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워싱턴 인사이트] 워싱턴 '백신 담판' 막전막후…모더나 CEO가 한국과 손잡은 이유는? ①

[워싱턴 인사이트] 워싱턴 '백신 담판' 막전막후…모더나 CEO가 한국과 손잡은 이유는? ①

막판까지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모더나 CEO의 불참

법조와 정당을 출입할 때 '수사는 생물',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의외성이 큰 분야이기 때문에 섣불리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주로 쓰는 말이었는데,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워싱턴에서 지켜보면서 '회담은 생물'이라는 말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와대 엠바고 규정에 묶여 있는 일정이 촘촘히 있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알게 모르게 바뀌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건 미국 시간 지난 21일 미 상무부 주최로 열렸던 한미 기업인 행사였습니다. 우리 4대 기업과 미국의 백신, 반도체, 자동차 회사들이 참석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 의지를 확인하고, 그 좋은 분위기를 몰아 오후에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전 취재를 했을 때 오기로 했다던 미국 기업 가운데 모더나가 불참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번 우리 백신 외교의 핵심에 모더나라는 미국 mRNA 백신 회사가 있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졌던 얘기입니다. 아시아 백신 허브국으로 발돋움 하는 걸 정상회담 주요 의제로 잡고 왔던 우리나라였기 때문에 모더나가 없는 그림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중요한 회사가 빠졌으니 혹시 정상회담의 불안한 신호가 아닐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상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행사에 안 나타났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모더나 CEO

다음 날 우리 정부 주최로 열리는 백신 파트너십 행사에도 모더나 CEO 스테판 방셀이 오기로 돼 있었는데, 이러다 아예 워싱턴에 안 나타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 행사에 맞춰 방셀 CEO 인터뷰를 섭외 중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공중에 뜨는 거 아닌가 우려가 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는 했지만, 마지막 성사 단계에서 컨펌 메일이 안 와서 조마조마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방셀 CEO의 일정 중간에 인터뷰를 넣기로 해서 백신 행사장과 가장 가까운 호텔 컨퍼런스룸을 이미 잡아놨던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분위기를 들어보니 막판까지 협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상무부 행사에 불참하며 배수의 진을 쳤을 정도로 모더나 CEO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한국의 백신 생산 공식 인증한 바이든…"내가 이래서 이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날 오후 정상회담 발표를 보면서 다행히 크게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국의 백신 생산을 공식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메이저 백신 회사와 한국 회사가 힘을 합쳐 백신 생산하는 것을 논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그 회사는 자신의 힘으로 상당한 양의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회사 이름은 말 안 했지만, 그 미국 메이저 회사는 모더나이고, 한국의 회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걸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백신의 한국 위탁생산을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 발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정부의 발언이 잘 먹힐 수밖에 없는 모더나를(사실상 정부 지원금으로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상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저 정도로 얘기하는 건 이미 모든 문제가 정리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문제에 대해 자신에게 어떻게 접근해 설득했는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추가로 수십억 회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거라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로 문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거론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이래서 이 대통령을 좋아하는데(this is what I like about this president,), 그는 한국에 대해서만 말한 게 아니라 인도태평양과 세계에 대해서 말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야심 찬 제안이라는 걸 알지만, 전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모든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대통령은 백신 생산에 의기투합해 전 세계를 구해보자고 뜻을 맞췄다는 의미입니다. 백신 물량을 틀어쥐고 있는 미국에 우리 물건을 달라고 하면서도, 한국도 세계를 돕겠다고 더 큰 틀로 설득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모더나 CEO

'한국은 선진국' 미국 사회에 각인된 이미지…지원 명분 찾기 어려운 한국

코로나를 거치면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미국 사회에 너무 크게 자리 잡았던 게 사실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진단검사 전개는 아직도 미국 방역 전문가들이 얘기할 정도로 미국 사회에 깊게 각인돼 있습니다. 게다가 BTS는 내는 앨범마다 차트를 휩쓸고, 오스카에서는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이번에 미나리까지 상을 받으면서, 한국의 소프트 파워까지 미국이 괄목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시즌을 거치며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대단하네'라고 생각할 계기가 많았습니다. 단순히 우리끼리만 국뽕에 취해 하는 얘기가 아니라 미국 주류에서도 한국 경제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느낄 정도로 발전된 국가로 각인됐다는 의미입니다. 이러다 보니 21일 기자회견에서 백악관 출입기자가 한국같이 경제가 발전한 나라가 백신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 백악관은 어떻게 보냐고 질문했을 정도였습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이 틈만 나면 한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노래를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 더 내야 한다고 압박한 것도 원인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코로나 수치는 인도처럼 감염이 폭증하는 국가에 비하면 심각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하루 확진자 500명 수준에서 코로나를 통제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미국은 '한국은 뭐가 문제지?' 하는 느낌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있습니다(미국의 오늘 확진자는 2만 5천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급격하게 확진자가 줄고 있지만 인구 대비로 보면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감염자가 많습니다). 물론 미국은 '백신의 힘'을 통해 발화점이 꺼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피땀이 들어간 '방역의 힘'으로 틀어막고 있다는 걸 미국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국은 백신 지원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질서 재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백신의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고, 중국, 러시아처럼 이익을 얻기 위해 백신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공표했습니다. 트럼프 이후 정상적인 미국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면서 코로나로 쑥대밭이 된 세계를 다시 세우는 이른바 '코로나 마셜플랜' 같은 큰 그림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개인의 친분과 얄팍한 이해관계로 백신을 특정 국가에 몰아주기를 했을 수 있지만, 원칙과 명분을 강조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원칙이 허물어지면 전 세계에 리더 국가로 복귀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군 장병에 대한 백신 지원은 미국이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을 잘 찾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귀국길에 페이스북에 우리 군 장병에 대한 백신 지원이 깜짝 선물이었다고 설명했는데,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국에서 막판에 낸 아이디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동맹국의 군인에게 지원하는 방식은 미국에서도 반대하기가 어려운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국의 군인도 지원한다는 논리는 미국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을뿐만 아니라 그 숫자가 적어서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군 장병 지원 백신은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2천만 회 백신에 포함되는 건지 별도인지도 아직 확인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백신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미국의 백신 집착이 사그라지면 들수록 화이자, 모더나 같은 개별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한 백신을 수출할 여지가 생기고, 우리 정부도 백신 기업을 통해 조금이라도 물량을 빨리 들여올 가능성은 커집니다. 우리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백신은 하반기에 물량이 몰려있기는 하지만 이미 전 국민이 접종하고도 남을 물량입니다. 이걸 최대한 당겨 도입하는 건 정부의 숙제로 남게 됐습니다. 

▶ [워싱턴 인사이트] 워싱턴 '백신 담판' 막전막후…모더나 CEO가 한국과 손잡은 이유는? ②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