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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판다] 이춘재 수사기록에서 드러난 경찰의 '조직적 은폐' (풀영상)

[끝까지판다] 이춘재 수사기록에서 드러난 경찰의 '조직적 은폐' (풀영상)

탐사보도팀 기자 panda@sbs.co.kr

작성 2021.05.03 21: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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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3일)은 저희 끝까지 판다팀의 단독 보도로 8시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1989년 경기도 화성에서 당시 8살이던 김현정 양이 사라졌습니다. 가족은 30년 동안 전국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실종 사건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던 2년 전, 연쇄 살인범 이춘재가 자신이 현정 양을 숨지게 했던 진짜 범인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당시 수사팀이 현정 양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숨겼고, 또 증거를 없앴다면서 경찰관 2명을 입건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수사기록을 입수해서 확인한 결과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경찰 10명이 시신이 발견된 걸 알고도 침묵한 정황이 있었고, 현장 증거까지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화성에서 살인 사건이 또 났다고 하면 시끄러울까 봐 그런 거 같다는 게 당시 수사팀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소환욱 기자 단독보도입니다.

<기자>

끝까지 판다팀이 입수한 김현정 양 살인사건 검·경 수사기록입니다.

1989년 12월, 현정 양이 실종 5개월 만에 시신이 발견됐으나 경찰수사팀이 시신을 은닉했고, 이 사실을 경찰수사팀 다수가 알고 있었던 정황이 담겨있습니다.

A 순경은 당시 '동료 경찰이 산 아래를 가리키며 저기 현정이가 잠들어있다고 말했다' 고 밝혔습니다.

김현정양 수사/현장증거 조작
"유류품 근처에서 시신이 나왔는데 덮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B 순경, "형사계장 주도로 시신을 묻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C 순경.

당시 현장에 출동한 감식반 경찰도 '뼈가 발견됐지만 덮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시신 은닉 뒤 조직적으로 이 사실을 감추려 한 정황도 나왔습니다.

D 순경은 "형사계장이 집합 시켜 기자들 알면 큰일 난다, 보안을 유지하라고 말했다"고 진술했고, A 순경은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을 형사계장이 돈으로 입막음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이 어렵사리 만난 당시 수사팀 경찰도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 : 보고서에는 유류품 발견된 것, 시신 발견된 건 그냥 묻어버리고 그 상태에서 실종사건으로 수사하는 걸로 그렇게 진행이 된 거죠.]

현장증거를 조작한 것도 새로 드러났습니다.

1989년 수사보고서에는 현정 양 옷이 신발주머니에 정리돼 있어 단순 가출로 보인다고 기록했지만, 이춘재는 검찰 조사에서 살해 직후 유류품을 살해 현장 주변에 던졌다고 말했고, 당시 경찰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유류품 신고 당시 출동 경찰관 : 속옷 같은 것이 이렇게 해서 가시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 있어서, (최초 신고자들이) 유류물을 들춰 보니까 명찰에 현정이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30년 만에 진실이 드러난 뒤 당시 수사팀은 은폐 이유에 대해 E 순경은 '연쇄살인 또 났다고 시끄러울까 봐 그런 것 같다'고 말했고, A 순경도 "하도 쉬쉬해서 나만 입 다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적어도 당시 수사팀 10명이 시신발견과 은폐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지만, 경찰은 형사계장 이 모 씨와 2009년 숨진 순경 등 2명만 시신 은닉 혐의 등으로 입건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시신을 은닉해 살해 사실을 영구히 감추려 했다기보다는 일시적 업무 부담감에서 벗어나 나중에 수사를 재개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황당한 의견서까지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김종태, VJ : 김준호, CG : 성재은·이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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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만약 이춘재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거 경찰이 숨겼던 진실은 아마 지금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춘재는 현정 양 사건 역시 미제 살인 사건으로 처리돼 있는 줄 알고 자백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실종사건으로 돼 있더라는 말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박상진 기자입니다.

<기자>

이춘재가 밝힌 자백 경위는 이렇습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 넉 달 뒤인 지난해 11월, 이춘재는 검찰에서 현정 양 살인사건을 자백한 이유를 진술합니다.

이춘재는 2019년 12월 경찰 조사 당시 "현정 양 사건이 실종 사건이 아니라 화성 몇 차 사건으로 분류돼 있는 줄 알고 진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춘재
"당시 경찰은 살인사건 9건에 대해서만 시인받으려 했는데 자신이 더 큰 숫자를 불러주니 놀라는 눈치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자신이 경찰한테 화성 일대 미제 사건을 다 가지고 오라고 한 뒤 진술한 것이지 경찰이 현정 양 사건을 먼저 물어본 게 아니"라고 진술했습니다.

이춘재는 또 "경찰이 다른 사건에 비해 현정 양 사건을 세밀히 조사하길래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죄를 뒤집어썼나 싶었는데, 나중에 매스컴을 통해 이 사건이 살인이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된 걸 알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춘재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경찰이 30년간 은폐한 현정 양 사건은 여전히 실종사건으로 남아 국가범죄의 실체는 묻혔을 것입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김종태, CG : 정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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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족들은 30년 전 시신이 발견된 걸 알고도 숨겼었던 경찰관들을 처벌해달라고 했지만,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에는 국가를 상대로도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정부는 계속 시간만 끌고 있습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이 내용은 권지윤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진실이 드러나자 경찰청장은 사과했고 유족을 위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민갑룡/당시 경찰청장 (2019년 10월 4일) :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한이 풀릴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가겠습니다.)]

민갑룡 2019년 10월 당시 경찰청장
그러나 그때 뿐이었습니다.

유족 측은 위법 상태가 계속되는 한 범죄가 끝난 게 아니라는 판례를 근거로 공소시효가 살아 있다며 경찰관 처벌을 요구했지만, 고발 1년 만인 지난 1월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라고만 적힌 불기소 결정문을 유족에게 보냈습니다.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국가가 저지른 범죄를) 국가의 이름으로 덮어주는 것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러다 보면 법이 추구하는 정의라든지 국가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라든지 이런 것들이 공소시효라는 이름으로 여지없이 무너지는 불합리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시간 끌기로 대응했고, 그 사이 현정 양 어머니는 숨졌습니다.

소 제기 1년이 지난 지난 3월 첫 재판 직전, 정부는 '유족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답변서를 법원에 내더니, 나흘 전에는 "1989년 정부의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가정해도 소멸시효 5년이 완성됐다"는 서면을 제출하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이정도 변호사/현정 양 유족 측 대리인 :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그런 법리도 대법원 판례로 확정되고 있는 마당에 소송이 형식적으로 오래 진행된다고 해서 그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큽니다.)]

과거사 처리에 있어 절차를 지연하고 책임을 회피한 역대 정부와 다르다고 강조해온 현 정부, 신속한 피해회복을 홍보하는 보도자료까지 냈지만, 정작 30년간 국가폭력에 시달려온 현정 양 유족을 외면한 겁니다.

[김용복/현정 양 아버지 : (정부가) 왜 책임이 없느냐고, 은폐시키고 다 했는데 왜 책임이 없느냐고. 경찰들이 은폐했으면 국민들은 아무리 찾으려 해도 못 찾아….]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이홍명, CG : 홍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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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현정 양 아버지는 경찰이 진실을 숨긴 것도 모른 채 언젠가는 딸이 연락해올 거라고 믿고 30년 동안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내용 취재한 끝까지 판다팀 권지윤 기자와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Q. 국가폭력 사건 공소시효는?

[권지윤 기자 : 네, 맞습니다. 가해자는 있지만 처벌을 못 하는 현실입니다. 이 사건처럼 공권력을 이용한 범죄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힘들고 진실이 드러나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라서 공소시효라는 벽에 바로 막히게 됩니다. 공소시효가 사회 정의에 반하고 국가폭력에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인데요, 참여정부 시절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범죄의 시효를 없애자고 밝혔고 관련 법안도 발의됐지만, 법적 안전성 논란 등으로 흐지부지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2012년에는 13세 미만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도 폐지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개정된 5·18 특별법에서는 최초 발포자 처벌 등을 위해 시효 정지 규정이 신설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국가폭력 사건에서도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Q. 국가배상 소송에서 정부 태도는?

[권지윤 기자 : 앞서 보신 대로 이번 정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빠른 권리구제입니다. 국가 책임을 뻔히 알면서도 소송을 끌면서 시효 완성을 주장한다거나 입증 책임이 원고, 그러니까 피해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항변을 하게 되면 이거는 2차 가해일 뿐입니다. 그러니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정부 답변이나 절차는 과감하게 줄이고 실질적인 배상 등 신속한 구제에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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