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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가 이렇게 아파서"…섬마을 양귀비 밀경작 단속 현장

[취재파일] "내가 이렇게 아파서"…섬마을 양귀비 밀경작 단속 현장

아편 원료 양귀비로 '상비약' 삼는 노인들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작성 2021.05.23 10:39 수정 2021.05.23 21: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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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재배 단속
지난 6일,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 남동쪽에 있는 한 섬에 해경 연안구조정이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수사관 9명이 3개조로 흩어져 섬을 훑기 시작했다. 50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섬마을을 집집마다 들여다보는 이들은 완도해경 마약특별단속반이다. 양귀비꽃 밀경작을 적발하려는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집마다 방문하던 윤성훈 경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단속됐답니다."

한참을 달려 마주한 민가 텃밭에서 붉은 양귀비꽃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김희수 경사가 75살 텃밭 주인 하 모 씨를 추궁했다.

양귀비 재배 적발
"어머니, 이거 약 쓰려고 그런 것 아니요? 이거 약 아니요. 마약이요 마약. 이거 마약 하시면 나중에 큰일 나."

"지대로(저절로) 났더라고라. 새가 물어다가 했는가 정말 지대로 났대?"

"그러면 이거 우리가 뽑을게랑?"

딴청을 피우던 텃밭 주인은 다 자라지도 못한 채, 뿌리째 단속반원 손에 뽑히는 양귀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갖고 가 버려…우리하고는 아무 필요 없어. 갖고 가버려…."

바로 옆집 86살 주 모 씨 부부는 아예 원예용 지지대까지 세워 모양 내 가며 양귀비를 기르다 해경에 적발됐다.

 
"우리가 꽃 볼라고 놔뒀지. 우리가 뭣 하것어, 늙은 사람들이. 죄송합니다. 난 모르고 거가 하나 났길래…."

양귀비 재배 적발
해마다 양귀비꽃 피는 오뉴월이면 전국 섬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진다. 아편과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를 몰래 기르는 섬마을 주민이 적지 않아서다. 관절이 아프거나 배앓이를 할 때 즙 내 먹고 술 담가 마시는 등, 양귀비를 상비약 삼아 복용하는 관행이 남아있다. 완도해경 김진철 형사계장은 "아무래도 뭍하고 거리가 먼 도서 지역이라 급성 병증이 왔을 때 간단한 진통제로 쓰려는 노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단속반이 마주한 한 80대 주민은 "내가 이라고 아픙께…암또 못 하고 저 상추하고 섞어서 싸묵니라고…(키웠다), 없다 케…하지 마…쩌그 가봐, 쩌그. 그런 데 가 있드마…"라며 눈감아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단속반은 반나절 만에 섬 두 곳에서 4명으로부터 양귀비 56주를 압수했다. 하지만 모두 '경고'만 할 뿐 형사입건하진 않았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양귀비를 단 한 주만 심어도 처벌하도록 돼 있지만 검찰이 별도의 예규를 만들어 50주 미만을 기른 개인은 봐주고 있다. 촌로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검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양귀비 사범의 82%가 60대 이상 노인이다.

양귀비 재배 적발
단속하되 처벌하지 않는 건 의료 취약지역이라는 현실도 참작한 처사다. 30분 거리에 닿을 응급의료센터가 없는 게 사실이다. 기자가 만난 한 30대 주민은 기자에게 "날씨가 안 좋은 날엔 여객선이 안 뜨는 경우도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다들 작은 배들이 있어 어떻게든 해보지만 어른들은 배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경은 안타깝지만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라 단속을 안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도서 지역 응급 환자를 위해선 헬기까지 보내줄 수 있는데 "마약을 상비약으로 쓴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기자가 찾은 두 섬의 마을회관에는 해열·소염진통제와 소화제 같은 진짜 '상비약'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온정적' 단속이 계속되는 사이, 해경의 양귀비 밀경작 적발 건수는 2018년 4,095건에서 지난해 13,718건까지 해마다 늘고 있다. 최근 3년간 적발 실적의 75%가 관할 지역에 섬이 많은 서해와 중부해양경찰청에 몰려 있다.

마약 성분에서 오는 진통 효과는 결국 건강을 해칠 우려도 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양귀비에 든 알칼로이드라는 화학물질이 일부 진통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의존성과 내성 같은 일반적 마약의 특성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하고 금단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양귀비
더 큰 문제는 섬에서 몰래 키우는 양귀비가 마약사범들의 수집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목포해경은 신안군의 한 섬에서 양귀비 250주를 몰래 키운 주민을 적발해 형사입건하기도 했다.

섬마을 노인들의 '마약사범화'와 해마다 반복되는 양귀비꽃 단속 소동을 막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응급이송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의료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원격 의료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결국, 양귀비가 없어도 병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걸 주민들이 이해하고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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