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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윤석열의 변호인들'이 대형 로펌을 떠난 이유는?

"내 변호를 맡아주면 좋겠다. 그러면 어떤 결론이 나와도 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연말, 직무배제 조치와 징계 사태를 겪으며 변호인들에게 건넨 말이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지난해 11월 24일 윤 전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했고, 같은 해 12월 16일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윤 전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내렸다. 당시 대형 로펌 소속 일부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윤 전 총장을 변호하겠다고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막상 눈에 띄게 전면에 나선 변호인들은 없었다. 윤 전 총장의 싸움이 무모하다는 관전평이 많았다. 당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옷을 벗으라는 메시지이다. 결론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왼쪽부터 손경식 · 이석웅 · 이완규 변호사

직무배제와 징계, 그때의 윤석열 변호인들

그때 윤 전 총장이 손을 뻗은 세 사람이 이석웅(사법연수원 14기), 이완규(23기), 손경식(24기) 변호사였다. 이석웅 변호사는 윤 전 총장의 고등학교 선배이고, 이완규 변호사는 윤 전 총장 대학 동기, 손 변호사는 윤 전 총장과 오래 알고 지내는 등 모두 윤 전 총장과 신뢰가 다져진 사이이다. 이완규 변호사는 당시 "추 전 장관의 직무배제 조치는 위법 부당하다. 나라도 석열이를 도와야겠다"라며 주변에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이 이들과의 인연만으로 변호를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이완규 변호사의 경우 ' 검찰청법 전문가'이다. 이완규 변호사는 소송에서 법리 구성에 주력하는 역할을 맡았고 손경식 변호사도 이완규 변호사를 도와 실무 등을 담당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윤 전 총장 측이 제기한 쟁송이 '무모한 싸움이다'라는 게 법조계의 관전평이었다. 따가운 시선 속에 윤 전 총장은 직무배제 효력을 잠시 멈춰달라고 집행정지를 신청하며 반격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가 난 정직 2개월 처분에 대해서도 집행정지를 신청하며 굽히지 않았다. 법원은 두 차례 집행정지 신청 모두 윤 전 총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추 전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라며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라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본안 소송은 판가름 나지 않았지만, 윤 전 총장 측의 판정승이었다.

판정승 이후 "극성 지지층의 전화와 문자 폭탄"

세 명의 변호인들은 이후 극성 지지층의 전화‧문자에 시달려 왔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발신자 번호 제한으로 밤낮없이 전화를 걸어오는가 하면, 욕설 등이 담긴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등 윤 전 총장 변호 행위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협박성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받은 변호사도 있었다. 변호인들의 다른 업무를 비롯해 다른 구성원들의 업무까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변호인들은 지지 세력의 우발적인 행위로 추정하고 있을 뿐 법적 대응으로까지 확전 할 의사는 없는 상태이다. 윤 전 총장의 한 변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시절 당시) 태극기 부대의 항의를 받을 때를 떠올려 보면, 사무실 앞에 찾아와서 항의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문파들의 경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요하게 공격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로펌 내부서도 곱지 않은 시선"

밖에서 시달리니 안에서라도 지원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변호인들은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이들 변호인들이 더욱 괴로워했던 것은 우선 이러한 피해가 소속 로펌 동료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점이었다. 같은 로펌에 있던 일부 변호사들은 이석웅, 이완규, 손경식 변호사가 윤 전 총장을 변호하는 데 부담을 느꼈고, 윤 전 총장 변호 활동에 대해 반대 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고 한다. 법률가로서의 변호 행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 정권과 각을 세우는 등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윤 전 총장 변호인은 동료 변호사로부터 '우리 로펌에서 적을 옮겨 달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같은 로펌이라고 해서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으니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맞다. 윤 전 총장 변호에 반대 의사를 내비친 한 변호사는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사법 농단을 수사할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근으로 있었는데, 윤 전 총장과 당시 법원을 향한 검찰 수사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감도 전혀 무관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정이 있다.

결국 윤 전 총장의 일부 변호인은 "동료 변호사들에게 '당장 로펌을 떠날 수는 없으니 변호 활동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라고 양해를 구하며 로펌을 미리 탈퇴하고 일을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윤 전 총장 징계 국면으로부터 5개월가량이 지나 실제로 손경식 변호사는 법무법인 정행을 떠났다. 손 변호사는 어제(지난달 30일) 인근에 4~5명이 일할 수 있는 조그마한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등기 절차까지 마쳤다. 이완규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을 떠나 개인적으로 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변호사의 경우 윤 전 총장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소속 법무법인과 갈등을 빚었다는 이유로 떠났다기보다 수개월 전부터 연구소 운영 계획을 구상해 왔다.

로펌 내부에서는 한 때 윤 전 총장에 대한 변호 활동을 놓고 동료 변호사들끼리 서로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변호사들이 탈퇴를 결정한 이후로는 서로의 길을 응원하겠다며 갈등을 매듭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펌 떠나는 변호인들 尹 법률지원단 구성?…"확대 해석" 선 긋기

이완규 변호사와 손경식 변호사가 소속 로펌을 떠나자 법조계에서는 이들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법률 자문 기구나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을 구성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윤 전 총장의 변호인들 설명을 들어보면 "확대 해석"이라는 반응이다. "윤 전 총장이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상태이다. 일부 언론과 호사가들이 몰아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전직 관료에 불과하다"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이완규 변호사가 운영하는 법연구소는 변호사 활동 당시 소속 법무법인과는 별개로 갖고 있던 것이다. 다만, 법무법인을 탈퇴하다 보니 형사사법 전문가로서 해당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 건도 있어 운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한다. 손경식 변호사의 경우도 윤 전 총장을 변호하면서 이미 소속돼 있던 로펌을 나가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손 변호사의 법률사무소나 이 변호사의 법연구소는 종국적으로는 어떻게든 윤 전 총장에 대한 법률 자문 기구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꼭 법률지원단이 아니더라도 모종의 역할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완규 변호사와 손경식 변호사는 현재 사무실을 별도로 쓰고 있지만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될 거란 전망도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정치검찰화 우려…검찰의 복잡한 속내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사퇴한 이후 정치권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도 스스럼없이 지인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최근 공개 행보에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언가에 대한 고심의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전 총장과 친분이 있는 한 인사는 "5월 18일이 윤 전 총장의 행보를 가늠해볼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윤 전 총장이 대권 행보를 고심하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5.18을 건너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을 바라보는 검찰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치검찰화에 대한 외부의 비판이자 우려 때문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안 하면 역대 검찰총장 중 가장 명예로운 분이 될 텐데…"라며 말을 흐리기도 했다. 후배 검사로서의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물론 "(윤 전 총장은) 전직 공무원이자, 아저씨"라는 반응도 많다. 떠나보낸 사람이니 검찰은 검찰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의미이다. 윤 전 총장이 전직 검찰총장으로서의 명예를 지킬지, 이전투구의 정치권에 뛰어들지는 윤 전 총장 선택에 달렸다.

다만, 윤 전 총장은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검찰 조직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는 방안을 놓고 측근들과 매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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