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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추미애가 1회 공판 이전에 공소장을 네 번 언급했던 이유

[취재파일] 추미애가 1회 공판 이전에 공소장을 네 번 언급했던 이유
법무부는 최근 공소장 비공개 조치와 관련된 방침을 다시 한번 밝혔다. 기준은 기소된 당사자에 대한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까지는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범계 장관은 5월 21일 기자들을 만나서 "(공소장 공개는) 제1회 공판기일 전이냐 후냐가 중요하다."라며 "독일 형법은 공소장 유출을 처벌하는 조항을 둔다. 그 기준은 재판 시일."이라며 '법원의 1회 공판기일' 이전에는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는 법무부 방침을 재확인했다.

'1회 공판기일 이전 공소장 공개 불가'라는 법무부 기준은 사실 추미애 전 장관이 만든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020년 2월에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린 이후'에야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해 공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공적인 사건과 관련된 공인(公人, public figure)의 공소장의 경우 국회가 요구하면 대부분 즉시 제출해 온 2005년 노무현 정부 이래의 정책을 폐기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늦게 알권리"까지 이야기하면서 법원의 1회 공판기일 이전에는 공소장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추미애 전 장관이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에 여러 차례 공소장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말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던 때 일이다. 공개적으로 발언하거나 글을 쓴 것이 확인된 것만 네 번이나 된다. 당시 추미애 전 장관은 민주당 대표였다.
 

"1회 공판 전 제출 불가"라더니…네 번 언급했던 추미애

팩트를 체크해보자. 제일 먼저 확인되는 공개 발언은 2016년 11월 21일 민주당 의원총회 모두 발언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1백 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과 기자들 수십 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영상도 남아 있다. (추 전 장관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 어법에 맞지 않는 일부 문장도 그대로 인용했다. 의미는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나라의 대통령이 중대한 범죄 혐의자로 검찰의 공소장에 기재가 됐습니다. 아마 이 정도쯤 되면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이라고 추앙해서 국정교과서로,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서 이른바 건국절이라고 바꾸려고 했던 그 대통령도 이 정도 사안이 되니까 나라를 위해서 '일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라고 하면서 자진사퇴를 선언했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추미애 전 장관이 언급한 "공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소장"은 최서원 씨(옛 이름 최순실)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들의 공소장을 말한다. 최서원 씨는 추미애 전 장관의 발언 하루 전인 2016년 11월 20일에 기소됐다. 추미애 전 장관은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는커녕, 공소가 제기된 지 단 하루 만에 공소장 내용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것이다. [최서원 씨에 대한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은 두 달 후인 2017년 1월 5일에 열렸다.]

최서원 씨(옛 이름 최순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의 1회 공판기일' 이전에 추미애 전 장관이 공소장 내용에 대해 언급한 사례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바로 다음 날인 2016년 11월 22일에 추 전 장관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추 전 장관은 역시 여러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공소장에 의해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설시(說示)돼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도 정치 집단으로서는 아마 이 사태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 같고요,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 같고요.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범죄자를 옹호하는 집단으로 정치생명마저 위태롭다, 그런 거를 절박하게 느낀 것 같습니다."

추미애 전 장관은 발언만 한 것이 아니다. 2016년 11월 29일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또 한 번 최서원 씨의 공소장 내용을 언급했다. "검찰은 빼곡한 글씨로 30장의 (최순실에 대한) 공소장에 대통령을 공동정범, 때로는 주도적으로 지시한 피의자라고 했다."라는 문장이 특히 눈에 띈다. '30장'이라는 숫자에서는 공소장 전문을 직접 읽어 봤다는 디테일도 드러난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페이스북 글 (2016년 11월 29일)

추미애 전 장관은 다음 달인 2016년 12월 19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공소장을 언급한다. 기자 수십 명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받아치고, 여러 방송사 카메라가 촬영하는 공개회의였다.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날 발표한 담화문에 대해 반박하는 발언이었는데, 추 전 장관이 제시한 근거는 (추 전 장관의 최근 입장에 따르면)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공소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동정범, 또는 주범으로 공소장에 적시되어 있다는 것을, 공소장을 다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변명과 거짓으로 점철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국민과 국회는 이미 탄핵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이러했던 추미애 전 장관은 최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난 17일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에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고 보도되는 것에 대해 "야만적 반헌법적 작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검찰은 그동안 재판도 받기 전에 검찰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공소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과 없이 보도하게 해 유죄의 예단과 편견으로 회복할 수 없는 사법 피해자를 만들어왔다."라고도 썼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글(2021년 5월 17일)

그렇다면 2016년 11월과 12월의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법원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도 전에" "검찰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공소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야만적 반헌법적 작태"를 적어도 네 번이나 저지른 것이었을까?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너무 빈번하게 쓰여 식상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또 한 번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
 

공소장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탄핵소추

박근혜 전 대통령

추미애 전 장관이 2016년 말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 "검찰의 공소장'을 줄기차게 언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때문이었다. 추미애 전 장관을 비롯한 여러 민주당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검찰의 공소장" 또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언급했던 것이다. 이런 발언들은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하면서 결국 성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국회가 의결한 탄핵소추안 원문을 보면 "검찰의 공소장"이 단순히 국회의원들의 발언 소재로만 쓰인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탄핵소추안에는 21개 항목으로 구성된 '증거목록'이 첨부돼 있는데, 이 가운데 핵심 증거는 최서원 씨를 비롯한 관련자 8명의 공소장이었다. 나머지 증거는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법리적 참고를 위해 첨부한 대법원과 헌재 판례, 그리고 언론사 기사 정도였다. 탄핵소추안 내용의 90%는 "검찰의 공소장"에 기초해 작성됐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근본적 원동력은 추운 겨울 과장에 모여 문제를 제기한 수백만 시민들의 목소리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검찰의 공소장"이 법원의 1회 공판기일 이전에 국회에 제출돼 공개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탄핵'이라는 헌법적 절차는 시작되기도 어려웠던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 표 일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자체가 공적인 성격의 사건과 관련한 공인(公人, public figure)의 공소장을 국회의 요구가 있을 경우 즉시 제출해왔던 2005년 이후의 정책이 바람직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인 것이다. 물론 국정농단 사건 이후에도 주로 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소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소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 등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고, 추미애 전 장관이 2020년 2월에 가로막기 전까지는 법무부는 공적인 사건과 관련된 공인의 공소장을 줄곧 국회에 제출해 왔다. 이 또한 '공인의 공소장의 국회 제출'이라는 기준이 적절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공소장 제출 거부의 진짜 이유는?


이른바 '조국 사태'가 벌어지고 추미애 전 장관이 '울산 사건'에 대한 공소장 국회 제출을 거부하기 전까지는 법원의 1회 공판 기일 이전에 공적인 사건과 관련된 공인의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적 상황이 변하기 전까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당연히 국회에 제출되어야 할 자료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 들여왔던 것이다. 박범계 장관은 독일 사례를 이야기하지만, 2005년 이후 문제제기가 사실상 없었고,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몇 년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던 '공인의 공소장 국회 제출'이라는 정책을 갑자기 바꾼 이유에 대해 '우리 편'에게 불리한 상황이 조성됐다는 것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은 없다.

물론 공소장 국회 제출과 공개 대상자인 공인의 명예권과 공소장 공개로 인해 충족되는 국민의 알권리가 충돌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원론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공적인 정보 공개와 관련해 개인의 명예권과 국민의 알권리는 거의 언제나 충돌하기 마련이며, 두 권리를 경우마다 비교해 기준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공적인 기구와 사회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공인의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문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15년 동안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이라는 기준을 유지해왔고, 이 기간에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었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역시 공소장을 즉시 공개하고 있지만, 공판기일 이전 공개에 대해 명예권의 침해가 더 중대하다고 판단하는 사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기준이 우월한지에 대한 토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기준이 정치적 상황이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엇이 "야만적 반헌법적 작태"인가?

법무부

2016년 추미애 전 장관의 공소장 언급 발언과 2005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사실상 문제제기가 없었는데도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부터 공소장 국회 제출에 대한 기준을 바꿨다는 점만 놓고 봐도 공소장 공개와 관련된 기준이 무엇을 이유로 후퇴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추미애 전 장관이 갑작스럽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시행한 이후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소장이 법원의 1회 공판기일 한참 전에 "유출"돼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법무부는 문제 삼지 않았다. '감찰'이나 '수사'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공소장 비공개에 대한 법무부의 '새로운 기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자유는 전통적으로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발표의 자유)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전달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은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은 정보에의 접근이 충분히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1991. 5. 13. 선고 90헌마133) 이라고 '알권리'의 헌법적 근거를 밝혔다. 헌법적 권리 실현의 전제가 되는 알권리에 대한 기준을 정파적 이유로 후퇴시키는 것이야말로 "야만적 반헌법적 작태"가 아닐까?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내로남불'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헌법적이고 무엇이 반헌법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분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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