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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김제동,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슬픈 재담꾼'

[그사람] 김제동,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슬픈 재담꾼'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1.06.12 08:15 수정 2021.06.14 10: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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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2019년 9월 이후 이 사람 소식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복귀를 준비 중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는데 그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 사람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지인을 통해 만남을 요청했다. 거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선선히 요청을 받아들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그동안 왜 방송을 안 하셨습니까.
"혜택 받는다는 말을 듣는 게 싫었습니다. 저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뭐든지 간에 일단 시끄러워지면 안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못 하게 되는 거죠. 시끄러워지면 다른 사람한테 굉장히 미안합니다. 예를 들면 KBS 같은 경우는 제 출연료 때문에 수신료가 올라간다, 그렇게 되는 거니까… 그래? 그럼 내가 그만 두면 되는 거지? 하고 그만 하는 거고요."

남의 기분을 살피는데 도가 튼 사람이니 제작진의 눈빛만 보고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고 자기 때문에 남들 불편하게 되는 것은 못 견디는 사람이니 상대방이 입 떨어지기 전에 스스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강연에 주력했으나 이것도 고액 강연료 논란에 휘말리면서 중단했다. 코로나 사태까지 터지면서 여섯 명이던 기획사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지금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당연히 운전도 직접 한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연탄'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하루 두 번 산책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다. 하루 세 끼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큰 일이다. 뜨개질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명상을 한다. 가끔 산을 찾고 한 달에 두 번 줌으로 청소년 대상 화상 강연을 한다. 두 달 전에는 굴착기와 지게차 운전 자격증을 땄다. 몹시 바쁘다고 했지만 무엇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침마다 108배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109배를 합니다. 저희 어머님이 교회 권사신데 108배 하면 죽인다고 하셔서 109배 한다고 했더니 그건 괜찮다고… 1년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20분 정도 걸리는데 그때는 온전히 제 시간이지요. 온갖 생각이 다 올라옵니다. 내게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하는 걸 아는 거죠. 몸이 숙여지는 만큼 마음도 같이 숙여집니다."

허리가 삼십 인치가 채 안 돼 보이는 날렵한 몸매는 방송 활동과는 무관하게 이 사람이 자신의 몸을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였다. 마치 칼을 갈 듯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 6월 2일 SBS 로비에서 짙은 선글라스와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 사람을 처음 만났다. 방송사는 집 다음으로 편한 공간일 테고, 믿을 만한 지인의 소개로 성사된 만남이니 적어도 상대방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을 법한데 그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보일 수 있는 주의와 조심,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경계의 몸짓이었다. 모르는 타인을 만날 때는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의 SNS 계정에 몰려와서 오물보다 더한 댓글을 달 수도 있는 사람이란 생각, 느닷없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폭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언젠가처럼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의 뒤통수를 태극기로 가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렇게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로비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저희를 경계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밖에 나오면 연예인들은 남들이 어떻게 보든 근무 시간이잖아요. 늘 가젤처럼 촉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고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히면 진짜 죽는다는 생각이 늘 있으니까요. 그게 몸에 배였을 수 있겠네요."


-상처받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상처받는 거 두렵죠. 당연히 두렵죠. 제 선배가 언젠가 그러셨어요. '힘내라. 욕이 배 따고 들어오겠나'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내 해보니까 배 따고 들어옵디다. 해도해도 비난에는 면역이 안 생기는 거 같아요"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지 않은 지 몇 년이 됐다고 했다.

"제 이름을 검색하면 좋은 기사들은 거의 안 나오고 압도적으로 안 좋은 기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안 좋은 기사들을 읽으면 내가 나를 보호하기 힘들겠다 싶어서 일부러 검색 안 합니다."

사는 곳, 작업 공간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의 시선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 자신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다 못해 굴착기 면허증을 보여줄 때도 개인 정보는 가리고 보여줬다. 자신의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았다. 추가 질문과 답변도 중간에 제3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불편했지만 이 사람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태도였다.

-극성스러운 안티팬들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받는 것이 싫기 때문인가요?
"그거랑은 관계없고요. 그냥 연예인 김제동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김제동에게 '연탄'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하루 두 번 산책시키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다.
극히 예민하고 조심스럽고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는 4시간 반의 대화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노제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의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권력에 의한 명백한 핍박이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정권의 특혜를 입은 것 아니냐는 논란 속에서 다시 마이크를 놓아야 했다. 보수 정권에 이어 진보 정권에서까지 방송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금의 처지가 억울할 법한데 억울하다는 표현은 애써 자제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제가 한 행위에 대한 결과물이죠. 제가 한 일이 정치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그게 상징화되고 그렇게 됐을 때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제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만들어져 갔고…그런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이 제 선의만 알아주겠어요. 저도 그렇게 못하는데…거기에 따른 결과도 받아들여야죠."

보수 권력 시절 핍박을 받을 때 힘들긴 했지만 명분과 대의가 이 사람에게 있었다. 그러나 진보 정권에서 이 사람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 특혜, 내로남불, 위선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 사람에게는 더 아팠을 것이다.

연예인에게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수입이 끊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연예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살아있음의 확인 같은 것이다. 그런 기회가 사라지거나 봉쇄되는 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다. 지난 1년 9개월의 시간은 치유와 성찰의 시간인 동시에 죽음 같은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숙명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연예인들은 스스로를 계속해서 지워 나가야 하는 직업 중에 하나잖아요, '쟤는 저게 마음에 안 들어' 이러면 그 부분은 지우고, '쟤는 그게 좋다' 하면 그 부분을 극대화하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온전히 자기를 표현해도 괜찮을 만한 환경에 있지 못하는 거죠."

내가 죽을 거 같이 고통스러운 게 공황장애, 나를 죽이고 싶은 것이 자살 충동, 나를 죽여버리는 게 자살인데 이 세 가지 증상이 특히 연예인들에게 많다고 했다. 자신도 그런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런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경북 영천에서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만 줄줄이 다섯이다. 이 사람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조선일보 보급소장을 하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애비 잡아먹은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고, 밖에서 애비 없는 놈이란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지금도 맥주병 열몇 개를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술집 알바로 잔뼈가 굵었다. 누나들이 공장 생활을 했고 대우조선에 다니던 큰누나 남편이 산재로 사망했다. 생계곤란 사유로 군대를 방위병으로 다녀왔다. 개신교 신자였는데 2014년 박용만 전 두산회장을 대부로 삼아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김제동의 어린시절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성적이 안돼서 교대를 가지 못했다고 했다. 학창 시절 가장 좋은 성적이 반에서 7등이란다.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가 가수 김민기, 신영복 교수, 개그맨 전유성에 이어 대한민국 4대 천재 후보로 이 사람을 꼽을 만큼 창의적이고, 헌법 전문을 줄줄 외우는 이 명석한 사람이 학교 성적이 별로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고2 때부터 공사판 막노동 일을 하고, 다섯 명의 누나와 한 방에서 살아야 했다는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공부에 집중할 형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사람 김제동
사람을 울고 웃기는 이 사람 재주는 천부의 재능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군대 문선대에서 갈고닦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에서 대학 축제, 야구장 사회자 등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2002년 방송계에 입문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알린 지 불과 8개월 만에 지상파 3사 예능 프로그램 6개에 출연하면서 전 국민이 아는 스타가 되었다. 방송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KBS 연예대상을 거머쥐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현기증을 느낄 만한 초고속 출세였다.

3.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사전 행사 사회를 본 것이 이 사람의 인기 때문이었다면 그 다음 해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노제에서 사회를 본 것은 이 사람의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무대에 선다는 것의 정치적 의미를 몰랐을 리 없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큰 일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해 5월 장례식에 관여한 수많은 사람 가운데 이 사람 목소리와 모습이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이런 것이 존재감일 텐데 그 이후로 이 사람은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상황에 말려들어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무대에 서고 싶다고 스스로 손을 들고 나선 것도 아니었고 생전 고인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비탄에 빠져 있는 유족의 요청을 인간적으로 뿌리치기 어려웠고 그 무대에서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을 뿐이다.
 
"제가 어떤 상황에 말려들어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개인의 선택이 없으면 안 되는 거죠. 노제 사회도 유족의 요청이 있었다지만 제가 안 간다고 하면 안 갈 수 있었던 거죠. 노 대통령 1주기부터 5주기까지 매년 봉하에서 콘서트하고 공연하고 했던 것들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죠."

사드 추가 배치로 폐허가 된 소성리를 찾은 김제동(사진 제공 : 평화뉴스(김영화 기자))
이 사람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적인' 인물이 되었다. 정치란 어느 한 편에 속하는 일이고 다른 편의 적이 되는 일이다. 특정 진영의 열광적인 환호는 다른 진영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불렀다. 모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에서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진보 진영에서 볼 때 '개념 연예인'이었지만 다른 진영이 볼 때는 설익은 이념으로 무장한 '입진보'의 전형이었다. 대학생 등록금 문제, 세월호, 사드 배치 문제가 터졌을 때 현장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 하나만 쥐어 주면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자신의 생각,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니 이 사람이야 말로 최고의 선동가다. 어떤 연예인들처럼 개념 발언 한 두 번 하고 끝내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반대 진영에서 보면 반드시 저격해야 할 적장이었다.

-왜 보수진영에서 자신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고 생각하세요.
"저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제가 가진 재능이 너무 출중해요. (폭소) 어디를 어떻게 막아도 어떻게든 뚫고 나오잖아요. 토크 콘서트로 뚫고 나오고 헌법을 들고 나오고…저는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한 걸음 한 걸음 더 성장한 거 같아요. 돌이켜 보면 고마운데 그 일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리 봐도 철삿줄로 된 신경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싸움에 특화된 사람은 아니고 싸움을 즐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이기는 싸움을 해온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진보 세력이 득세한 상황에서 이 사람은 오히려 더 난타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굳건히 서있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후회 같은 것은 없을까 싶었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소성리 할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김제동 (사진 제공 : 평화뉴스(김영화 기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같은 선택을 했을 거기 때문에…오히려 한 행동에 비해서는 여파가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억울한 일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그 목소리가 단호하고 결연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최근 신간 관련 인터뷰가 있는 유튜브 댓글 기능을 막아 놓았다. 비난 댓글을 막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 사람은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싸움을 포기하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제가 막으라 그랬어요. 댓글을 개방하고 토론도 해야 하지만 와서 밑도 끝도 없이 쌍욕을 쓰는 건 여기를 화장실 취급하는 거잖아요. 자기들 똥오줌 싸라고 만들어 놓은 데가 아니잖아요. 말 하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지…이건 소통과는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보수층의 공격을 언급할 때 이 사람 말이 다소 거칠어졌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애써 헤아려보면서 그 사람들은 그럴 수 있고 가치의 문제인 만큼 내가 반드시 옳고 그들이 반드시 틀렸다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어쩌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왜 사드 문제를 거론하지 않느냐, 조국 사태에서 왜 침묵했느냐는 공격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런 사람들과는 말도 섞기 싫다는 태도였다.

"그 사람들 이야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해명하는 것 자체가 너무 찌질하고 구질구질해요. 역사적으로 보면 선택적 분노를 가장 많이 한 신문사가 그런 선택적 분노를 만들어 저를 공격하는 거잖아요."

자신의 해명이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다만 확인을 요청하니 대답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그런 문제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정부 들어선 이후인 2017년 9월 성주를 찾아 사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언급했다고 했다. 정유라는 입에 올리면서 조국 사태 당시 침묵하는 것은 선택적 분노 아니냐는 지적 역시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오늘 밤 김제동>할 때 지금 민주당 의원이 된 변호사(김남국 의원이다)가 나와서 조국 법무장관 문제에 대해 토론한 적 있어요. 생방송 도중에 그 분이 '김제동 씨가 이러면 어떡하냐, 너무 편파적'이라고 항의하고 그랬어요. 제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법무장관이니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냐'했고 여는 말, 닫는 말에서도 다 이야기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보수 언론이) 언급하지 않아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 권력을 향해 외치던 목소리의 크기만큼 진보 정권을 향해서도 집요하게 할 말을 다했느냐고 이 사람에게 따져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사람은 그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해도 욕을 하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듯했고 그들과 더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이길 수는 있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 역시 어쩔 수 없이 상처 입고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지 어느 쪽인지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4. 민주당도 아니고 정의당도 아닌 미래당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정당을 지지하고 후원한다. 미래당은 20-30대 청년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정당이다. 10여 년 전부터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해왔다.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고 교육감 선거에서는 학생들에게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인들이 청년들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거라고 등록금 투쟁 때부터 이야기해 왔어요. 지금 20-30 세대들이 이제 정치의 주축이 되어가고 있잖아요. 어찌됐든 이제 대통령이 되려면 이들의 표심,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십몇 년 전부터 지지하고 후원해온 정당이지만 이 청년들이 50대가 넘어 기득권 세력이 되면 그때는 지지를 접고 다른 정당을 후원할 것이라고 했다.

헌법 조항을 줄줄 외우면서 헌법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할 때 그리 크지 않은 이 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이 사람이 쓴 헌법 에세이가 국회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거론됐고 유승민이 진보 진영에서 헌법 가치를 독점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며 이 사람 책을 언급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유승민 의원님이 악의를 가지고 한 말씀은 아닌 거 같습니다. 저를 왜 진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제동 씨나 진보 사람들이 이런 헌법 책을 내고 강의를 하는 만큼 보수진영도 헌법적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헌법 이야기를 할 때 재밌고 보람을 느끼는 거지요?
"그게 욕이든 뭐가 됐든 헌법이 화제가 된 적이 없잖아요. 저는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저 때문은 아니겠지만 청년들이 헌법을 읽고 그 소감을 묶어서 책을 내기도 했고요. 사실 헌법 핑계로 만나서 연애하고 놀다가 그러다가 의견이 엇갈리면 헌법도 보고 그러는 거지요."

어떨 때는 투지를 상실한 전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헌법과 청년 정치를 말할 때 보면 이 사람이 '정치'라는 화두를 쉽게 놓을 거 같지 않다. 이 사람에게 정치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행복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과, 음료수병을 넣어두고 다닌다는 가방에 세월호 추모 노란 고리가 달려 있었다.

5.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했다.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을 할 때 이 사람 표정이 다소 쓸쓸해 보였다.

"제가 그냥 굉장히 귀엽고 재밌고 웃기는 사람으로 돌아가기는 이제 힘들죠. 저를 보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50-60%는 좌파, 그 다음에 무한도전의 배추,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이런 이미지를 악의적으로 덧씌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표상들이 덧씌웠지 않았을 때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거죠"

이 사람이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이경규는 여전히 연예계 정상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 사람들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방송 쪽의 재능은 지금 방송하시는 분들을 제가 따라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토크 콘서트에서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공연을 했다고 생각하고요. 방송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봅니다. 방송 3사에서 주는 상도 거의 다 받았고요."

그사람 김제동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방송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숨기지는 않았다.

"제게 맞는 프로그램, 예를 들면 톡투유 같은 프로그램은 코로나 지나고 나면 다시 하고 싶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방송 외적인 걸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그런 것을 뚫고 나가려면 힘들 텐데 그래도 한번 뚫으면서 같이 해보자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해야죠"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인에게 잊혀지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방송에서 하차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천하의 김제동을 모르는 사람이 있단다.

"중학생쯤에서는 저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가 제일 아쉽죠.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 일을 만났을 때 내가 영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사람 김제동
연예인으로 침체는 정치 바람을 타서만이 아니라 재능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사람의 현재 모습이 정치적 외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연예계에서는 이런 말이 오가는지도 모른다.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내야 돼, 김제동을 봐, 정치 바람 잘못 타면 저렇게 돼' 그 말이 이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말인지도 모른다.

방송에서 내려온 뒤 토크 콘서트를 시작했다. 방송에서 무대를 찾을 수 없으니 스스로 무대를 만든 것이다. 전국을 돌면서 대중들을 만났다. 한 달에 적게는 5천 명, 많게는 2만 명까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웃었고 그들을 웃기기도 했다. 5백 번이 넘는 토크 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남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제동의 진면목은 방송보다는 이런 대중 공연에서 더 잘 드러난다.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임을 즐기는 느낌이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했고 그런 분들을 통해 엄청난 공부를 한 거 같아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남을 웃길 수 없는데 그런 분들이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시니까요. 제 직업이 사람들과 멀어지고 괴리되기 쉬운 직업인데 많은 분들을 만나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지요"

그런 만남을 통해 대중의 언어로 말할 줄 알고 대중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지 않을 리 없는데도 침묵하고 자숙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사람 강연은 한 편의 공연이다. 가수가 노래를 하고 무용가가 춤을 추고 음악가가 연주를 하는 것처럼 이 사람은 말로 공연을 한다. 자신의 공연을 음율이 없는 판소리라고 표현했다. 이 사람의 말은 무대에서 펼치는 예술이다. 이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진 고액 강연료 논란은 용어를 바꿔서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강연이라고 하니 한 번에 1천5백만 원이라는 돈이 많아 보이지만 공연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술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 한 장에 몇십만 원도 기꺼이 내는 것을 생각하면 김제동이라는 예술가의 공연에 그 액수가 지나치게 많은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다섯 권의 책을 썼고 대략 70만 권이 팔렸다. 밀리언 셀러 작가 등극이 멀지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 책을 보면 김제동 어록이 한 연예인의 재치의 소산물이 아니라 깊은 마음공부와 독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과의 대화 녹취록을 읽어 보면 말을 할 때 주던 느낌과 글에서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별개의 작업이다. 이 사람의 말하기가 주로 공개적인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면 글쓰기는 골방에서 혼자 하는 작업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 작가라는 호칭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타고난 언어 감각에 시련의 시간을 통해 벼려온 생각이 있으니 '작가 김제동'의 앞날도 기대할 만하다.

6. 2006년 MBC <느낌표> 출연료를 모아 1억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다. 구체적인 액수를 물었더니 본인도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15년 사단법인 <김제동과 어깨동무>를 만들 때 종잣돈으로 1억 원을 내놓았고 지금까지 쓴 책에서 나온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팔린 책이 70만 권이니 인세만도 몇 억은 훌쩍 넘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초판 인세로 후원 아이들에게 노트북 114대, 태블릿 피시 25대를 전달했다.

"중고제품을 구하면 더 많이 보낼 수 있겠지만 제가 새 것으로 보내자고 그랬어요. 아이들에게는 상표, 브랜드 그런 게 중요하잖아요. 받는 아이들 말고는 누구도 모르게 하고 있고요. 가끔 누가 보냈는지 알고 편지를 보내는 분들도 있는데 답장 안 합니다. 답장하면 그 아이들이 또 편지를 써야 하잖아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많으니 받은 만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료 강연, 기부, 봉사 활동이 다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사회에 갚을 거는 갚아야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 거의 다 갚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거의 다 갚은 거 같아요. 물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계속 해야겠지만 지나친 부채의식까지 가지고 저를 억누르면서까지 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이런 생각조차도 건방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제는 거의 갚았다는 말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야기된 논란에 대해 자기 나름으로 책임을 질만큼 졌다는 뜻으로도 읽혔다. 책을 낸 뒤 언론사 몇 군데와 인터뷰를 했다. 이제 슬슬 본격적인 연예계 복귀 준비를 하려는가 싶었는데 인터뷰는 출판사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가정 출신이니 주변에 도와줄 가족, 친척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돈이란 것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요물이고 이 사람 역시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일 텐데 이 사람은 흔연히 지갑을 연다. 이 사람의 기부는 그리 요란스럽지 않다. 이른바 셀럽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기부는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한 선투자 또는 유명인에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준조세 같은 느낌도 없지 않은데 이 사람의 기부에서는 그런 냄새가 덜 난다.

돈으로 도울 수 있는 일도 하지만 몸을 써서 도울 수 있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무료 강연은 부르는 곳이 있으면 기꺼이 달려갈 생각이고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재난 현장에는 어깨동무 회원들과 함께 가려고 한다. 이 사람과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이 1천7백 명이다. 얼마 전에 굴착기와 지게차 면허증을 딴 것도 봉사 활동을 할 때 굴착기와 지게차를 운전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사람] 김제동
7. 인터뷰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헤아리고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마치 공연하 듯 묻는 말에 답했다. 거의 모든 답변에 유머를 담고 있었는데 그래서 가끔 진담과 농담의 경계가 모호했다. 묻는 사람의 머릿속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말하는 재주보다 듣는 재주가 더 탁월한 사람이다.

어떤 유명 피디가 이 사람 얼굴을 두고 슬픈 얼굴이라고 했다는데 슬픔보다는 외로움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휘황찬란하였지만 그 휘황찬란한 스타들과 명사들의 친분이 이 사람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사람과 그 사람들의 친분이 가볍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같이 나누어서 무게를 덜 수 있는 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친구나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것은 아니다. 친구에게 나와 어울리면 당신들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나를 멀리하라고 말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힘이 든 거다. 자신의 책에 추천사를 써줬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은 친구들에게 이 사람은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연인 김제동과 연예인 김제동의 구분이 칼 같다. 중간지대, 회색지대가 없다. 거의 절벽 같은 단절이다. 자연인 김제동을 보호하려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런 모습이 편안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태로워 보였다고 해야겠다. 7-8년 전 자기 발로 정신과를 찾아갔고 2년 넘게 상담을 받고 공부를 했다. 자신의 내부에서 울리는 경고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산에 갔다가 돌부리에 걸려 어이없이 넘어지고 음식 먹다가 흘리는 일이 잦아졌다. 올해 우리 나이로 48살. 조금씩 나이 드는 증거일 텐데 그럴 때 느끼는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혼이든 동거든 같이 살아도 좋고 함께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아는 죽마고우가 얼마 전 늦장가를 들었다. 그 친구 결혼식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많이 웃는 것, 그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웃는 거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웃든 대중과 함께 웃든 이 우울한 천재의 소원은 많이 웃는 거다. 자신이 많이 웃기 위해서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없어야 된다고 믿는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남들 웃기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 체질에 맞지는 않지만 싸우는 일을 멈추기는 힘들 거 같다.

*이 인터뷰는 6월 2일 목동 SBS 본사에서 양만희 논설위원과 2대 1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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