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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시민의 사과문에 '한동훈'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검찰은 지난 3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적용한 죄명은 "라디오에 의한 명예훼손"이었다. 지난해 7월 24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시민 이사장이 허위 발언을 해서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이 방송에서 "(2019년) 11월 말 12월 초순쯤이라고 봐요. 그 당시 한동훈 검사가 있던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요."라고 말했는데, 한동훈 검사나 대검 반부패강력부가 노무현재단 계좌를 추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는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허위발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사진=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처, 연합뉴스)

"유시민 기소는 부당"…명예훼손 부정 논리는?


이 사건의 당사자인 유시민 이사장은 검찰의 기소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법조인 출신 일부 여당 의원들은 유 이사장을 기소한 검찰을 거세게 비난했다. 대표적 인물이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검찰 기소는 검찰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크게 두 가지 논리를 제시하면서 유 이사장에 대한 기소가 부당하다고 말했다.

첫째,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유 이사장 입장에서는 발언 당시에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한동훈 검사가 있던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당 계좌에 대해 금융기관이 '거래정보 사실 제공 통보유예'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거래내역을 국가기관에 제공했다는 사실을 금융기관이 즉각적으로 계좌주에게 통보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 (= 거래정보 사실 제공 통보유예 조치)은 "수사기관의 계좌 열람을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둘째, 유시민 이사장이 해당 발언을 통해 비판한 대상은 개인 한동훈이 아니라 검찰이란 공적 기관이기 때문에 역시 법리상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이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는 한동훈 검사가 속한 검찰을 지칭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 한동훈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와 국가기관은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검찰의 위 기소는 검찰권 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김용민 의원은 주장했다.

만약 앞으로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할 경우, 유 이사장 측도 김용민 의원이 제시한 논리와 비슷한 입장을 법정에서 밝힐 것으로 추정된다.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이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아있고, 유시민 이사장 스스로 자신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고 사후적으로 밝힌 상황에서, '유시민 이사장이 허위발언을 했다'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 측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김용민 의원 주장처럼 '허위발언은 했지만 법리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핵심 쟁점 - 비난 대상은 한동훈이었나, 검찰이었나?


그렇다면 '허위발언은 했지만 명예훼손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의 경우 '유시민 이사장이 비난한 대상이 한동훈이냐, 검찰이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김용민 의원의 주장처럼 유시민 이사장이 발언을 통해 비난한 대상이 한동훈 개인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일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유시민 이사장이 비난한 대상이 한동훈 검사장 개인일 경우,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서 허위사실을 말했다는 점이 입증된 상황이라면 명예훼손죄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한동훈 검사장이 고위 공직자라고 하더라도, 한동훈 검사장이 계좌를 추적했다고 믿을만한 근거 없이 허위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했다면 이는 명예훼손죄에 해당된다. 실제로 최근 법원은 조국 전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을 담당한 부장판사와 만났다는 허위사실을 유튜브 등에서 말한 기자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명예훼손죄가 인정된다고 선고했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었는지 역시 명예훼손의 대상이 한동훈이었는지 아니면 검찰이었는지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다. 김용민 의원 등은 유 이사장이 '거래정보 사실 제공 통보유예 조치'를 발언의 근거로 제시했다며, 이는 경찰 또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계좌 열람"을 충분히 의심할만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수사기관"이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동훈 또는 한동훈이 이끄는 특정 부서가 해당 계좌를 추적했다고 믿을만한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 계좌를 열람한 수사기관이 대검 반부패강력부가 아니라 경찰이나 다른 검찰청일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래정보 사실 제공 통보유예 조치' 역시 명예훼손의 대상이 한동훈 검사장으로 확정될 경우, 당시 상황에서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로 간주되기 어렵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 쟁점, 즉, 유시민이 발언을 통해 명예를 훼손한 대상이 한동훈인지 아니면 검찰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문서가 있다. 2021년 1월 22일에 유시민 이사장이 발표한 "사과문"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사과문에서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라고 밝혔다. "누구와도 책임을 나눌 수 없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면서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은 앞으로도 일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도 언급했다.

이를 두고 당시 여러 언론사가 '유시민 이사장이 한동훈 검사장에게 사과했다.'라고 보도했다. 만약 보도 내용대로 유시민 이사장이 사과를 한 대상이 한동훈 검사장이었다면, 유시민 이사장이 비난한 대상은 한동훈 검사장으로 해석될 수 있고, 따라서 사실상 유시민 이사장이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을 인정했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문장도 있었으니 유 이사장이 명예훼손죄 등 법적 책임도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사과문 발표 당시 유시민 이사장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돼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유시민은 한동훈에게 사과를 했던 것일까?


그러나 유시민 이사장이 발표한 "사과문" 전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이를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사과로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 사과문에는 "한동훈"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하며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을 사과의 대상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이는 오히려 한동훈 개인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집단에 대한 비판이었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적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표현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사과문에 특정했다면 명예훼손의 대상이 한동훈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어려웠겠지만,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에게만 사과했기 때문에 한동훈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집단을 비난한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것은 유시민 이사장이 "사과문"에서 사과의 대상으로 언급한 발언이 '2020년 7월 24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 출연 발언'이 아니라 '2019년 12월 24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출연 방송'이었다는 점이다. 유 이사장은 MBC [시선집중]은 언급하지 않은 채, [알릴레오]에서의 발언에 대해서만 사과를 했다. 그런데 검찰은 유시민 이사장을 기소하면서 MBC [시선집중] 발언만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알릴레오] 발언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유시민 이사장은 검찰이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발언에 대해서만 사과하면서 "어떤 책임 추궁도 받아들이겠다."라고 약속했을 뿐, 정작 기소가 된 발언에 대해서는 사과하거나 법적 책임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셈이다.

(검찰은 유시민 이사장이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는 한동훈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검찰의 노무현재단 계좌 추적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에 따라 이를 공소사실에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0년 7월 24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는 유시민 이사장이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직접 언급됐을 뿐 아니라, 이날 방송 자체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당일 아침에 있었던 것이고, 유시민 이사장 역시 방송에서 "여기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라고 생각하고 왔다."라고 말하는 등 한동훈 검사장을 특정해 발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따라 MBC 라디오 [시선집중] 출연 발언만 '라디오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기소했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유시민의 "사과문",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문"은 글 내용만 놓고 보면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이번에 검찰이 명예훼손죄를 적용한 문제 발언에 대한 사과라고 보기도 힘들다. 유시민 이사장은 "사과문"에서 "어떤 책임 추궁도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사과문만 놓고 보면 검찰이 기소한 혐의, 즉, 2020년 7월 24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보이진 않는다.

유시민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에 유죄가 선고될지, 검찰의 검찰권 남용이 인정될지는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다툼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유시민 이사장이 사과문에서 밝힌 것처럼 "어떤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유죄를 인정할지, 아니면 김용민 의원 등의 주장과 비슷한 법리를 내세우며 무죄를 주장할지도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만약 유시민 이사장 측이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렇다면 유시민은 한동훈에게 사과를 한 것이 아니었나?'라는 질문이 곧바로 제기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 유 이사장이 지난 1월 "사과문"을 발표할 때 "한동훈"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MBC 라디오 발언이 아니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발언에 대해서만 사과한 진짜 이유도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게재된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문 전문 (2021년 1월 22일)

사 과 문

2019년 12월 24일, 저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2019년 11월 말 또는 12월 초 사이 어느 시점에 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는 입증하지 못할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노무현재단을 정치적 대결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모든 강물을 받아 안는 바다처럼 품 넓은 지도자로 국민의 마음에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할 이사장의 책무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후원회원 여러분의 용서를 청합니다.

'알릴레오' 방송과 언론 보도를 통해 제가 제기한 의혹을 접하셨던 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검찰 개혁 정책이나 그와 관련한 검찰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의 뒷받침이 없는 의혹 제기는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 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해석해, 입증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기본을 어긴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와도 책임을 나눌 수 없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에 대한 모든 비판을 감수하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4월 정치비평을 그만두었습니다.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은 앞으로도 일절 하지 않겠습니다.

2021년 1월 22일

유 시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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