개척하지만, 곧 20세기 초반의 강대국 정부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일본, 러시아 등이 연합군을 형성해 초인들의 정착지를 탈환하려고 찾아오지만, 몇 명 되지도 않는 이들의 초능력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합니다.
 
"출항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세 번째 탑승객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점점 참을성을 잃고 회의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존은 그 아이가 반드시 올 거라 확신했다. 내가 짐을 챙겨 여행 가방을 막 닫으려는데 아이가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괴상하고 꾀죄죄한 흑인 꼬마를 보고 있자니 객실을 함께 사용할 생각만으로도 불쾌해졌다. 아이는 여덟 살 정도로 보였지만, 실제는 열두 살이 넘었다.

….. 응 군코의 행동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는 존의 안정감과는 아주 달라서 강렬하고 열정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천재적인 지능을 넘어 비정상적인 아이인지, 아니면 감정적으로 진짜 초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존이 웃었다.

"그 애는 아직 어리지만, 괜찮은 아이예요. 무엇보다 텔레파시 능력을 타고났어요. 그쪽으로는 훈련만 조금 하면 나보다 나아요. 하지만 우리 둘 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에요."

이집트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초인이 찾아왔다. 모스크바에서 찾아낸 '로'라는 여자아이였다. 마찬가지로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보여서 소녀 티를 벗지 못했지만, 실제로는 벌써 열일곱이었다. 로는 가출한 뒤 영국으로 오는 소련 증기선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영국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몰래 도망쳤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넉넉히 모아둔 영국 돈으로 웨인라이트 저택까지 혼자 찾아왔다."

저는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친척집의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때 읽은 [이상한 존]은 장편소설을 어린이 청소년용으로 줄이고 각색해서 다른 SF 명작 3편과 함께 묶은 책의 첫번째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혹시 해적판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당시에도 이미 굉장히 낡은, 너덜너덜한 책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청소년용으로 축약돼 있었지만, [이상한 존] 특유의 쉽게 잊을 수 없는 묘하고 서늘한 매력은 고스란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더 지나 영화 '엑스맨'을 접했을 때, 제가 "아니 이거는… '그 얘기'잖아?!" 했던 까닭을 이 줄거리만 보고도 쉽게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엑스맨'은 [이상한 존]의 설정들과 몇몇 테마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상한 존'의 인간관은 찰스 자비에 교수보다는 매그니토에 좀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매그니토는 돌연변이를 거부하는 인류에 대한 증오와 공포로 움직이지만, '이상한 존'은 "호모 사피엔스 따위, 이대로는 미래가 별로 보이지 않는 뒤처진 종족이지만… 그냥 봐드릴게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낭독하는 이 책의 도입부에도 잠시 언급되는 것처럼, 존과 동료 초인들은 현 인류를 내버려두고 집단 자폭하는 결말을 맞습니다. 이 결말이 아주 건조하고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묘사돼서 더욱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영화 '엑스맨'을 보고 이 작품을 다시 찾으려 했지만, 제목도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잊어버려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생각날 때마다, 기억나는 줄거리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검색해 보다가 제가 어려서 접했던 그 인상적인 이야기의 제목이 [이상한 존]이었으며 본래는 장편소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렵게 다시 찾아 읽은 [이상한 존]의 원작은 기억 그 이상으로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용 문고판에선 생략해 버려야 했을 '19금' 요소들로 가득했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가 읽어도 다소 충격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전복적인 성의식, 인간관, 세계관이 펼쳐집니다.

작가인 올라프 스테이플던은 SF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아마 이름을 처음 들어보시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테이플던은 20세기 초반 SF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아서 C. 클라크부터 버트란드 러셀에 이르기까지 SF문학계와 독자들뿐만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품들을 여럿 썼습니다. 어쩌면 지금 봐도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그의 문제의식들이 오히려 그의 작품들이 좀더 대중적으로 널리, 오래 사랑받는 데는 장애가 되지 않았나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아마 스테이플던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판타지SF의 옷을 빌려 입은 철학소설 작가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상한 존]에서도 스테이플던은 '초인'이라는 존재를 빌려서, 자본주의와 현대 문명사회 체제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이상한 존]은 엑스맨의 원형이되, 화려한 '쫄쫄이' 코스튬을 입기 전의 엑스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꽤나 불편한 구석이 많은 엑스맨, 코믹스와 영화의 조미료를 첨가하기 전의 엑스맨입니다. 비단 엑스맨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명작인) [제노사이드](다카노 가즈아키)를 비롯해 지난 100년 간 쏟아진 '초인SF물'들의 시조새 같은 작품입니다.
 
"피곤해졌습니다. 잠시 쉬고 싶군요. 실은 어젯밤에도 별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것이 지구인에게는 [예]에 해당하는 약식 표현이라는 사실을 내게 배워 알고 있었다.

"긴장을 풀고, 로카의 교리 전체가 명백히 구현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뭐라고요?"

"로카의 춤을 보고 싶습니까?"

"오."

화성어의 빙빙 돌려 말하기와 복잡한 완곡어법은 한국어를 능가할 정도였다. "예, 물론입니다. 언제든 구현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구경하고 싶습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中)

두번째 작품은 SF문학의 계보에서 올라프 스테이플던으로부터 두어 세대를 건너뛰어 봅니다. 1963년에 발표된 단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입니다.

1963년에 발표된 미국 SF 소설에 '한국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는 게 꽤 놀랍지요? 하지만 한국어를 무려 화성인들의 언어에 비교하는 이 대목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웃음포인트이기도 합니다. ('화성어'를 아름답고 우월한 선진 언어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기분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한국이 전세계에 잘 알려진 나라이지만, 1963년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이 아니었다면 '코리안'이란 단어를 들어볼 일도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60년대 미국) 독자들이 "들어는 봤지만 그 밖엔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의 언어가 '화성어'에 비유하기 위한 언어로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라 넘겨짚어 봅니다. 작가의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실제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화성인들이 완곡한 표현을 즐겨 쓴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한국어를 끌어오는 게 –우리가 봐도- 아주 틀린 용례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작중 주인공의 박학다식, 나아가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지적 수준을 뽐내는 데도 제격인 장치입니다.

19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SF계의 스타 중 스타였던 이 작가, 로저 젤라즈니는 사실 잊혔다고 보기는 힘든 인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지간한 판타지물 팬이 아니라면, "젤라즈니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읽은 작품은 없다"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1995년, 작가가 아직 한창때였던 50대에 애석하게 사망한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명세와 인기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된 작품이 별로 없다 보니 그런 붐을 타고 다시 읽히는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1세기의 CG로 구현한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은, 장대한 스케일의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또렷하게 그려냈던 작가인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의 작품 자체가 영상물로 옮겨진 적은 별로 없지만, '로저 젤라즈니 스타일'은 그의 팬이라고 고백한 무수한 작가들과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젤라즈니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원작을 비롯해 동시대 판타지소설의 대가로 인정받는 R.R.마틴이 평생의 스승 같은 인물로 꼽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화성인들은 구체적인 사물에 관해 쓰고 있었다. 바위, 모래, 물, 바람 등에 관해.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상징 속에 도사리고 있는 태도는 극단적일 정도로 염세적이었다. 이것은 몇몇 불교 경전을 연상케 했지만, 그것들보다 더 심한 느낌이었다. 최근의 연구에서 깨달은 것은 그것이 구약 성서의 어떤 부분을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전도서]를.

바로 그랬다. 글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단어까지도 꼭 닮아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화성어로 번역한다면 실로 훌륭한 실습이 되어 줄 것이다. 마치 포를 프랑스 어로 번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말란의 길]에 귀의하는 일은 결코 없겠지만, 옛날 한 지구인이 같은 생각을 했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책상 위의 독서 등을 켜고 책 더미에서 영역판 성서를 찾아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中)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화성에 가서 멸종 위기에 놓인 화성인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된 천재 시인이 화성인 사회에서 신성한 춤을 담당하고 있는 무용수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은근한 유머감각, 현학적인 매력을 풍기면서도 진솔한 동감을 이끌어내는 주제의식, 단편다운 묘미가 일품인 반전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천재성만큼 건방진 매력이 번득이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속 시인을 비롯해, 로저 젤라즈니가 그리는 (백인 남성) 주인공들은 대체로 언제나 고전적인 남자 배우들을 연상시킵니다. 몇 만 년의 시간 정도는 가뿐히 종횡무진하는 먼 미래 시점의 우주 판타지를 주로 쓰고 있지만, 그 안을 유영하고 방황하는 주인공은 2-30년대 흑백영화 속 고독한 탐정 험프리 보가트 같은 인물입니다. (폼을 엄청 잡는) 건조하면서도 쓸쓸한 신사. 최소한 영화나 문학 작품 속에서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허세매력남' 느낌… 아시죠?

앞서 읽은 [이상한 존]의 올라프 스테이플던이 SF의 얼개를 빌려 전복적인 인간관을 펼쳐보였던 불온한 매력의 영국 작가라면, 그로부터 수십 년 후의 스타 작가인 미국의 로저 젤라즈니는 오히려 모럴이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고전적인 데가 있습니다. 아울러, 신화를 비롯해 다양한 레퍼런스에서 가져온 상징들을 풍부하게 활용하고 있는 특유의 유려하고 화려한 문장들은 이야기의 흑백영화 같은 매력과 낭만성을 더욱 배가시킵니다.
 
"조그만, 빨간 머리를 한 인형 같은 소녀가, 화성의 하늘을 연상시키는, 사리sari처럼 속이 비치는 옷을 입은 채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높은 깃대 끝에 달린 오색 깃발을 바라보는 어린애처럼.

[여어.]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답례하기 전에 고개를 숙였다. 내 신분은 상승한 듯 했다.

[춤을 추겠습니다.] 하얀, 정말로 하얀 카메오 –그녀의 얼굴- 속의 빨간 상처 같은 입술이 움직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눈, 꿈과 그녀가 입은 옷과 같은 색깔을 한 두 눈이, 내 얼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방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오늘 발췌낭독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우리나라에선 '열린책들'이 2009년에 출간한 로저 젤라즈니 단편집에 실려 있습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외에도 걸작 단편들이 여럿 실려 있는 책입니다.

올 여름 영 개봉 소식이 없는 대작 영화를 보러 가는 대신, 시원한 에어컨을 끼고 '방콕'하며 뭘 하면 좋을까. 지나간 인기드라마 연달아 보기도 좋지만, '방콕에는 책이지!' 하면서 오랜만에 새롭고 색다른 작가를 '파보고' 싶을 때. 올라프 스테이플던과 로저 젤라즈니 둘다, 누구를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만한 후보들입니다.

극장에 가서 남이 만든 영화를 보는 대신, 아직 누구도 손대지 않은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르는 책장을 넘기며, '나라면 이 작품을 이런 스펙터클로 옮겨 보겠어' 상상과 함께 읽어보기. 블록버스터가 없는 여름을, 오히려 더 재미있게 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슬며시 기대해 봅니다.

이 뜨거운 여름에도 [북적북적] 시원하게 함께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출판사 '블루프린트'/'열린책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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