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스 가족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고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콜린스는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서 암으로 숨졌습니다.
콜린스는 1969년 7월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인류의 과학기술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아폴로 11호에는 당시 선장 닐 암스트롱과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 사령선 조종사 콜린스가 탑승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동갑내기였습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착륙선을 타고 월면에 첫발을 내디뎠고, 콜린스는 사령선 조종사로서 달 궤도를 선회하며 이들의 달 착륙 임무를 도왔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콜린스는 21시간 넘게 사령선에 홀로 머물렀다"고 전했습니다.
콜린스는 역사적인 아폴로 11호 임무에 동참했지만, 달 표면에 내린 암스트롱과 올드린보다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에겐 '잊힌 우주비행사', '기억하지 않는 세 번째 우주인'이라는 수식어가 달리곤 했습니다.
동료들이 달에 내려 성조기를 꽂는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관측한 사람이었습니다.
궤도 비행을 하던 사령선이 달의 뒷면으로 들어갔을 때 지구와의 교신은 끊겼고, 콜린스는 48분간 절대 고독의 상태에서 달의 뒷면을 지켜봤습니다.
콜린스는 "이곳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나 뿐이다. 온전히 홀로 있는 이 순간이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다"는 메모를 남겼고, 아폴로 11호 임무 일지는 "아담 이래로 누구도 콜린스가 겪었던 고독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됐습니다.
그는 2019년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국가적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의 업적은 화려한 재조명을 받았습니다.
콜린스는 유명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존 J. 퍼싱 장군의 부관을 지낸 제임스 로턴 콜린스 육군 소장이고, 삼촌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조지프 로턴 콜린스 장군입니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나왔고, 공군 파일럿을 거쳐 1963년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로 복무했습니다.
달 탐사를 위한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제미니 10호 조종을 맡아 도킹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우주 비행은 역사적인 아폴로 11호 탑승이었습니다.
콜린스는 아폴로 11호 임무를 마친 뒤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와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장을 지냈습니다.
생전 아폴로 11호 임무에서 가장 강력했던 기억으로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봤던 것을 꼽았습니다.
그는 지구가 "부서지기 쉬운 것 같았다"면서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지구에서) 10만 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의 행성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 모든 중요한 국경은 보이지 않을 것이고 시끄러운 논쟁도 조용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가서 보고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며 "(우주) 탐사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애도 성명을 내고 "많은 사람이 콜린스에 대해 홀로 달 궤도를 선회한 우주비행사로 기억한다"며 "그는 (생전에) 동등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위대한 목표를 위한 협력의 중요성을 미국에 일깨워줬다"고 말했습니다.
암스트롱에 이어 콜린스도 눈을 감으면서 아폴로 11호 3인방 중 생존해있는 사람은 올드린 1명뿐입니다.
암스트롱은 2012년 8월 심장 수술 이후 합병증으로 숨졌습니다.
올드린은 트위터에 콜린스를 추모하는 글을 올려 "당신이 어디에 있었든, 어디에 있든 당신은 우리를 미래로 안내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NASA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