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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먹자 - 이영미 [북적북적]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먹자 - 이영미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290 :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먹자 - 이영미

내 손 잡아/안 넘어져/ 걱정하지 마/ 날 믿어/
내가 잡고 있어/나한테 기대/
뭐 필요해?/ 어디로 갈래?/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먹자
하루종일 듣는 고마운 말들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中


오늘 북적북적에서 소개하는 책은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이영미 지음, 정한책방 펴냄)』입니다. 책 제목은 바로 여기서 따온 구절입니다. 루게릭병으로 5년간 투병중인 이영미님이 '하루 종일 듣는 고마운 말들'이에요. 〈샘이 깊은 물〉편집디자이너를 비롯해 북디자이너로 활약했고 '예올'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이영미님은 2016년 2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병, 지연제가 있지만 맞지 않아서 쓸 수 없었던 이영미님의 상태는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몸은 병에 갇혀 굳어가면서도 맑은 정신으로 페이스북과 메모장에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이 모여 이 책이 되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글을 쓸 수 있던 2018년 8월까지 쓴 글을 묶었습니다.

처음엔 손이 떨리고 자주 넘어졌고, 걷기가 어려워지고, 왼손이 움직이지 않고, 휠체어에도 앉을 수 없어 침대에 눕게 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눈을 깜빡여 의사소통을 하게 된 시간, 이영미님은 정신이 몸에 묶인 그 시간에 고통과 기도의 글을 썼습니다.

20171026

마음에
숨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는 건
참 편하고 좋은 일입니다.
내 안에서 복잡하게 계산되고
얽혀 있던 그 존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 낮은 곳에서는 나를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다 보일 테지요.
그러니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나를 펼쳐놓고 읽어도 좋다고 말할 뿐입니다.
내려 놓는 것이 하나하나
그렇게 힘겹더니 내려와 앉으니
버릴 것도 없어 편안합니다.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中


이 책에는 저자의 지인들 글도 중간중간 실려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인 서화숙 님은 '책이 좋으니 책을 내자고 하면 그때도 어김없이 다른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래서 영미는 온몸이 루게릭병에 갇혀버린 이제야 자기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면서 친구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위엄을 잃지 않는 한 인간이 여기에 있다.'

루게릭병 투병중인 박승일 선수의 누나인 박성자 님은 이렇게 썼어요. '20년동안 루게릭병 환우 가족으로서 산 경험 때문인지 루게릭병 환우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 한 편 한 편,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수록 과연 난 무슨 근거로 루게릭병 환우를 안다고 생각했던건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짐작을 통해서든 경험을 통해서든 미루어 짐작할 뿐, 가까운 가족이라 하여도 결코 안다고 할 수 없음이 루게릭병 환우의 삶이란 것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으면 일단 깜짝 놀라게 됩니다. 표지와 제본이 '그냥 책'이라고 부르기엔 '책'이라는 말과는 다른 표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앞표지만 나오는 온라인 서점의 사진만 보고는 상상할 수 없던 실물이거든요. 책장을 넘기는 느낌, 종이의 감촉, 글자의 모양까지 총체적으로 외양에 놀라게 되고, 책을 읽으면서 내용에 또 마음이 크게 일렁이게 됩니다.

20171101
손으로 책장을 넘길 수 없어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 가능했던 시간들은 차곡차곡 접혀져 하나씩 사라지고
무위의 시간은 점점 펼쳐집니다.
언젠가 소통 없는 벽을 마주하겠죠.
…(후략)…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中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많은 것들에는 책장을 넘겨가며 책을 읽는 것도 포함됐습니다. 북디자이너였던 그는 '잘 펴지고 잘 넘어가는 책',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을 잘된 디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가볍고 활짝 펼쳐집니다. 이 책 제일 마지막 장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써있어요. '책의 앞표지는 버밀리언, 뒷표지는 올리브, 상반된 색으로 한다. 한 가지 색으로는, 몸은 매였으나 벼린 정신의 이영미를 드러내기에 부족했다. 이영미가 찍은 겨울 궁남지 사진을 띠지의 바탕으로 썼다. 수분 마른 연잎대가 뚫린 듯 막힌 듯, 그가 겪어온 지난 5년의 '숨과 근육의 기억'을 보여주는 것 것 같다. 제본은 책이 완전히 펴지는 사철 제본 방식을 선택하였다. '잘 펴지고 잘 넘어가 (몸이 불편한 사람도)편하게 일을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은 책은 잘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영미의 토로를 새겼다'. 이 책을 만드신 분이 얼마나 큰 애정을 담아서 글을 모으고 책을 만들었는지가 종이와 글자를 타고 독자에게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에요.

오늘은 아주 일부를 읽어드렸지만, 이 책에는 생사와 하루하루, 들이쉬고 내쉬는 숨,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 많습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죠. 지난 한 주 가족 생각 많이들 하셨을 것 같아요. 뭐라 설명해도 전할 수 없는 이 책의 온기를, 직접 읽으시며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의 낭독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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