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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애인 형제의 악몽 같던 2년…학대는 지옥이었다

[취재파일] 장애인 형제의 악몽 같던 2년…학대는 지옥이었다

전남 장애인 형제의 학대 탈출기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21.05.02 09: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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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형제가 말라가고 있다"

시작은 한 통의 제보였다. 지난해 7월,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장애인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오래전부터 지역에 살던 지적장애인 형제가 어느 날인가부터 살이 쪽 빠진 채 허름한 차림으로 동네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일터에도 어느 순간부터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두 형제 모두 지적 장애가 있고 아버지도 장애를 앓고 있지만 평소 성실하고, 형제끼리 우애도 좋기로 소문난 이들이었다.

신고를 접수한 기관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신고만으로도 학대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사례였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늘 일정했던 생활태도나 겉모습이 어느 순간 갑자기 달라진다면, 학대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이기림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피해자를 찾기 위해 차로 1시간 여 떨어진 신고 지역으로 향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지적장애인들이 주로 머물만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공원이나 광장처럼,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돌았다.

"저기, 저분 아니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이 팀장의 눈에 주차장 같은 곳에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한 남성이 들어왔다. 지적장애인 명호 씨(가명)였다. 말투나 인상착의가 신고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마치 아이와 놀아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명호 씨가 쩔쩔매며 아이를 보고 있었다. 돌본다기보다 마치 아이를 시중드는 것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이 팀장과 직원들은 조심스레 다가갔다. 처음에는 길을 물어보고 "경치가 좋은데 설명 좀 해주세요." 하는 식으로 말을 건네며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대가 의심되는 지적장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벽을 허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남도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명호 씨 형제와 친밀감을 쌓기 위해 이 팀장은 여러 번 형제가 사는 동네로 차를 몰았다. 자주 마주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다.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이 팀장은 처음 하려던 말을 꺼냈다. "저희는 장애인 학대를 조사하는 기관이고 제가 두 분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순간 명호 씨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예상대로였다.
 
"저 그런 사람(가해자) 모릅니다. 저 아주 잘 살고 있고요 문제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학대 피해자들은 지속되는 학대로 인해 심리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이 팀장은 설명했다. '나는 안 될 거야. 아무리 내가 피해사실을 호소해도 이건 해결되지 않을 문제야.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해.'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명호 씨와 동생 명수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경치 좋은 곳도 함께 다니면서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어려운 건 가해자 몰래 형제를 만나는 일이었다. 당시 피해자인 명호 씨와 동생 명수 씨는 마치 출근하듯 아침 일찍 가해자 집으로 가 아이를 보거나 심부름을 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혹시나 가해자의 눈에 띄지 않게 명호 씨 형제를 만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오랜 노력으로 명호, 명수 씨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는 게 느껴졌다. 굳게 닫혔던 형제의 입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털어놓은 학대는 충격적이었다.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학대와 착취가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폭행 같은 신체적 학대는 물론이고 심각한 정서적 학대와 경제적 착취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은 행동과 언행들도 있었다.
 

웃으며 다가온 '고향 선배', 가해자로 돌변

명호 씨 형제가 가해자 백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좋은 형'이었다. 같은 지역,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네 선배'로서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다가왔다. 밥도 사주고 집에도 데려가고 부인, 아이들과 가족 여행도 함께 가자고 했다. 형제도 처음에는 좋았다. 좋은 이웃, 든든한 형이 생긴 느낌이었다.

꾸며진 호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형제를 데리고 함께 갔던 가족여행에서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고 겁을 주기 시작했다. 너희가 먹고 자는 데 들어간 돈이라며 2백만 원을 내라고 강요했다. 어쩔 줄 몰라하던 명호 씨 형제는 결국 통장을 넘겼다. 형제 앞으로 나오던 사회보장급여와 장애인 연금이 백 씨 주머니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폭행도 시작됐다. 처음에는 손과 발이 날아왔다. 팔, 다리, 얼굴, 가슴 가리지 않았다. 폭력의 수위는 점점 더해갔고 급기야 도구까지 쓰였다. 효자손으로 머리를 때리는 건 약과였다. 벽돌로 위협하고 살충제를 얼굴에 뿌리는가 하면 벽 앞에 세워놓고 "손으로 잡아보라"며 칼을 던지는 일까지 있었다. 형제에게는 맞는 일이 가장 무섭고 괴로운 일이었다. 지옥 같은 고통과 두려움이 날마다 형제를 덮쳤다.

백 씨는 그렇게 형제를 지배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가스라이팅'이 지속적으로 가해졌다.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거나 욕설을 하는 건 물론 아침마다 자신의 집으로 형제를 불렀다. 처음에는 밥을 주다가 나중에는 도시락을 싸오라고 한 뒤 마당에서 먹게 했다. 집에선 화장실도 함부로 못 쓰게 했다.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였다. 형제가 참여하던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나가지 못하게 한 뒤 본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에 보내 일용직 노동을 시키고 돈은 본인이 챙겼다. 나중에는 두 형제의 장애인 등록도 취소하게 했다. 오로지 자신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다.

장애인 학대방송
언제부턴가는 본인이 시작한 인터넷방송에 형제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지역 홍보대사, 블로거를 자처하면서 만든 인터넷방송과 유튜브 계정에 형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내보냈다. 명호 씨를 말처럼 엎드리게 한 뒤 올라타는가 하면 머리를 때리고, 본인은 물론 명호, 명수 씨의 얼굴에 비닐랩을 칭칭 감는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몰카를 찍는다며 큰 비닐을 뒤집어씌운 뒤 한참을 거리에 앉아있게 한 뒤 그 모습을 찍어 올렸다. 인터넷방송과 유튜브 계정은 조회수가 올라가면 수익이 발생하도록 설정해놓았다. 형제를 방송의 도구로 이용한 셈이다.

장애인 학대방송

학대 판정 후 시작된 경찰 조사…이어진 보복 협박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한 달에 걸친 조사 끝에 '학대'로 판단을 굳힌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지난해 9월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그때부터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장애인 학대 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많지 않고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명호 씨 형제의 사례도 그랬다. 인터넷방송 영상 등을 제외하면, 폭행이나 학대에 대한 증거는 많지 않았다.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을 입증하기 위해 현장과 경찰서, 심리연구소 등을 수차례 오가며 조사가 진행되는 지난한 과정이 반복됐다. 조사마다 이기림 팀장과 김진영 상담가 등 전남장애인권익옹호 기관 직원들이 동행했다.

명호 씨 형제가 서너 차례 경찰 조사를 받고 난 지난해 11월, 가해자 백 씨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처음 발부됐다. 전남지방경찰청 형사들이 백 씨의 집을 샅샅이 훑었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대담하게도 압수수색 당일 저녁, 백 씨가 오 씨 형제를 만나기 위해 장애인복지관 근처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회유 또는 협박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명호 씨 형제의 불안감도 극에 달했다. 그 다음날 새벽, 명호 씨가 불안감을 호소하며 이 팀장을 비롯한 기관 직원들을 찾아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사건이 일어났다. 직원들은 혹시 몰라 CCTV를 명호 씨 형제 집에 달았다. 활동비가 부족해 사비를 들여 구입한 CCTV를, 인터넷으로 방법을 찾아가며 직접 설치했다. 조를 짜서 순찰도 돌았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백 씨에게는 "수사 기관에서 소명하시라"며 명호 씨 형제에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수사는 점점 속도가 붙었다. 피해자 조사가 이어졌고 참고인 조사도 여러 차례 이뤄졌다. 백 씨가 명호 씨 형제의 장애 급여 등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형제와, 형제의 아버지 명의까지 동원해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팔아치워 1천7백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수사망이 점점 더 조여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한동안 위축되어 있던 가해자 백 씨의 행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올해 1월 중순, 경찰에 '보복범죄(협박) 발생에 따른 긴급 수사보고'가 접수됐다.

결정적으로 명호 씨가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다 거짓말이었으니 수사를 멈춰달라"며 처벌불원 의사를 전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겁을 잔뜩 먹은 명호 씨 형제는 경찰이나 기관 직원들의 연락도 받지 않고 숨어 버렸다. 장애인 옹호기관 직원들의 입장에선 그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마침 설 명절 연휴였다. 이기림 팀장은 시댁에서 전을 부치다 말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여러 차례 탐문 끝에 다시 명호 씨 형제를 만나 설득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지만, "절대 당신들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며 공을 들였다. 주저하던 형제가 조금씩 입을 열었다.
 
"너무 무서워요"

명호, 명수 씨 형제의 첫마디였다. 얼마 전 갑자기 찾아온 백 씨가 명호 씨 형제에게 "너희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고 병원을 다니고 있다, 진단서를 다 끊어놓았고 너희가 잘못한 걸 다 SNS에 올리겠다"며 협박을 한 것이었다. 백 씨가 명호 씨 형제를 만나는 걸 목격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까지 더 해 보복협박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뤄졌다. 명호 씨 형제에 대한 신변보호가 신청됐고 스마트워치가 지급됐다.

결국 지난 3월, 백 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은 지난달 8일, 구속된 백 씨를 공동폭행과 준사기,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명호 씨 형제와 형제를 돕던 이들은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2018년 여름부터 이어진 지독하고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 눈에 (가해자가) 아예 안 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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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김진영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 명호 씨를 만났다. 취재 과정에서 사건 내용으로만 접하다 처음 본 명호 씨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았다. 아직 트라우마가 있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면 어쩌나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명호 씨는 차분했고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말귀도 밝았고 대답도 잘했다.

명호 씨는 과거 학대 상황을 묻는 질문에 덤덤하게 답했다. 때리는 게 가장 싫었고 가해자의 폭력이 두려워 억지로 인터넷방송을 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때 영상을 보면 지금도 기분이 좋지 않고, 다 지워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명호 씨는 학대 상황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게 된 데는, 명호 씨의 비상한 기억력이 한몫했다고 옆에 있던 김진영 상담가가 거들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명호 씨는 8번, 동생 명수 씨는 5번 진술을 했다. 보통 지적 장애인의 경우 이 과정에서 기억을 제대로 못하거나 심리적 고통, 피로 등의 이유로 진술의 일관성이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명호 씨는 꿋꿋이 조사에 임했다고 했다.

명호 씨 형제는 이제 큰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임하기 전 명호 씨는 새로 나가게 된 장애인 일자리에서 오전 근무를 마친 참이었다. 새로운 일자리에선 다들 잘 해주고, 사람들도 괜찮다고 말했다. 일을 마치면 바람을 쐬거나 집에서 쉬면서 휴대폰 게임을 한다고 했다. 명수 씨는 집에서 쉬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명호 씨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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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씨 : "내가 바라는 건, (가해자가) 내 눈에 아예 안 보이게..."
기자 : "왜요?"
명호 씨 : "또 마주치면 그 사건들이... 또 제가 폭행당할까 봐"

명호 씨의 말은 대부분 단답형이었다. 명확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오랜 기간 그들 형제에게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을 지원해 온 이기림 팀장은 "피해가 1년 넘게 장기적으로 지속됐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고 상당 기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제는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이자 위안이라고 했다. 명호 씨는 인터뷰 내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지난 조사 과정에서 명호 씨 형제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어려울 때 밤이든 낮이든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했다. 가해자가 보복 협박을 시도할 무렵엔 새벽에 불쑥 전화를 걸어 불안을 호소할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일은 거의 없어졌다. 형제는 이제 도와줄 사람과 기댈 곳이 생겼다.

인터뷰를 위래 취재진과 명호 씨는 손님이 꽤 많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명호 씨는 그곳에 있던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명호 씨의 말은 단답형이었지만 묻는 바를 정확히 이해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분명했다. 명호 씨는 좋아하는 것도 분명하고 싫어하는 것도 확실한, 기자와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남들에게 피해를 입으면 입었지 피해를 주지는 않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명호 씨와, 또 명수 씨에게 지난 2년 남짓한 시간은 얼마나 악몽 같은 시간들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인터뷰 말미에 명호 씨는 기자에게 언제 방송이 나가는지 물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방송이 나가고 난 뒤에도 방송국에 가면 가수를 볼 수 있는지, 어떤 가수가 오는지, 또 한 번 뉴스에 나올 순 없는지 문자를 보내왔다. "이제 그런 일로 방송할 일 없어야죠^^"라고 쓴 답장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장애인 119'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인력도, 예산도 '열정페이'

명호 씨 형제가 지독한 학대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학대를 의심한 신고자들과 구조에 나선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직원들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특히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직원들은 밤낮도, 명절 연휴도 없이 지원에 매달렸다. 때로는 잠을 자다가도, 설 명절 시댁에서 전을 부치다가도, 전화기를 붙잡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해자의 보복 징후가 감지됐을 때는 사비를 들여 CCTV를 설치하고 조를 짜 순찰을 돌기도 했다. 추가적인 보상이나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오로지 피해자를 위해 한 일이었다.

이러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전남뿐 아니라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에 분포돼 있다. 2015년 6월,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설치 근거가 마련되면서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서울에 처음 문을 열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비영리법인과 공공기관에 위탁 운영하는 구조다. 문제는 지원이다. 사실상 장애인 학대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여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전국 17개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 70여 명이 지난 2019년 상담 또는 지원한 학대 의심사례는 모두 24,785회에 달한다. 직원 1명당 약 340여 건의 사례를 처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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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보니 현장은 고질적인 인력 부족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기관별로 평균 4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조사는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1명당 수십, 수백 건의 사건을 처리하다 보니 1명이 하루에도 최소 서너 군데의 현장을 돌아야 한다. 위험한 상황도 종종 생긴다. 발달장애인 또는 학대 행위자가 거칠게 달려드는 경우다. 과로와 격무에 시달린 직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사실상 직원 개개인의 사명감에 기대 '열정페이'를 강요해야 하는 구조다.

예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라에서 지원되는 예산은 전체 17개 기관을 모두 합쳐 올해 49억 원 정도다. 캠페인 사업 등 이런저런 비용을 빼고 나면 각 기관에 돌아가는 돈은 기관당 2억 원 남짓, 인건비만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수준이다. 명호 씨 형제를 담당했던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경우 인건비를 제외한 1년 사업비는 300만 원이었다. 직원들이 CCTV를 직접 사서 달아야만 했던 이유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가 약 20억 원을 증액하는 예안을 올려 보냈지만 정부 검토 과정에서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명호 씨 형제의 사례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가해자는 처벌됐고 피해자는 학대에서 벗어나는 결말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며 관심을 갖지만, 근본적인 해결과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2019년 전국 장애인 학대 신고 건수는 4,376건,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제대로 조사도 못 하고 종결된다. 현장의 전문가들은 사회 전체의 무관심을 한 이유로 꼽는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말이다.
 
"다른 학대와 다르게 장애인 학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은 우리 사회를 책임져 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은 늘 보호받고 어딘가 갇혀있어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해요."

한 사회의 수준은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장애인 학대에 언제나 관심을 가질 순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학대를 예방하고 줄여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게 먼저다. 명호 씨 형제를 지옥 같은 학대에서 구원한 건 결국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만들고, 지원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지금도 누군가는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지옥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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