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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화물차는 피하는 게 상책?"…무관심 속 반복되는 코일 낙하사고

[취재파일] "화물차는 피하는 게 상책?"…무관심 속 반복되는 코일 낙하사고
봄볕이 따스했던 지난 14일 오후 3시 50분, 충북 당진영덕고속도로. 한 60대 남성이 몰던 25톤 트레일러가 속도를 늦춘 앞 차를 발견하고 차선을 변경합니다. 그 순간 트레일러 위 13톤 철강 코일이 오른편 2차로로 떨어졌고 그 자리에 있던 SUV 차량 지붕을 덮쳤습니다. 구조대원들이 급하게 사고 지점을 찾았지만 SUV 뒷자리에 있던 8살 여아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의 안위를 알지 못한 채 중상을 입은 운전자 어머니는 수술 뒤 현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단지 사고가 난 그 시각, 트레일러 옆을 주행했다는 사실이 이 가족이 겪은 비극의 이유였습니다.

113철강 코일 덜어지며 SUV덮친 교통사고

수익성 낮은 '코일 전용 트레일러'

널찍한 철판을 둘둘 만 도넛 모양의 철강 코일은 자동차 등 산업용 필수 자재로 꼽힙니다. 많게는 무게 20톤이 넘을 정도로 거대한 것도 있습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운전해도 급제동하거나 커브를 돌 때면 거대한 코일이 낙하하는 사고가 이어지면서 오래전부터 도로 위 '폭탄'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 이후에도 온라인에선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고 또 생길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 와중에 한 누리꾼이 올린 해외의 코일 전용 트레일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고가 난 평평한 트레일러와 달리 안전하게 코일만 실을 수 있도록 홈이 패인 구조였습니다. 급제동해도 앞으로 쏠릴 위험이 적고 무게 중심이 낮아 상대적으로 흔들림에 강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저런 차가 없을까? 중고 화물차 매매 사이트를 뒤져 봐도 관련 단체와 특장차 생산업체에 연락을 해도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전용 트레일러의 희소성 뒤에는 경제 논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화물차 차주는 운반할 화물을 하루하루 주문받습니다. 정해진 날짜에 물건을 맡기는 '화주'를 찾아가 물건을 실은 뒤 운송하고 돈을 받는 구조입니다. 화주가 찾지 않으면 수입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즉 '일거리'가 많은 '평평한' 트레일러가 보편적인 것입니다. 코일 전용 트레일러 기사 A 씨는 "안전을 이유로 코일 전용 트레일러를 택했지만 충남에서도 몇 대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라며 "수익성이 떨어지니까 다들 사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그동안 화물 운임이 점점 낮아졌다"라며 "코일만 운반해도 수입이 충분하면 선택할 사람이 있겠지만 지금 운임 상황에선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류업체 입장에서도 코일 전용 트레일러는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국내 대기업 물류업체 관계자는 "평평한 트레일러에도 코일을 실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전용 트레일러를 먼저 선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속도'와 '운임'을 우선시하는 사이, 그래서 시장의 외면을 받는 사이 어느새 전용 트레일러는 주문이 끊겼습니다. 국내 한 대형 특장차 업체 영업사원은 "코일 전용 트레일러 주문을 받은 지 몇 년은 됐다"라며 "우리가 생산하지 않으면 다른 곳도 만드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일 전용 트레일러
코일 전용 트레일러

"쐐기로 잘 고정하라"…코일 적재 기준은 '한 문장'

그래도 제대로 고정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적재 규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적재화물 이탈 방지 기준'에 코일에 관한 기준은 단 한 문장. '코일의 미끄럼, 구름, 기울어짐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강철 구조물 또는 쐐기 등을 사용해 고정해야 한다.' 코일 무게별로 두께 얼마짜리 체인을 몇 개를 써야 하는지, 받침대는 어떤 크기의 무슨 재질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지침은 전혀 없습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충분히 응용을 해서 결속을 잘하라는 지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화물차의 종류와 크기, 코일의 크기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하중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화물차 기사들은 각자 가진 쇠로 된 체인 두 줄로 코일을 고정했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목격한 코일 받침대는 나무와 고무 등 재질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철강 코일 실은 트럭

정말 이 기준이 전부인 것이냐는 질문에 국토교통부 측은 자체 '카드뉴스'를 통해 화물별 적재 기준을 구체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코일에 관한 내용은 '평행한 고정점 위에 원통을 통과해 고정끈으로 고정하라', '고정끈은 45도 이하로 고정하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도 이와 비슷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8년 전 제작된 것으로 홈페이지에는 아예 나오지 않아 담당자에게 문서를 따로 받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 찾아볼 수 있는 매뉴얼은 관련 기관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수준으로 보일 정도로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라며 "일본은 화물의 모양, 특성에 따라 고정하는 체인의 두께 최소치까지 규정할 정도로 자세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국토부 "무게별 지침 마련 계획 없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사고 사흘 뒤 숨진 아이의 이모는 "눈도 감지 못한 채 떠난 아이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며 관련 법규를 강화해 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사고에 분노한 2만 4천 명 넘는 사람들이 동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란 말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고 이후 내부적으로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라면서도 "무게별 지침은 연구용역을 주고 알아볼 사안인데 맡길 계획이 현재 없다"고 전했습니다. 적재물 고정 기준을 어기면 운송 허가를 취소하거나 1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19조, 제70조)하도록 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고정해야 하는지는 현장과 규정을 만든 이들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언제까지 도로 위 안전을 '운'에만 맡겨야 할까요? 당국의 무겁고 진지한 반성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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