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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통일, 꼭 해야 하나…민족주의와 통일대박론을 넘어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통일, 꼭 해야 하나…민족주의와 통일대박론을 넘어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작성 2021.06.09 09:48 수정 2021.06.09 14: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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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통일, 꼭 해야 하나…민족주의와 통일대박론을 넘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배웠던 이 노래처럼 분단 이후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조국이 분단된 상태에서 통일은 당연히 이뤄야 할 민족적 과제로 인식됐고, 분단의 고착화로 부모, 형제, 자녀가 생이별한 상태에서 통일은 가족의 결합이라는 가장 인도적인 요구로 다가왔습니다. 금강산에서 간헐적으로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에서 한(恨) 어린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통일의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분단 이후 새로 태어난 세대들의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냉전의 철조망 건너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도 빠르게 사망하면서 가족의 결합이라는 인도적 필요에 따른 통일 당위성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1년 5월 기준으로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13만 3천434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은 4만 8천22명으로 벌써 64%가 사망했습니다. 생존자 가운데 80세 이상은 3만 1천972명, 66.6%나 돼 조금만 더 지나면 부모, 형제, 자녀의 상봉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젊은 세대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각종 여론조사도 민족주의와 인도주의에 기반한 통일담론이 위기를 맞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통일편익론 등장에도 통일 공감대 늘지 않아

'통일편익론'은 이 같은 상황에서 통일을 당위가 아닌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보려 한 시도였습니다. 민족적 과제나 인도주의적 요구라는 당위적 측면이 아니라, 통일이 우리 경제를 대도약시켜 나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주는 등 직접적인 이익을 줄 것이라는 관점에서 통일을 사고하도록 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도 이 같은 통일편익론의 한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통일편익론적 접근이 젊은 세대들의 통일 의식 함양에 기여했는지는 의문입니다. 통일편익론이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유의미한 연구 결과도 찾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통일편익론이 의도하는 '교육적 목적'보다 훨씬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면 '통일편익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일자리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당장의 통일 과정에서는 세금 증가나 북한 지역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혼란 등으로 부담이 생기는 것이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 단기적으로 이런 증세나 혼란 가능성에 대해 일정 정도의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장기적인 이익만을 강조하며 통일편익을 강조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통일은 꼭 필요한 것일까요? 민족주의도 인도주의도 편익도 통일 필요성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통일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의 한반도, 남북의 사활적 대립

카터 미국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21세기 미국의 세계 전략을 분석한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책에서 한국을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추축 가운데 하나로 분류합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브레진스키가 지적했듯이 한국은 매우 독특하고도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주변의 4대 강국 중 3개국(미국, 중국, 러시아)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이며, 일본도 상임이사국에 버금가는 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지만, 주변 국가들의 힘이 너무 세다 보니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왜소한 모양새입니다. 만약 한국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위치했다면 그 지역의 맹주로 자리 잡았겠지만 한반도라는 독특한 지역에 위치하다 보니 상대적 열세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의 특수성이며, 이러한 특수성은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는 고정변수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분단까지 돼 있다는 점입니다. 통일이 돼서 한 나라로 국력을 결집해도 부족할 판에 남북이 나눠져 있으니 우리의 힘은 더욱 왜소해진 상태입니다. 분단은 단순히 힘이 2분의 1로 나뉘어졌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분단이 되면서 남북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대치의 전초기지가 돼 있습니다. 미일의 해양세력과 중러의 대륙세력 간 중간 지점에 정확히 남북이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라는 구도 외에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대립 구도까지 더해지면서 상당히 강고한 대치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대치의 끝자락에서 남북은 살기 위해 사활적으로 대립해 왔습니다. 6·25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대결이 끝난 뒤에도, 남북은 한반도 내에서든 밖에서든 상대를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 상당 기간 동안 소모적인 체제 경쟁에 매달려 왔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깔아뭉개기 위해 안달이었으니 한민족의 국력은 단순히 2분의 1로 나뉜 것이 아니라 소모적으로 낭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대립 구도 속의 종속변수

탈냉전으로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남북한이 기본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 속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은 동북아의 독립변수가 되기는커녕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립과 갈등을 가장 최일선에서 구현하는 종속변수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모적으로 힘을 낭비해야 하는 우리는 언제나 주변 4대 강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에서 탈피하기 어렵습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와는 별개로 불거지는 한일, 한중 갈등에서 우리가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인데, 지금과 같이 남북 대립으로 서로의 역량을 깎아먹는 상황에서는 더더구나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정식 취재파일용
남북의 분단은 또한 주변국 외교에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에 항의해도 중국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중의 국력 차이도 있지만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해 한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중 밀착으로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로 가지고 있는 한 한국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으며, 남북 분단의 국제정치를 활용한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한국의 대중 외교력을 심각히 저해하게 만듭니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발생한 외교적 분란도 분단이 미친 영향이 큽니다. 우리 정부가 많은 외교적 부담에도 미국의 사드 배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한미 군사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이 보복할 때 중국에 별다른 항의를 못했던 것도 교역도 교역이지만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북 분단은 일본과의 관계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재무장하는 데 주요 명분으로 삼는 것이 북한 위협입니다. 우경화로 가고 있는 일본에게 북한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적절한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증강시켜 우리에게도 부담을 주는 상황입니다.
 

통일은 동북아에서 우리 목소리 내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주변국들이 분단된 남북을 자신들의 외교 자산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력은 많은 한계에 부딪히고 우리의 국익 또한 훼손됩니다. 이러한 한계는 분단이 극복되지 않는 한 결코 해소되지 않습니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는 주변국의 국제정치 역학에서 '을'의 위치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선택 영역과 외교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강대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반도의 중요한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지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주변국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통일은 민족주의나 인도주의 같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반도라는 땅을 떼어내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주변 강대국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목소리를 그나마 제대로 내고 살려면 통일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동북아에서 독립변수로 살아남기 위한 조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영원한 '을'의 위치로 살지 않기 위한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통일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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