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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우디 긁은 장애 노인, 벌금 내준 국회의원

[취재파일] 아우디 긁은 장애 노인, 벌금 내준 국회의원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Pick] "차주가 처벌 원해"…폐지 줍다 외제차 긁은 60대 벌금형
지난달 초,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몇몇 매체에 보도됐습니다. 폐지를 줍던 67살 지적장애 노인이 리어카로 아우디 외제차를 긁어 3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법원 판결을 보도한 짤막한 기사였습니다. 폐지 줍는 노인의 사정이 조금 딱하긴 하지만 워낙 별별 뉴스가 쏟아지는 다이나믹 코리아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던 뉴스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 제법 반향이 있었나 봅니다. 혹시 이 노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는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쓴 기사도 아니고 요즘은 워낙 개인정보에 민감한 분위기다 보니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또 어영부영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몇 주가 지나 흥미로운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한 국회의원이 이 노인의 벌금을 대신 내줬단 소식이었습니다. (벌금은 대납이 가능합니다.)

알아보니 벌금을 대신 내 준 국회의원은 바로 서울 강서갑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었습니다. 본인의 지역구도 아니고, 흔한 일은 분명 아니기에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렵사리 물어본 끝에 돌아온 답변은 싱거웠습니다. SBS 기사를 우연히 읽고 그냥 "마음이 아파서" 대신 냈다는 얘기였습니다. "리어카에 폐지를 꽉 채우면 3천 원, 산처럼 쌓아 올리면 5천 원이라고 한다. 거기에 지적장애가 있는 분이라고 하셔서 대신 냈다"는 게 강 의원의 답변이었습니다. 폐지 값은 어찌 알았냐 물으니 "TV에서 봤다"고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 (사진=강선우 의원실 제공, 연합뉴스)

다소 김이 샜지만 이왕 물어본 김에 더 물어봤습니다. "이게 취재거리가 되냐"며 전화를 끊으려는 강 의원을 붙잡고 "지역구 주민도 아닌데 왜 그랬나"하고 우문을 던졌습니다. "오히려 지역구 주민이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 그렇게 못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대전이라 자기 돈으로 벌금을 대신 낼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강 의원은 "법원 판결은 존중하지만, 처벌이라는 건 범죄의 예방과 교화에 목적이 있는 건데 이 분(피고인)의 경우는 딱히 그런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피고인이 장애가 있고 폐지를 수거해 하루 몇 천 원의 생활비를 마련할 정도로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했지만, 피해자인 외제차 차주가 A 씨에 대한 처벌 의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벌금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가 강력히 처벌을 원해 어쩔 수 없이 벌금형을 선고했다는 취지입니다.

강선우 의원의 보좌관에게 물었습니다. 의원실의 송시현 보좌관은 "다른 의원님들을 모시면서, 정치후원금이 남으면 기부를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의원님 사비로 벌금을 대신 내주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선한 경험이었고 의원님 마음이 참 따뜻하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송 보좌관과 다른 보좌진은 이밖에도 노인의 집 주소로 쌀과 고기 등 식료품과 생필품을 보내고 복지 서비스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관할 주민센터에 확인하는 '추가 업무'도 수행했다고 전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기사를 쓸지 말지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그리 대단한 소식도 아닐뿐더러 짜고 치는 홍보 기사로 비치지 않을까 염려가 됐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의 본업은 입법을 통한 의정 활동이지 기부나 자선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기사를 쓰기로 한 건 언제나 부동(不動)의 신뢰도 꼴찌를 기록하는 우리 국회에서, 조금은 인간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거철 아니어도 좋은 일 하는 국회의원들, 잘 찾아보면 있더군요.

강선우 의원은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지닌 국회의원입니다. 이번에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강 의원은 발달 장애가 있는 딸을 둔 엄마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더 장애인 소식에 관심이 가고 장애 관련 입법에 더 공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남편과 떨어져 홀로 미국에서 딸을 키우고 대학원을 다니는, 이른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과연 한국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생각했고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고민하다 결국 다다른 답이 정치였답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줄도 빽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 은하계 바깥 수준의 번호를 받은 건 나름 유명한 일화입니다.

기사가 나가고 벌금 대납하는 국회의원이 늘거나 혹은 벌금 대신 내달라는 편지가 국회에 쏟아질지 살짝 염려도 됩니다만 (물론 이 기사가 그만큼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정치인들 사연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입니다. 당리당략에 매몰되거나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필요할 때만 국민, 시민 찾는 국회의원은 지긋지긋하게 봤습니다. 물론 본업인 의정활동으로 더 좋은 정치를 보여주기를,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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