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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고인 법무장관-고검장-차장검사와 '더 높은 충성심'

[취재파일] 피고인 법무장관-고검장-차장검사와 '더 높은 충성심'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21.06.07 09:09 수정 2021.06.07 16: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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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박범계 법무부 장관,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이성윤 검사장,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

자동차보험회사에는 사고 처리 담당자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자신이 담당한 고객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상대 차량의 운전자의 책임을 엄정히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 차량 운전자가 자신이 속한 회사의 사장일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대 차량 운전자인 자기 회사 사장의 책임을 엄정히 묻고, 자기 고객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까요?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결과 자체도 고객으로부터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와 비슷한 일이 지난 5월 26일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피고인 중 한 명은 현직 법무부 장관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었습니다. 박범계 장관의 맞은편에는 박범계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공무원인 공판검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박범계 장관이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질렀음을 판사 앞에서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검사들은 이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장관 앞에서 '당신은 국회에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은 곤란하고 난처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검사가 기소한 피고인이 검사 인사권자가 된 현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검찰이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라고 결론 내린 형사피고인이 검찰을 지휘하고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법무부 장관 자리에 임명됐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가도 자신이나 가족이 기소될 가능성이라도 생기면 사퇴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인물이 기소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법무부 장관의 직을 유지한 채로 기소돼 형사피고인이 된 경우는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박범계 장관의 경우에는 이미 국회 패스트트랙 사건 등과 관련해 폭행 혐의 등으로 기소가 된 상태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임명 시점부터 이미 자신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검사들과 법정에서 상대방으로 마주쳐야 하는 어색하고 부적절한 일이 예정돼 있었던 것입니다.

검찰이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며 재판에 회부한 인물 중 현재 검사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박범계 장관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4일 박범계 장관이 단행한 인사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인물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입니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지난 5월 12일에 기소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직무에서 배제됐던 한동훈 검사장의 경우와 달리, 법무부는 이성윤 검사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기는커녕 전국 고검장 중 최선임 격인 서울고검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이성윤 검사장에 대한 인사는 직무배제되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승진되었다는 상징적 차원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윤 검사장이 지휘하게 될 서울고검은 이성윤 검사장의 지시를 받아 한동훈 검사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에 대한 공소유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정진웅 차장검사의 유죄를 입증해야 할 서울고검 검사가 정진웅 검사에게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던 이성윤 검사장의 직접 지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왼쪽), 한동훈 검사장
뿐만 아니라 서울고검에서는 이성윤 검사장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던 법무부에 이성윤 검사장이 위법한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고발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성윤 검사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취임하면 자신이 관여된 사건들에 대해 형식상 직무를 회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서울고검이 담당한 주요 사건에 대해 직무를 회피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서울고검장으로 임명한 일을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형식상 직무를 회피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일에 대해 이성윤 고검장의 지휘를 받게 되는 서울고검 검사들이 아무 부담 없이 이성윤 검사장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피고인 트리플크라운' 달성…'그랜드슬램'도 가능할 뻔?

하지만 검사로부터 기소당한 피고인이 다른 검사들을 지휘하는 위치로 영전한 첫 사례는 이성윤 검사장의 경우가 아닙니다. 앞서 잠시 언급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사실상 첫 사례입니다. 검찰 조직에서 검찰청의 차장검사는 해당 검찰청의 넘버 2에 해당하는 보직입니다. 대부분의 실무적 수사지휘와 결재는 지검장이 아니라 차장검사가 담당합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신분이었던 정진웅 검사를 지난해 8월 인사에서 광주지방검찰청의 넘버 2인 차장검사로 영전시켰습니다. 검사에게 기소된 인물이 다른 검사들을 지도하고 지휘하는 선례를 만든 것입니다.

박범계, 이성윤, 정진웅, 이 세 사람만으로도 법무-검찰의 요직에 형사 피고인이 세 명이나 포함된 '트리플크라운'이 달성된 상태지만, 법무부는 하마터면 형사 피고인을 무려 네 명이나 요직에 배치하는 '그랜드슬램'까지 기록할 뻔했습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을 경찰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입건한 데 이어서, 이 전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동영상을 SBS가 공개하면서 이 전 차관의 특가법상 '운전 중 운전자 폭행' 기소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용구 전 차관이 "법무 검찰에도 새 일꾼이 필요하다"라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덕에 법무부는 '피고인 그랜드슬램'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쓰는 일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택시기사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물론 모든 국민은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이 탈세로 고발한 인물을 국세청장에 임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국세청이 고발했다고 해도 형사재판에서 탈세 혐의가 확정될 때까지는 탈세 혐의에 대해 무죄로 추정되는데도 말입니다. 법원이 형사재판에 회부됐거나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을 법원행정처장이나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임명하는 일 역시 상상할 수 없습니다. 형사재판에 회부됐거나 1심 결과가 나온 상태라고 해도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검찰이 기소한 인물을 법무-검찰의 고위직에 임명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형사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에 대한 원칙이지, 기소된 고위 공무원의 인사와 관련해 국가기관이 따라야 할 기준은 아닌 것입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원점에서부터 진지하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비현실적일 뿐입니다.
 

'마피아의 충성심'과 '더 높은 충성심'

그럼에도 박범계 장관이나 이성윤 검사장, 정진웅 차장검사 같은 피고인들이 법무-검찰의 요직에 기용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충성심입니다. 어떠한 걸림돌이 있어도, 무리수를 써서라도, 심지어 형사재판에 회부되더라도, 인사권자가 부여한 과업을 끝까지 추진하는 충성심이 이들을 발탁한 이유일 것입니다. 특히 이성윤 검사장과 정진웅 차장검사의 경우에는 인사권자 또는 인사권자의 참모들이 바라는 과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형사재판에 회부됐으니, 인사의 기준이 '충성심'이라면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미국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의 국장이었던 제임스 코미는 인사권자로부터 노골적으로 충성심을 요구받았던 경험을 회고록 ≪더 높은 충성심 A Higher Loyalty≫에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일주일 뒤인 2017년 1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나는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는 FBI가 트럼프 대통령 선거운동에 러시아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가 요구한 건 코사 노스트라(마피아) 가입식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코미 전 국장이 회고록 제목을 '더 높은 충성심 A Higher Loyalty'이라고 지은 것도 자신의 충성심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와 미국 법무부 Department of Justice가 수호해야 하는 정의 Justice라는 가치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더 높은 충성심을 내세웠던 코미 전 국장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면했습니다.)

 
 

이들에게 기대한 것은 어떤 종류의 충성심인가?

형사피고인 신분인 박범계 장관, 이성윤 검사장, 정진웅 차장검사를 여러 검사들을 지휘하는 자리에 임명하면서 이들에게 인사권자가 기대한 것은 어떤 종류의 충성심이었을까요? 트럼프 대통령의 '마피아식 충성심'이었을까요, 아니면 코미 전 FBI 국장이 말하는 '더 높은 충성심 A Higher Loyalty'이었을까요? 답은 명백할 것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검사들과 맞서 유무죄를 다투는 것을 업으로 하는 변호사들의 대표가 이번 검찰 인사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할까 합니다.
 
"(전략) 이번 법무부의 인사에서 해당 고위간부가 수사직무에서 배제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임명된 것은 공직기강 해이를 넘어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정치적 중립이라는 검찰의 핵심 가치 마저 몰각시키는 것이어서 심히 우려스럽다.

검찰 제도가 법의 지배하에서 민주주의의 성숙에 부합하고 부패 척결과 인권 보호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 보장 및 기능의 확보가 요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국민들이 법무부의 검찰 인사에 대한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결국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 결과를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는 곧 법치의 토대와 근간을 법무부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중략)

2021년 6월 5일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이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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