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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서독이 거부하지 못했던 동독 조약은?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서독이 거부하지 못했던 동독 조약은?
지난 글 ▶ 북한의 빚은 얼마?…금융시장에서 북한 채권이 거래된다는데에서 통일 시 북한 채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통일이 될 경우 북한이 맺은 조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이 맺은 조약은

북한이 체결한 조약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1997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1948∽1996년 사이에 139개국과 3천290건의 양자 조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1996년 이후 20년이 더 지난 상황인 만큼 북한이 체결한 조약은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다른 통일국가들이 선행국(합쳐지는 나라)의 조약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베트남은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 이후 남베트남이 체결한 조약을 모두 무효화했습니다. 북베트남이 체결한 조약이 전 베트남에 확대 적용됐는데, 남베트남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멘의 경우 통일헌법 제정을 통해 남북 예멘이 체결한 조약의 효력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통일조약에서 서독이 체결한 조약은 동독 지역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으나 동독이 체결한 조약은 당사국과의 협의를 거쳐 효력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통일독일의 필요에 따라 동독 조약의 승계 여부를 결정했다는 얘기인데, 독일이 대표적으로 승계한 동독의 조약은 동독과 폴란드가 체결한 오더-나이세선(Oder-Neisse) 기준의 국경조약입니다. 독일이 이 국경조약을 승계한 이유는 독일 통일에 부정적이었던 주변국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더-나이세선의 동쪽 땅은 예전에 독일 땅이었다가 폴란드 영토로 편입된 곳이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오더-나이세선 동쪽 땅을 그대로 폴란드 땅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서독의 콜 총리는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이 요구를 수용했고 통일독일과 폴란드는 동독 시절의 오더-나이세선 국경조약을 그대로 체결했습니다.
 

남북의 경우는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된다고 가정할 경우 한반도에서는 남한의 조약이 한반도 전역에 확대 적용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체결한 조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독일은 당사국과의 협상을 통해 동독 조약의 효력 여부를 결정했으나 북한이 맺은 조약은 일단 모두 소멸시키고 필요시 새롭게 조약을 체결하면 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북한이 체결한 조약의 효력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일일이 당사국과 협상을 벌인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이 맺은 조약을 무효화시키기 어려운 대표적인 조약이 있는데, 바로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조약입니다. 북한은 1962년 중국과 1985년에는 러시아와 국경조약을 체결했는데, 이를 무효화시키면 중국 러시아와 상당한 분란이 불가피합니다. 큰 무리가 없다면 통일 과정에서 주변국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조약은 승계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북한이 맺은 조약 가운데 승계 필요성이 있는 조약들을 선별해 예외적으로 승계를 선언한 뒤 나머지 조약들은 모두 무효화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조약별로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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