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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백신 접종 병원은 '예약 전쟁'…현장에서 요구하는 대안은?

[취재파일] 백신 접종 병원은 '예약 전쟁'…현장에서 요구하는 대안은?

'남는 백신' 예비 명단, 병원마다 운영 기준 제각각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작성 2021.05.03 09:07 수정 2021.05.04 14: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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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백신 접종 병원은 예약 전쟁…현장에서 요구하는 대안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는 병·의원 등 위탁의료기관들은 요즘 '예약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남는 백신'이 있냐는 전화 문의를 받느라 "환자를 진료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한 바이알(병)당 10명을 맞출 수 있는데, 질병청은 최소잔여형(LDS)주사기를 쓰면 최대 13명까지 접종하라는 지침을 위탁기관에 내려보냈습니다. 이 기준에 맞춰 접종을 해도 물량이 남거나, 사전 예약한 접종대상자들이 어떤 사정 때문에 맞지 못하게 돼 백신이 남을 경우 예비 명단을 운영합니다.

질병청이 지난주 이 예비 명단을 두고 사실상 자격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각 의료기관엔 전화 문의가 폭주했습니다. 귀한 백신을 버리는 것보단 접종을 원하는 누구라도 맞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따라서 예비 명단 운영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가 민간 위탁기관에 예약 및 접종자 관리 업무를 일임한 것도 혼선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취재를 통해 백신 접종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점을 정리하고, 의료진과 접종자들이 요구하는 대안을 제시해보겠습니다.

백신 1차 접종자에게 보내는 2차 접종 예약 문자 알림

왜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쓰시오(?)

백신 접종을 하는 서울의 A 의원. 지난주 목요일 오후 4시쯤 방문한 이곳엔 환자는 없고 대신 전화벨이 연신 울리고 있었습니다. '남는 백신을 맞을 수 있냐'는 문의 전화가 대부분이었고, 간호사 2명이 "로스분(남는 백신) 거의 없는데, 내일 오후 2시쯤 다시 전화해보세요"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예비 명단은 선착순으로 받으세요?"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전화로 목소리 들어보면 알아요. 정말 간절한 사람인지 아닌지. 아까도 운 좋은 분이 한 명 있었는데, 꼭 백신을 맞고 싶다는 거예요. 종교활동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본인이 왜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문서로 하나 써달라고.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도 서명 자료 같은 게 하나 있어야지."

그날 이 의원에는 한 명분의 남는 백신이 있었고, 그 백신은 수화기 너머로 '더 간절한' 사람에게 돌아간 셈입니다. 기자가 취재한 대다수의 위탁의료기관은 문의가 온 순서대로 선착순 등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A 의원의 사례가 일반적이진 않을 겁니다. 다만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발생하는 일임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직접 찾아가 본 또다른 의료기관 중에는 아예 "일반인(대기자) 예약을 잡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은 종합병원급 병원도 있었고,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등록은 해드리는데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병원이 연락을 해주는 곳도 있고, 이용자가 시간에 맞춰 다시 전화를 해야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제각각'입니다.

예비명단에 등록해 지난달 29일 AZ 백신을 접종한 30대 직장인

수십 곳 전화해 중복 등록…"시간 · 행정 낭비"

접종을 희망하는 '대기자'에게도 위탁기관들의 제각각 명단 운영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혼란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30대 직장인 B 씨는 지난주 목요일(4월 29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습니다. B 씨의 집은 서울 마포구, 백신을 맞은 곳은 경기도 고양시였습니다.

B 씨는 당일 마흔 곳이 넘는 위탁기관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예비 명단을 받지 않는다는 곳부터, 전화를 다시 하라는 곳, 이름을 남기면 전화를 해주겠다는 곳까지 다 달랐다고 합니다. B 씨는 결국 두 곳의 병원에 대기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후 4시쯤,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하루 빨리 없애고 싶어 백신을 맞았다는 B 씨. 접종을 받은 것 만족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점도 분명히 보았습니다.
 
"병원마다 다르니까 제가 다 전화를 해봐야잖아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요. 그리고 지금 시스템상으론 한 사람이 여러 병원에 중복 등록할 수 있어요. 병원들은 그걸 모르니 다 각각 연락할 텐데… 시간 낭비, 행정 낭비 같아요."

"예비 명단도 중앙집약적 시스템 필요"

이외에도 기준 없는 예비명단 운영이 혹여나 백신 부정 접종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취재 과정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나 친인척을 먼저 접종 시킬 수도 있지 않냐는 우려였습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선 위탁의료기관과 접종자들의 의견이 비슷했습니다. 병원이 각각 예약을 받는 시스템 대신 중앙집약적 대기자 예약 시스템이 필요하단 겁니다.

경기도 한 위탁의료기관의 C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컨펌 예약(접종 대상자)과 웨이팅 예약(대기자)을 따로 구분해서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우선 접종 대상자들이 질병청 누리집을 통해 예약하면 그 명단이 각 의료기관에 전달되는 것처럼, 대기자 명단도 그렇게 운영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용자의 의견도 비슷합니다. 남는 백신을 접종한 직장인 B 씨도 "예비 명단 등록 위한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다. '남는 물량 있으면 맞겠다'라고 의사 표시를 해놓고, 지역과 신상 정보 남겨 놓으면 순차적으로 연락 오는 시스템" 제안했습니다.

미국 백신파인더 사이트

미국의 '백신파인더' 처럼…질병청 "백신 접종 가능 장소 등 구체 정보 제공 어렵다"

일각에서는 각 기관이 남는 백신 물량을 통합시스템에 등록하면 실시간으로 이용자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현재 미국의 백신추적사이트 '백신파인더'가 비슷한 모델입니다. 백신파인더 사이트에 접속해 원하는 백신 종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한 원하는 거리 등을 입력하면 접종 가능 장소, 백신 재고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줍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이런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위탁의료기관 현장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65세 이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사전예약부터는 질병청 1339 콜센터에서 예약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접종 대상자가 아닌 예비 명단 '대기자'를 위해 실시간 백신 접종 가능 장소, 재고 여부 등의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이 관계자는 "접종 대상자보다 대기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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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재파일이 출고된 이후, 질병관리청은 브리핑(3일 오후)을 통해 '남는 백신' 접종을 위한 스마트폰 앱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오는 27일부터 65세 이상 고령층 접종이 위탁의료기관에서 진행되는데 그 시기에 맞춰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앱이 개통되면 위탁의료기관에 일일이 전화하거나 방문해 예비 명단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앱을 통해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면 인근 병원에서 잔여 백신이 발생할 경우 이용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김기남 접종관리반장은 "일괄적으로 남는 백신을 활용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백신 폐기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개발 및 상용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정부가 이런 대안을 내놓은 건 반가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방역당국이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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