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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글로벌 최저 법인세 15%…'불공정의 승리' 바로잡을까?

[취재파일] 글로벌 최저 법인세 15%…'불공정의 승리' 바로잡을까?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로 구성된 G7의 재무장관들이 지난 5일 영국 런던에서 만나 다국적 기업에 적용할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합의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 부과 합의는 오는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를 거쳐 10월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G7 재무장관들이 합의한 글로벌 최저 법인세 부과 방안은 매출액의 10%를 초과하는 글로벌 기업의 이익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배분해 과세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1920년 대에 마련된 국제 법인세의 과세 원칙을 100년 만에 바꾸는 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는 수익에 대한 과세 권한을 실질적인 기업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에 배분하고, 수익의 15% 이상을 과세하도록 함으로써 다국적 기업들이 세율이 낮거나 아예 세금이 없는 이른바 조세 피난처(tax haven)에 본사를 이전하거나, 조세 피난처에 있는 계열사로 이익을 몰아줘 세금을 적게 내는 절세 또는 탈세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G7 재무장관들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대한 합의가 마무리되면, 전 세계 40여 개국이 구글(Google)이나 페이스북(Facebook) 같은 글로벌 IT기업에 부과하고 있거나 부과를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서비스 세금은 철회하기로 했다.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려 하고 있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당초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21%로 제안하고, 유럽 국가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에 부과하려 하는 디지털서비스 세금은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21%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디지털서비스 세금은 취소하는 방식으로 합의한 모양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 적용 대상 기업과 국가별 배분 방법, 과세 방법 등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고, 세율을 경쟁적으로 낮춰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세수를 올리는 국가들의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는 점에는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코로나19로 각국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돈을 회수하고, 기업은 물론 국가 간에도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의 합의로 케이만, 버뮤다, 바하마 같은 섬은 물론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아일랜드나 홍콩, 싱가포르 같은 조세 피난처들이 세수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조세 피난처들이 또 다른 '실낙원(paradise lost)'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다국적 기업들의 주요 매출이 발생하는 지역이면서도 법인세를 제대로 징수하지 못했던 미국이나 프랑스 등 경제 대국들은 세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은 연간 580억 달러의 추가 세수를 기대했고, 미국 정부는 10년 동안 5천억 달러의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언론은 미국의 500대 기업 가운데 55개가 2020년 연방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냈다고 보도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싱크탱크(Kraka)와 미국 버클리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조세 회피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보고한 해외 발생 수익의 비중은 20년 전 30%에서 60%로 늘어났으며, 2016년 미국 다국적 기업 수익의 40%인 6천7백억 달러가 서류상의 기업(paper company)을 통한 것이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국가별 법인세율 추이(왼쪽), 다국적 기업의 기업활동 등록지(오른쪽), 자료: 이코노미스트)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지역을 통한 세금 회피는 1980년 대 이후 본격화됐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증가했고, 세계 각국은 이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췄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 버뮤다는 0%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1985년 49%에 달했던 평균 글로벌 법인세율이 2018년에는 24%로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각국이 법인세를 깎아줘 기업 유치에 나서자 글로벌 기업과 계열회사들은 조세회피처로 발생 이윤을 이전해 등록했다. 2016년 케이만 군도나 아일랜드, 싱가포르에 등록된 다국적 기업들의 수익은 1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16년 현재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지역 자산 비중은 11%, 임직원은 5%에 불과한데 이윤의 25%를 조세회피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등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기업 활동이 이뤄지는 곳과 세금을 내는 곳이 다른 것이다.
(이윤 이전에 따른 국가별 세수 손익(좌), 국가별 법인세율(우), 자료: 이코노미스트)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한 수익 빼돌리기로 세수의 5분의 1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확정돼 시행되면 아일랜드는 세수의 절반, 홍콩은 세수의 3분의 1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해온 국가들의 글로벌 법인세율 적용에 대한 반발은 그만큼 거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글로벌 최저 세율은 기업들에 대한 세금 낮춰주기 경쟁을 종식할 것이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중산층과 노동자들에게 공정성을 보장할 것이다. 글로벌 최저 세율은 기울어진 비즈니스 현장을 평평한 운동장으로 만들고, 교육이나 연구개발 그리고 인프라 투자와 같은 바람직한 분야의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전 세계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가별 법인세율, 자료: 로이터)
G7 국가의 재무장관들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합의했지만, 시행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이 남아있다. 법인세율을 현재 21%에서 28%로 인상하려 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상원 일부 의원들은 15%로 설정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너무 낮다며 반대하고 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미국의 절반 정도인 15%로 설정한다면, 미국에서의 자본 유출은 여전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12.5%의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아일랜드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적용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과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최저 세율을 더 낮추는 등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G7의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합의는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독단적으로 미국 이익 최우선 정책을 밀어붙였던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지나고, 글로벌 합의를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빛을 발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럽의 미국 IT 기업에 대한 디지털 서비스 세금 부과에 맞서 유럽 산 물품에 대해 보복관세 부과를 추진하기도 했다.

(자료 : www.taxjusticenow.org)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은 세금을 낮춰 페이퍼 컴퍼니를 유치하고 세수를 올리던 업종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에 절세 컨설팅을 해주던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들도 타격이 예상된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적용으로 세금을 더 내야 하고, 세후 이익 감소가 예상되는 대표적인 기업 페이스북과 구글은 G7의 최저 법인세율 합의를 환영하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양극화가 확대되면서 격차 해소와 공정한 부의 배분이 화두가 된 시대, 15%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국가 간 그리고 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고, 불공정한 경쟁 관행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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