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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 조진주 [북적북적]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 조진주 [북적북적]

조지현 기자 fortuna@sbs.co.kr

작성 2021.05.30 08:00 수정 2021.06.07 18:4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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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93 :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 조진주
 
내 업에는 보이지도 않고,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귀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가치를 위해 내 인생을 불태워도 된다고 확신하게 됐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中

이 문장에 등장하는 '보이지도 않고,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귀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있는', '이걸 위해 내 인생을 불태우리라' 확신하는 이 업은 뭘까요. 네, 바로 음악입니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아웃사이트 펴냄)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씨의 첫 에세이에요. 5월 7일에 나온 신간입니다.

조진주 라는 이름이 익숙하고, 그간의 이력이나 연주, 혹은 이전에 객석에 연재하던 글이 떠오르는 분도 계실 테고, 누구지? 처음 듣는데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 책에 실린 저자소개는 매우 간단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9살 강아지 미소의 집사'. '낭만적 이성주의자', '초콜릿과 커피, 그리고 일 벌이기 중독자' … 사랑스러운 이 소개 외에, 좀 더 단순명료한 이력을 찾는다면, 1988년생, 2006년 열 일곱 살에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20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 1위, 2011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부문 2위, 2012 앨리스 숀펠드 국제콩쿠르 1위, 2014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콩쿠르 1위. 콩쿠르를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연주 활동과 함께 캐나다 맥길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또 '앙코르 체임버 뮤직 인스티튜트'를 설립해서 매년 여름, 음악제도 열고 있고요.

분명 책 제목은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인데, 이력만 보면 '이미 오랫동안 반짝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반짝이고 우아하고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할 것 같은 음악가이지만, 다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스스로 빛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다르다고요. 책 제목인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는 책에 실린 글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완벽한 연주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긴긴 수련의 시간을 견디게 한 미래의 보상처럼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어른이 된 내게 참기 힘든 패배감과 굴욕감을 선사하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열심히만 하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를 조정하는 건 참 아픈 일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질투심을 느낄 때면 정말이지 속에서 열불이 난다. 피가 펄펄 끓고 내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구역질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강력한 질투는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아프다. 그런데 이 불은 오로지 내 안의 것만 태운다. 나의 능력, 나의 가능성, 나의 미래. 나라도 내게 친절해야 하건만, 불안이라는 바람이 불어올 때 나를 믿고 사랑하는 건 쉽지 않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中


이 책에는 객석에 앉아 연주를 감상하거나 음반을 듣기만 하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연주자의 고되고, 흔들리고, 위축되고, 질투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들이, 놀랍게도 꾸밈 없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책을 잡자마자 내려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됩니다.

저자는 '왜 바이올린을 선택했나요?' 라는 질문에, 어린 시절 시작한 바이올린이 진짜 나의 '선택'이었던가 되묻습니다. 자신이 '어쩌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 뒤였다고요. 그래서 그 뒤로 이 '선택 아닌 선택'의 의미,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이 세상에 음악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 자신의 20대를 썼다고 해요. 20대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음악을 평생 해도 괜찮겠다' 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야 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무슨 뜻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때로 많은 아픔을 동반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모든 글은 음악에게 바치는 고해성사다. 긴 길을 돌고 돌아 음악을 마음 깊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거쳐 온 내면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中

이 책에는 연주자와 악기의 관계, 연습, 연주자의 몸, 가르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상실까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씨의 유쾌함과 보람, 슬픔까지 넓게 담겨 있습니다. 또 자신의 업에 대한 사랑, 평가와 비교가 숙명처럼 따라오는 연주자로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예술적 에너지를 채워가는지에 대한 내용에는 음악가가 아닌 독자들도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조진주 씨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쓰며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내려 했다. 최대한 가감 없이, 나의 가장 창피하고 부끄러운 욕망까지 포함해서. 내 약점을 드러내는 두려움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가장 진실된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 썼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변에 프로 음악가를 친구로 두고 있진 않습니다. 멀리서 볼 뿐 잘 모르는 세계입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저 멀리에 좀 친해진 것 같은 음악가가 한 명 생긴 느낌을 받게 되실 겁니다. 열정적이고 섬세하고,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을요.
 
나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고전음악을 사랑한다. 만약 붙잡을 수 없는 게 시간이고, 흐르는 게 인생이라면 소리와 음악의 유한함이 생명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中
 
지나간 시간, 지나간 사람,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감정과 사상을 바로 지금, 여기로 옮겨올 수 있는 직업이라니. 이건 정말 너무 멋지다. 이러니 생명력 넘치는 그 한순간을 위해 연습을 안 할 수가 없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中

*출판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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