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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라돈 침대, 그 후 3년…잊혀가는 피해자

[취재파일] 라돈 침대, 그 후 3년…잊혀가는 피해자

경기도, 첫 '라돈 침대 유해성 검증 실험'

강민우 기자 khanporter@sbs.co.kr

작성 2021.05.20 09:28 수정 2021.05.20 09: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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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났지만…

2018년 5월 3일, 몇 주간의 취재와 거듭된 회의 끝에 첫 '라돈 침대' 보도가 전파를 탔습니다. 몸에 좋다는 '음이온'을 방출한다던 건강 매트리스는 사실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사과가 이어졌고, 우체국까지 동원한 매트리스 수거가 이뤄졌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매트리스들이 하나하나 해체돼 밀봉 보관되어 폐기 방식을 두고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허점이 드러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은 개정됐고 이제 더 이상 '음이온' 물질을 사용한 제품의 제조나 판매, 광고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일견 모든 게 잘 해결되고 개선된 듯 보입니다 . 하지만 누군가에겐 3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못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3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합니다. 바로 피해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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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도 없고, 유전도 없는데 두 번씩이나 암에 걸린다는 게…."

지난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호병숙 씨는 2007년부터 2018년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 약 11년간 라돈 침대에서 생활했습니다. 가족력도 없는데 2015년 암 진단과 수술에 이어 2017년 또 다른 암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호 씨에게만 일어난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지난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백도명 서울대 교수팀이 발표한 <라돈 침대 피해 신고자의 암 유병 현황 분석>에 따르면, 소송 진행 중인 라돈 침대 피해자 5천 명 중 180명이 암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암 유병률(특정 시점 인구 대비 환자 수 비율)은 3.6%로 일반 인구 집단의 1.6%의 2배가 넘습니다. 폐암 유병률은 일반인보다 남성의 경우 5.9배, 여성의 경우 3.5배 더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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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 드러난 데이터를 놓고 볼 때, 라돈 침대 사용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매우 커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라돈 침대 때문에 OO암이 걸렸다'라는 명제를 성립시키긴 어렵습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검찰 수사 결과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라돈 침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지난해 1월, 침대 제조업체 대표 등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린 이유로 "폐암은 라돈 흡입만으로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닌 유전이나 체질과 같은 선천적 요인과 식생활 습관, 또는 직업, 환경적 요인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이라면서, 라돈이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인 것은 인정되지만 갑상생암이나 피부질환 등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이 입증된 연구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피해는 입었지만 피해자는 아니다?

검찰의 결정 내용을 하나씩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라돈 침대 사태에 대한 접근과 현재 관련 기관들이 지난 3년간 해온 대응의 문제점이 행간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라돈 침대 검찰 불기소
먼저 형법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풀어내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폐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암 질환은 검찰 수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입니다. 한 가지 원인만으로 발병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물며,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목되는 담배마저도, 폐암 등의 원인은 맞지만 '담배만이' 폐암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 2011년, 폐암에 걸린 흡연자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패소하기도 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에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살균보존제인 CMIT, MIT 성분을 쓴 제품과 관련해 '유해성 입증이 명백하게 되지 않았다'라며, 업무상 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된 관련 업체(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관계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판결이 담배나, 문제가 됐던 가습기살균제가 '무해'하다는 걸 뜻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분명 피해는 입었는데, 법적으로는 피해자라고 인정받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해결이 아닌, 보다 실질적인, 다른 층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었던, 그래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라돈 침대'

두 번째,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된 건 세계적으로 처음 있던 일입니다. 관련 연구 결과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물론, '라돈' 자체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는 해외를 중심으로 꽤 많이 이뤄져왔고 그 결과, 유해성이 입증됐습니다. 하지만 라돈에 대한 실질적인 '안전 기준'이 실내 라돈 권고 기준(148Bq/㎥)임이 보여주듯, 이는 실내 공기에 포함된 라돈에 노출된 인체가 받는 영향에 관한 유해성 연구들입니다. '음이온 효과'를 낸다며 모나자이트 등 광물질 가루를 원단에 펴 바른 라돈 침대 위에서 수년간 생활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아니었습니다.

라돈 매트리스 해체 시작
특히, 전문가들은 라돈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는 토론(Rn-220)에 의한 '흡입 독성' 등을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실내 공기 중 라돈 수치에 대한 연구에서 토론(Rn-220)의 수치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반감기가 55.6초에 불과해 3.8일인 라돈(Rn-222)보다 인체에 흡입되어 피폭을 일으킬 가능성이 작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돈 침대의 경우 신체 밀착형 제품인 매트리스입니다. 토론이 반감기에 접어들기 전에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흡입돼 내부 피폭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겁니다. 조승연 연세대 라돈안전센터장은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토론(Rn-220)이 몸 내부로 들어올 경우 6배 더 위험하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예 새로운 방식의 라돈 침대 유해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라돈의 유해성이 아닌 '라돈 침대의 유해성' 검증.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라돈 침대'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경기도의 첫 '라돈 침대 유해성 검증 실험'

앞서 언급한 <라돈 침대 피해 신고자의 암 유병 현황 분석>처럼 민간에서의 여러 조사와 라돈 침대의 유해성 검증 노력은 계속 이어졌지만,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접근은 전무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부터 경기도 공정국 공정경제과(국장: 김지예)가 <라돈 발생 침대 사용자 건강 실태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실제 라돈 침대를 사용했던 소비자들을 심층적으로 조사해, 노출 정도와 질병 발병률, 비사용자와의 차이를 확인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최종적인 분석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당장 조사 대상 647명 가운데 침대 사용 이후 암 진단을 받은 사례가 4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돼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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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경기도는 예산을 편성해 보조금 교부 사업 형태로 유해성 여부 검증에 나섰습니다. 보조금을 교부받아 관련 검증에 나서는 건 '성남소비자시민모임(성남소시모)'입니다. 성남소시모는 현재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 서울대 보건대학원 등과 함께 유해성 검증 실험 방향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 검증 실험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새로운 접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침대 사용자의 암 유병 현황 분석, 경기도의 건강 실태 조사에서 볼 수 있듯, 라돈 침대가 사용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자체는 비교적 명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에 인과관계 입증을 위한 유해성 검증이 뒤따라야 합니다. 라돈 침대 위에서의 생활이 피해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준 건지, 그 유해한 정도를 알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유해성을 알아내야 질환과의 인과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들의 향후 건강 관리 계획 등을 세울 수 있습니다. 국내 라돈 관련 전문가 중 한 명인 박경북 김포대 환경보건연구소장은 "이번 실험이 잘 진행되면 라돈 침대가 호흡을 통해 어떤 암을 일으키고, 얼마 정도의 암에 걸릴 수 있는지, 암 발병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다른 질병과의 연관 관계 등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이번 유해성 검증 실험에 예산을 편성하기로 한 이재명 경기지사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가습기 사태도 아주 장기간 벌어졌고 오랫동안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피해가 극심하게 발생한 이후에야 겨우 조사에 들어가고 보상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라며, "라돈 침대도 사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어, 경기도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GMO(유전자변형농수산물)를 함께 예시로 들며 "유해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무해성이 증명됐다는 게 아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소비자가 직접, 또는 이를 지원하는 민간단체들이 주로 대응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라며 이번 검증 실험 예산 편성 결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정부·지자체 차원의 첫 유해성 검증 실험인 만큼, 과정과 결과가 향후 라돈 침대 사태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공신력 있는 검증 절차가 담보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인데, 당장 검증 과정에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도 있습니다. 먼저 예산 문제. 현재 경기도가 이번 실험을 주도할 성남소시모에 교부한 예산은 약 8천만 원인데, 처음 성남소시모가 중점적으로 고려했던 동물 실험의 경우, 당장 추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침대라는 특성상, 매트리스 종류, 사용자의 사용 방식, 체류 시간, 구매 기간, 사용자의 연령 등 이번 검증에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기에 공신력 있는 결과 도출을 위해 GLP(Good Laboratory Practice/비임상 시험 관리 기준)에 맞는 공간과 방식을 택하면 소요 예산도 당연히 커집니다. 동물 실험과 함께 고려되는 피해자 혈액 검사 방식은 자칫 앞서 진행된 암 유병 현황 분석이나 실태 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유해성 검증이 아닌 또 다른 현상 분석에 그칠 수 있다는 건데, 검증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1인 시위해도 전혀 관심이 없고…. 완전히 잊혀버릴까 두렵고 외롭죠."

"피해자들이 제풀에 꺾이길 바라는 것 같다." 매주 시위에 나서고 있는 라돈 침대 피해자 호병숙 씨의 말처럼, 라돈 침대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3년간, 법 개정과 라돈 침대 폐기물 처리 방식 등에 대한 논의는 나름 이뤄졌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지자체 차원의 건강 조사나 지원은 없었습니다. 이미 발생한 질병에 대한 대응은 물론, 혹시 모를 미래 질병에 대한 대비 역시도 전부 개개인의 몫이었습니다. 피해자나 피해자의 건강에 대한 논의는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라돈 침대로 가장 많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한 번도 이 사태의 중심에서 다뤄진 적이 없었습니다.

경기도, '라돈 침대' 첫 유해성 검증 실험
아직 보완해나가야 할 부분들이 분명 있고, 검증 과정에 여러 숙제들이 놓여 있음에도 피해자들이 이번 경기도의 라돈 침대 유해성 검증 실시에 기대와 높은 평가를 보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라돈 침대를 아직 잊어선 안 되는 이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2018년, 수거해 해체 작업을 했다는 라돈 침대 매트리스는 7만 1천여 개입니다. 매트리스 하나를 한 명이 사용했다고 단순 계산해도 최소 7만 명 넘는 시민이 라돈 침대에 노출됐던 겁니다. 일부 시민단체는 수거가 늦어지면서 직접 버렸거나, 아직 사용하고 있는 것까지 고려하면, 그리고 통상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대형 매트리스까지 고려하면,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라돈 침대
구체적인 피해 조사조차 없이 그냥 넘기기엔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당장 최근 SBS의 라돈 침대 관련 기사가 보도된 뒤 한 시민단체로 라돈 침대 매트리스를 사용한 걸 뒤늦게 알았다는 소비자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위 사례처럼 아직 우리 주변에 라돈 침대 사태가 현재 진행형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전 사회 구축을 목표로 하는 정부가 아직 라돈 침대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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