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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북적북적]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북적북적]

북적북적 292: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요즘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마주칩니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에서 벽에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대는 남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서너 정거장을 지나쳐 제가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반복적으로 벽을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물론 승객들 모두 자리를 피해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이쪽 편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쪽 편에 혼자 남아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뭐라고 쉽게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과격한 행동을 어떻게 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을까. 몸이 남아날까. 지금 저 사람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기묘한 손짓을 반복한다거나, 허공에 대고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흔하게 봅니다. 어떤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기보다, 그 특이한 반복적 동작이나 일종의 상태 속에 사람이 갇혀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같은 자리를 지날 때면, 또, 사라지고 없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위치를 옮겨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어 그리로 돌아간 것인지. 밤에는 누워서 자기는 할지. 그런 것들이 막연하게 궁금하다가, 잊어버리곤 합니다.

흔히 세상에서는 '마음의 병'이라는 표현으로 통칭해 부르는 증상을 보이는 이런 사람들을 분명히 한국에 있을 때는 거리에서 자주 보지 못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든 다른 어떤 곳이든, 이런 식으로 아픈 사람들이 아예 없다기보다는 뉴욕처럼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더 적을 뿐이리라고 짐작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뉴욕 거리에 인파가 줄면서 이런 사람들이 눈에 좀더 띄게 된 면도 있을 테고,) 다양한 배경과 성향의 사람들이 서로 목청껏 자기 존재를 드러내면서 공존하는 게 특징인 이 뉴욕이란 대도시에서는 이런 종류의 '병세'마저도 좀더 밖으로 분출돼서 드러나기 마련인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앓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 지내게 될까. 이런 생각들을 가끔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책에서 이 구절을 만났을 때, 유난히 눈길이 갔습니다.
 
"레이를 진찰한 다음 날, 나는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뚜렛 증후군 환자 세 명을 발견했다. (이하 해당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로 '투렛'으로 표기) 적어도 발견한 듯이 여겨졌다.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투렛 증후군은 지극히 드문 병이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병률이 100만 명에 한 명꼴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불과 한 시간 만에 세 명이나 본 것이다. 나는 무척 놀라고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틱 증상 환자들을 못 보고 그냥 지나쳐왔다는 게 말이나 될까? 정말로 못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투렛 증후군 환자를 보고도 '신경질을 부린다'거나 '좀 이상하다'거나 혹은 '발작을 한다'면서 그냥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투렛증후군: 환자가 다양한 종류의 과잉행동을 반복하는 질환. '틱 장애'와 부분적으로 겹치며, 유전적 요인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50년 전인 1971년에 이 의사가 뉴욕의 다운타운을 걸으면서 문득 새롭게 인식했던 그 병을, 똑같은 거리에서 요즘 마주치는 인파 중의 어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미 50년 전부터 많은 이들이 이 병을 약물치료를 비롯한 적절한 대응으로 이겨내 왔듯이, 오늘 내가 마주친 저 사람도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혹시 그리 멀지 있지만은 않은 걸까. 적어도, 그런 희망이 있는지 아닌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 줄 사람이 저 사람에게도 있었다면 저 이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온갖 기묘한 상황들이 등장하는 이 책의 의미가 문득 성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의학 논픽션입니다. 이 책을 쓴 올리버 색스는 1933년 영국에서 태어난 신경의학자, 의사였습니다. 2015년 사망할 때까지 주로 뉴욕의 대학병원들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임상 체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대중 에세이들을 잇따라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올리버 색스가 남긴 저작들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스테디셀러입니다. 1970년대부터 색스가 발표했던 유명한 글들을 추려 1985년에 첫 출간됐습니다.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였던 2016년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나온 개정판에는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러지는 인상적인 일러스트들이 삽입돼서 더 큰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꾸준히 읽히고 있는 책이라, 작년 12월에는 '리커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P선생은 오랫동안 뛰어난 성악가로 명성을 날렸던 지방의 음악 교사였다.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무렵이었다. 학생들이 자기 앞으로 다가와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학생이 말을 걸면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누구인지를 알았다. 이런 일이 점점 더 빈번해지자 P선생은 당혹스러워하기도 하고 멋쩍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가끔은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앞에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리를 거닐다가 소화전이나 주차요금 자동징수기를 보면 마치 아이들의 머리라도 본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구의 장식을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中)

참으로 기묘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사례들이 계속 해서 등장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색스가 다른 글들에서 소개했던 환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무수히 많은 영화나 소설에 각색돼서 등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중증의 기억상실증 환자나, 중대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나 숫자처럼 특정한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경이로울 정도의 감수성이나 능력을 지닌 '바보 천재'들. 뇌의 특정 위치에 종양을 비롯한 염증이나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로 이른바 '정신활동'에 오류가 일어나거나 딴사람처럼 변해버리는 사람들. 올리버 색스 뿐만 아니라, 색스가 이 책에서도 수십 번은 인용하면서 존경을 표하고 있는 러시아 신경의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 같은 학자 겸 작가들이 이렇게 다양한 증상의 사람들을 세상이 좀더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자칫 '그냥 망가진 인간' 같은 딱지 속에 갇힐 뻔 했던 사람들과 상황들의 원인을 좀더 깊이 분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책이 이미 끼쳐온 무수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리를 잡고 앉아 읽고 있으려니 여전히 한 장 한 장 새롭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너무나도 기이한 문제들에 맞닥뜨린 등장인물들이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재.했던 환자들이고, 이들을 다각도에서 진실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의 통찰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픽션 같은 데서 봤다는 이유로 '응, 대충 알아' 넘겨버리기 쉬운, 흥미거리나 가십거리로 치부되기 쉬운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어떤 삶을 살았는가. 진짜 인간들의 진짜 투쟁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어설프게 보는 것은 차라리 보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장갑을 들어올리며 뭐냐고 물었다.
"조사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장갑을 손에 들고 마치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사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조사해 나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
그가 주저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설명을 하셨으니 이제 그게 뭔지 말해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가를 넣는 물건인가요?"
"그래요. 그런데 뭘 넣는 거죠?"
"안에다 뭔가를 넣는 거겠죠."
P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잔돈주머니일 수도 있겠군요. 크기가 다른 다섯 가지 동전을 집어넣는… 아니 어쩌면…."
………..P선생의 뇌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기능했다. 시각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면에서 그는 컴퓨터와 똑같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중요한 특징이나 도식적인 연관관계를 토대로 컴퓨터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해낸다는 것이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中)

도대체 '본다'라는 행위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종양 때문에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에 퇴행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웃고 있어도 그 표정을 전혀 알아볼 수 없고 '타원 안에 원 두 개, 사각형 두 개가 있군.' 정도로만 생각된다면. 올리버 색스의 환자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공기보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 삶의 기본들에 대해서 혼란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자아란 또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 는 뭘 의미하는 것일까.
"옛날 일을 다시 되살려 기억하면서 지미는 매우 행복해 했다.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야기가 학교시절에서 해군시절로 넘어가면서 시제가 변한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과거형으로 말했는데 지금은 현재형을 쓰는 것 아닌가. 그것도 과거의 일을 소설에서처럼 일부러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직접경험을 아무런 꾸밈도 없이 현재형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순간 나는 짙은 의혹을 느꼈다.
"선생님, 그것이 몇 년도의 일이지요?"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그에게 물었다.
"1945년의 일이지요. 왜요, 뭐 잘못됐습니까?"
그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겼어요. 루스벨트가 죽고 트루먼이 대통령이 됐으니, 지금부터는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거예요."
"그런데 말이다. 지미, 너 지금 몇 살이지?"
나는 반말로 불쑥 물었다.
무슨 까닭인지 그는 머뭇거렸다. 자신의 나이를 가늠하는 듯했다.
"저, 그러니까 열아홉 살…. 일걸요. 이번 생일에 스무 살이 되니까요."
머리가 허옇게 센 남자를 눈앞에 두고 나는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길 잃은 뱃사람' 中)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려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어느 날 간호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간호사들은 이 질문을 듣고 몹시 분개했지만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해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미가 성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한 번 보세요. 그리고 직접 판단하세요."
나는 성당에 가보았다. 그리고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길 잃은 뱃사람' 中)

이 책에는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개념들을 바닥부터 뒤집는 케이스들이 계속해서 줄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이런 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허무주의를 비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책에는 '영혼'이란 단어가 유독 자주 등장합니다. 중증의 기억상실증으로 스무 살 이후의 인생이 통째로 사라진데다가 '현재'가 끊임없이 증발해 버리기만 반복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그에게 더 이상 기억력이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자아의 소멸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환자가 자신의 깊은 곳 어딘가로부터 갈구하는 회복에의 의지를 발견하고, 그의 '영혼의 가능성'을 애타게 그려봅니다.

환자들의 존엄과 '영혼'에 끊임없이 주목하고자 한 올리버 색스는 다른 의사들보다 더 비과학적인 전문인으로 전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먼저 환자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 시대 의학의 틀을 벗어났던 사람들의 문제를 그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당대의 다른 의사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게 되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한 예로, 이 책에 등장하는 또다른 환자는 자기 몸을 전혀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된 여성입니다. 몸이 있다는 감각이 하루아침에 통째로 사라져 그야말로 생활과 인생을 지속해 나가는 게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이 환자가 처음 만났던 의사는 '히스테리'라고 간단하게 치부해 버립니다. 자기 수준에서 단정짓고 더 이상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는 일단 환자의 호소를 핵심에 놓고 생각해 보기 시작합니다. 이게 진짜로 증상이라면? 머릿속의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감각이 사라진 거라면? 고민하고, 뇌를 검사하고, 신경의학자나 정신의학자가 아닌 재활 전문의까지 호출해 살펴본 결과, 실제로 이 여성의 위치감각을 관장하는 신경에 희귀한 염증이 생겨서 자기 몸을 느끼는 감각을 상실해 버렸다는 제대로 된 진단을 비로소 도출해 냅니다.

생의지가 강하고 판단력이 있는 지적인 여성이었던 이 환자는 정확한 진단을 받아들고 나서, 자신에게 갑자기 닥쳐온 중증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법을 조금씩 다시 찾아내기 시작합니다. 올리버 색스는 이 여성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면서 그녀를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웅 같은 여성이 자신을 히스테리가 심할 뿐으로 치부해 버렸던 첫번째 의사의 진료만 받고 끝이었다면, 스스로에게나 남들에게나 '미친 여자' 취급만 받다가 얼마 안 가 삶이 그대로 종료돼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투렛증후군'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투렛증후군은 19세기에 처음 보고됐지만, 정작 그 이후 신경학과 정신의학이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양쪽 분야 어느 쪽 틀에도 딱 들어맞지 않다 보니 점점 잊혀져 온 증상이었던 것으로 소개됩니다. 올리버 색스 같은 태도를 가졌던 의사들이 20세기 후반부에 이 병을 새롭게 조명하고 치료법을 찾아갑니다. 실재하는 환자들을 먼저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지식과 시스템의 틀에 끼워 맞추려는 태도를 올리버 색스는 이 '투렛증후군' 장에서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먼저이고 의학은 그 다음이라는 근본적인 기본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기 시대 의학의 한계를 종종 포착해 내고 환자들에게 더 나은 진료를 제공하는 상황들이 묘사됩니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올리버 색스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은 환자를 자기 기술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협력자'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환자와 의사는 함께 병을 탐험하고 새로운 방향을 발견해 나가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언어상실증 환자를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 나고 만다. 언어상실증 환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듣고 속는 일도 없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파악한다. 그들은 언어가 갖는 표정을 간파한다.
…… 언어는 상실했지만 감수성이 특히 뛰어난 그들은 찡그린 얼굴, 꾸민 표정, 지나친 몸짓, 특히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박자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따라서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에 속지 않으며 현란하고 괴상한 말장난과 거짓, 불성실을 간파하고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대통령의 연설' 中)

장애로 인한 인간의 붕괴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가능성과 존엄성에 주목해야만 비로소제대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책에서 걸어 나옵니다. '사람의 개념'을 흔든 뒤에 '사람'에 대한 더 깊은 감동을 남깁니다. 간질환자가 느끼는 찰나의 극적인 행복감, 투렛 환자의 번득이는 기지, 뇌졸중이 오는 바람에 어린 시절의 노래를 되찾은 할머니, 수십 년 만에 재발한 독한 성병의 증상을 스스로 정확히 진단하고 오히려 반기는 할머니, 신비스럽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을 찾기 힘든 '바보 천재'들의 내밀한 평화까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펼쳐, 올리버 색스와 함께 이들을 직접 만나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삶과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문득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실 겁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알마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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