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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죽어마땅한 놈은 정말 죽여도 되나요

[인-잇] 죽어마땅한 놈은 정말 죽여도 되나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21.05.23 11:00 수정 2021.05.24 14: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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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죽어마땅한 놈은 정말 죽여도 되나요

요즈음 여러분은 어떤 드라마를 즐겨 보시나요? 저는 <모범택시>라는 작품에 푹 빠져있습니다. 어떤 작품이냐고요? 법과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비밀리에 활약하는 안티히어로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여러분도 가끔 뉴스나 '그것이 알고 싶다'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다가 분통 터지실 때 있지 않나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던 조두순이 멀쩡히 출소해서 우리의 세금으로 생활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이나, 마약을 상습 복용한 고위층 자녀들이 부모의 뒷배경으로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때 말이지요. 그렇게 죄를 지었음에도 충분한 벌을 받지 않은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된 응징'을 가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바로 이 모범택시 입니다. 꽤나 흥미롭지요? 이 작품에서는 우리 사회를 이렇게 정의하는데요, 꽤나 공감하는 문장입니다.
 

쫓겨나야 마땅한 성추행 교수들이 몇 달 뒤 복직해 다시 피해 학생을 가르치고,
타인에게 평생 남을 상처를 남기고도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죄를 탕감 받고,
수백억을 횡령하고도 약간의 벌금과 집행유예로 평생을 부유하게 사는,
법의 심판을 받아 마땅함에도 오히려 법의 보호와 사각지대 안에서 풀려나는,
피해자는 아직 용서하지 않은 가해자를 법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있는 세상.


저는 특히 마지막 문장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제 직업이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듣는 일이기 때문일까요? 꽤 빈번히 성폭력 피해자나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청년, 더 심한 사건을 겪은 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는데요, "나는 세월이 지나도 이토록 극심한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가해자가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가장 무너진다"는 거지요.

드라마는 이런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또는 반성하지 않은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모범택시 기사인 주인공(이제훈)은 다양한 방식으로 범죄자들에게 벌을 주지만, 대표적인 것은 사설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사회에 다시는 섞이면 안될 흉악범임에도 비교적 낮은 형량을 받은 이들이 만기출소 하면 택시로 교묘히 유도해서 사설감옥에 다시 가두어버리는 건데요.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껴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댓글도 달았더군요. "법과 사회적 정의가 피해자들의 아픔을 충분히 살피지 않는 사회니까, 저렇게 누군가는 바로잡는 게 맞다"고요. 그래서인지 시청률도 매주 변함없이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요.

하지만 내용이 전개되면서 드라마는 새로운 화두를 던집니다. "그럼에도 사적인 응징은 정당한가? 죽어 마땅한 사람을 죽일 권한이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이지요. '대모(차지연)'라는 캐릭터가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흉악범들을 격리시켜놓는 사설감옥 업체의 회장인 그녀, 드라마 중반까지는 주인공의 활약을 보조하는 적당한 '신 스틸러' 배역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바로 가둬둔 범죄자들의 장기를 적출해 밀매를 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겁니다. 시체는 황산으로 녹여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말이지요.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저건 아니지 않나, 싶다가도요.

"나쁜 놈들 장기 떼다가 착한 놈 주는 게 뭐가 그렇게 나빠?"라는 대사를 탁월하게 뱉어내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 또 한편으로 설득되며,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바로 이 혼란의 지점이 드라마가 주는 진짜 메시지 인 것이지요. '대모'와 같은 또 다른 부조리가 발생한다 해도,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사적 응징'은 합리화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곱씹으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과연 대모를 비판할 수 있을까?'라고요.

조두순이 멀쩡히 살아가는 사회가 역겹다고 그의 집에 돌을 던지러 몰려가는 것, '부모의 뒷배경으로 범죄혐의를 피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며 한 대학생의 신상을 털어버리는 것. 이런 일이 과연 우리의 몫일까요?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에게도 분명 그들을 엄벌할 권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엄벌하지 못한다며 범죄자를 직접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게 작동하는 공권력이 더욱 공정하고 엄격해지도록 엄중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요?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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