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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육군 새 군가와 새 소통 채널…밑천 드러낸 지휘부 수준

[취재파일] 육군 새 군가와 새 소통 채널…밑천 드러낸 지휘부 수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21.05.03 11:32 수정 2021.05.04 16: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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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요즘 죽을 맛입니다. 22사단 헤엄 귀순으로 혼쭐났고,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각급 부대에서 방역 인권 침해 사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축구하다 간부가 병사에게 골절상 입히고 사고를 무마하려는 시도도 들통났습니다.

이 와중에 육군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들이 또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새 군가 '육군, We 육군'을 내놨는데 반응이 최악입니다. 그럼에도 육군 지휘부는 장병들에게 새 군가를 '기도문'처럼 암기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병사들이 부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신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개설한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가 인기를 끌자 육군은 맞불 놓듯 '육군이 소통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병사들이 육군 못 믿어서 스스로 '대신 소식 전해주는' 페이지를 열었고, 그래서 활성화된 것입니다. 병사들이 신뢰 안 가는 육군의 공식 페이스북에 노크할 리 만무합니다.

육군 지휘부의 생각이 많이 짧은 것 같습니다. 병사들과 살 부대끼며 생활할 테니 병사들의 고충과 생각을 알 만도 한데, 하는 일들이 참 딱합니다. 

남영신 참모총장과 육군 지휘부

새 군가, 기도문처럼 암기하라

육군은 지난달 22일 야심차게 새 군가 '육군, We 육군'을 공개했습니다. "독립군 정신을 계승한 육군의 강인한 기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과학기술 발전에 맞춰 창출하는 미래 전력을 표현한 곡"이라고 합니다. "독립군의 후예답게 이 강산을 내가 지킨다"는 가사와 "워리어 플랫폼 최강의 전사, AI 드론봇 전우와 함께"라는 후렴구를 일컫는 것입니다.

군가는 무릇 장병들이 부르면서 자긍심을 느끼거나 신명이 나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닙니다. 독립군,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품이 정부 심기를 살핀 것 같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반응은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육군은 중독성 있는 군가라고 주장하는데 "중독성은 없고 독성만 있다", "이거 부르면 있던 애국심도 사라질 듯", "워리어 플랫폼부터 진짜 극한의 웃음벨이네", "이거 만들 돈으로 병사들이나 잘 먹여라" 등등.

육군 새 군가 유튜브 영상과 댓글들
새 군가 발표하는 날, 육군 최고 지휘부 회의가 열렸습니다. "새 군가를 기도문처럼 가창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주간회의, 의식행사, 각종 부대 활동, 교육 간에 틈나는 대로 제창하고, 응원가로도 활용하라는 상세한 지침도 뒤따랐습니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현장 지도 시 부대의 가창 능력을 직접 확인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장 가면 부하, 병사들 다독여야지 새 군가 암기를 점검하겠다니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육군 지휘부가 군가의 의미를 전혀 모른다는 방증입니다. 입에 맞고 흥겹고 가슴 묵직하게 하는 노래입니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청년들도 살짝살짝 변주하며 재밌게 부를 수 있고, 전역하고 중년, 노년이 돼도 술 한잔 들어가면 입에서 맴도는 그런 노래입니다. 군가는 군의 문화입니다. 육군 지휘부는 군의 문화가 한줌 고위 장성들의 욕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그런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육군 소통 페이스북은 소통할 수 있을까

육군이 어제 개설한 '육군이 소통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은 어제(2일) 병사들과 소통하겠다며 '육군이 소통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취지는 "장병들의 기본권이 보장되며 국민들이 신뢰하는 육군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것", "육군 공식 페이스북과 별개로 운영되며 보도자료, 팩트체크, 공식입장 등을 유통시킬 것"입니다. 취지부터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향입니다. 현재까지 육군의 보도자료, 입장자료, 사과문만 잔뜩 올라 있습니다.

소통이라고 하면 상대 말도 듣고 내 말도 하는 것입니다. 병사들한테 육군 소통 페이지에 와서 제보하라고 해도, 모르긴 해도 안 할 것입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자생적 인기 채널이 있는데 왜 굳이 군 보급 페이스북을 쓰겠습니까. 새 군가 못지않은 답답한 발상입니다.

병사들은 지휘관 명령에 지금 당장이라도 사지로 뛰어들어야 하는 애틋한 청춘들입니다. 그래서 지휘관에게 병사는 내 몸, 내 영혼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아끼고 보살피면 병사들은 전사가 됩니다. 공감 제로의 페이스북과 군가 만든들 병사들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쉽고도 어려운 참 지휘관의 길

홍철호 전 국회의원이 어느 국감 때 소개한 군 생활 에피소드입니다. 훈련 나가서 야간 경계 서는데 연대장이 막사로 복귀하길래 자기도 모르게 "편히 주무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연대장이 가던 길 멈추고 다가와 명찰을 보더니 "연대장은 홍철호 해병 믿고 편히 자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연대장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홍 해병 군 생활의 큰 자산이 됐습니다. 유사시 연대장이 명령했다면 홍철호 해병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돌격했을 것입니다.

그 연대장은 고(故) 박구일 해병대 17대 사령관입니다. 부마항쟁 당시 7연대장으로 연대 병력 이끌고 부산에 투입됐습니다. 비록 항명이지만 감히 절대존엄 국민을 상하게 할 수 없으니 실탄은 아예 포항에 두고 갔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시민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고 명령했습니다.

박구일 사령관 같은 별은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장군 인사 언제 어떻게 하는지 기웃거리지 말고, 부부동반 단체 골프 치지 말고, 출신 따져 줄 세우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윗선 보여주기식 군가나 페이스북 만들지 말고, 부하한테 책임 떠넘기지 말고… 대신 그 시간에 병사들 먹고 자고 쉬는 데 불편함 없는지 진심으로 살피고, 병사들 이름 따뜻하게 불러주면 좋은 지휘관 됩니다. 좋은 병사는 좋은 지휘관 아래서 나옵니다. 
 

▶ 육군 새 군가 '육군, We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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