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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학의 사건 ① '김학의 사건'은 어떻게 지금까지 왔나

동영상과 공수처, 여론과 정치성

동영상 때문에 시작된 사건이었다. 고위 공직에 있는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하려는 듯한 영상. 시각적 파괴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 중년 남성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검찰은 그 남성을 '김학의'라고 호명하지도 않았다. '불상의 남성'으로 지칭한 무혐의 종결.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까지 나타났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누가 봐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보였다.

그래서였다. 검찰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 대상에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하 김학의 사건)이 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임에도 무혐의 처분한 검찰', '여성을 성적 도구화 해 착취한 고위 공직자'. 우리 사회의 적폐가 이번에야 말로 청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민들은 기대했다. 늦었지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랐다.
 

대중의 시각과 충돌하는 불편한 진실

재조사의 결론은 너무 뻔해 보였다. 하지만 현장 취재기자들은 사건을 알아갈수록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는 일이 잦았다. 대중의 지배적 시각과 충돌하는 사실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인데 무혐의 종결했다'는 비판은 잘못된 과녁을 향한 분노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의욕적으로 수사했던 경찰 역시, 동영상과 직결되는 범죄 혐의는 찾지 못했음을 뒤늦게 파악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유는 '동영상 속 남성'이 아닌 '동영상 속 여성'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참고>
[취재파일] 김학의 前 차관 성접대 의혹과 동영상, 그리고 정확한 분노
[취재파일] 김학의 · 장자연-대중이 원하는 것과 대중을 위하는 것

그러나 취재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론에 순응하기는 쉽지만, 여론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혐의 직결 여부와 별개로 영상 내용만으로도 부적절한 것이 명백한 김학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대다수 언론은 편한 길을 택했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임에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을 부각했고, 동영상 고화질본을 확보했다며 뉴스에 방영한 언론도 있었다.
 

피해 여성 진술에 대한 의문, 그리고 여론

다만, 동영상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은 사건의 본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김학의 사건'에 국민들이 공분한 건, 동영상의 파괴력이 결정적이었지만, 처벌받지 않은 권력자의 '성착취', 나아가 '성폭력'이 근원에 있었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접하게 되는 정보들은 사건의 본질적 개념 규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성매매를 암시하는 듯한 피해 여성들의 통화 녹취의 존재, 치정에 따른 금전 문제가 성폭력 및 간통 혐의 고소로 비화된 초기 사건화 과정, 다른 성폭력 피해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피해 여성들의 행적. 이런 정보들은 김학의 사건을 '일방적 가해자로서의 남성 권력자 대 일방적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세간의 시선대로 규정해도 될지 고민스럽게 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습과 다르다'는 판단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폭력적 시각은 아닐지 조심스러웠다. 부부 간 성폭력이 인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는 사건을 성매매 혹은 성접대 사건으로 규정하더라도 특정 시점에서 발생한 특정 사안은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완전히 억압되고 종속된 상태에서 성적 노예화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현장 취재기자들은 서로 생각을 공유하면 토의하기도 했고,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 판결문을 수차례 다시 읽으며 자신의 시각을 점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학의 사건은 다른 성폭력 사건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간간이 피해 여성 진술의 한계 내지 문제점을 짚는 기사들이 나왔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 권력자를 단죄해야 한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정의로운 구호 속에 합리적 의문 제기가 설 공간은 협소했다. 가해자에 대한 옹호로 쉽게 치부되기도 했다.

김학의 보고서 공개

최종 보고서에 담긴 조사단의 고민, 하지만…

SBS가 최근 입수한 대검 진상조사단의 최종 보고서에는 '김학의 사건'을 바라보는 고민이 녹아 있다. 피해 여성의 진술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해당 사건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1천200여 페이지 분량의 최종 보고서의 절반이 훌쩍 넘는다. 조사의 엄밀성과 객관성 면에서 여러 차례 의문이 제기됐던 조사단이었지만, '김학의 사건'에 대한 조사 단원들의 고민만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 논쟁이 이뤄졌다면, 우리 사회를 좀 더 성숙시킬 수도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영상이 촉발한 사건, 즉 성폭력 사건이 주된 쟁점이었지만, 2019년 3월 25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차관의 뇌물 혐의, 그리고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권고했다. 사건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성폭력 부분에 대한 판단은 없었다. 조사 실무를 담당한 대검 진상조사단은 윤중천과 한 때 윤중천의 내연녀로 알려졌던 여성에 대한 '무고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권고 의견을 냈지만,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과거사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에 제기된 의문과 추정

과거사위 발표에 대해 법조계에선 몇 가지 의문과 몇 가지 추정이 제기됐다. 과거사위 발표는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개 지시 이후 일주일 만이었다. '명운을 건 수사'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 터 잡고 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는데, '피해 여성의 무고 혐의' 수사 권고는 '제 식구 감싸기'와 상충할 수 있었다. 성폭력 혐의에 대한 과거 검찰의 무혐의 처리는 정당했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어, 재조사의 명분 자체가 흔들려 버릴 수도 있었다. 때문에 과거사위가 사건을 정치적으로 판단해 성폭력 관련 부분이 아닌 다른 사안만 수사 권고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직권남용 혐의 수사 권고 대상자의 범위는 이런 정치성 의심을 증폭시켰다. 법조계에서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검증을 담당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수사 권고 당시 민주당 의원)이 빠진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인사 검증을 담당하면서 문제의 동영상의 존재 여부 및 내용에 가장을 큰 관심을 가졌을 사람이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듬해 있을 총선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야당 의원만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한 것 아니겠냐고 추정했고, 김학의 전 차관 임명 당시 법무부 장관이면서 수사 권고 당시 야당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왔다.
 

보도자료에 담긴 '정치적, 정책적 고려 없이'

박원경 취파용

이런 의혹은 검찰 과거사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었다. 2019년 3월 25일, 검찰 과거사위의 보도 자료엔 이례적인 문구가 포함됐다. '(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은 (김학의 사건 진상규명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어 어떠한 정치적, 정책적 고려 없이 사건의 진실만 쫓아 실체를 규명할 것임'. 묻지 않았는데 답을 한다는 건 질문이 나올 것임을 예상했음을 의미한다. 과거사위 스스로 자신들의 수사 권고가 '정치적'이거나 공수처 설립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정책적 고려'로 해석될 수 있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부분은 후속 취재파일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정치성을 의심할 만한 한 단면만 살펴보도록 하자. SBS 확보한 대검 진상조사단 단원들의 단체 채팅방 내용에 따르면, 조사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 조사단원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사실 민정 관련해서는 부실 인사 검증 및 임명 강행이 핵심인데 조응천까지 수사 의뢰 시 민주당까지 뭐라 할까 봐 일단 곽상도만 넣었어요'

이 메시지를 남긴 조사 단원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 야당에서 강력히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다른 조사단원의 문제제기가 있자 '민주당 반발은 (그냥) 하는 소리다', '조응천의 범죄 사실이 안 써진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 발표 이후엔 '무고가 빠져서 나중에 큰 부담될 듯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직권남용 혐의 수사 권고 대상자를 정할 때 정치적 고려를 했음을 자인하고, 무고 혐의가 수사 권고에서 빠진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원경 취파용

희망 답안이 정해진 수사 권고…마냥 따르지는 않은 검찰

수사 권고를 받아 든 검찰은 난감한 모습이었다. 대통령의 지시에 더해 해외로 출국하려 한 김학의 전 차관 때문에 국민적 공분이 커진 상황. 희망 답안도 나와 있었다. 수사 성과가 나면 과거에 사건을 덮었다는 비판이, 수사 성과가 나지 않으면 역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든 검찰 스스로 검찰 개혁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기에 수사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건을 수사할 검찰 수사단 단장에는 검찰 내 손꼽히는 특수통으로 불리던 여환섭 당시 청주지검장이 낙점됐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일단 수사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의 의중이 반영된 인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별건 수사로 김 전 차관을 구속기소하면서도, 희망 답안을 온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아니, 문제의 전제를 부정하기도 했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에 대한 수사 권고의 가장 근 근거는 과거 청와대 근무자의 조사단 진술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단은 수사 결과 보도자료에 해당 근무자는 '(조사단이 면담보고서에 담은) 그런 취지의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적시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박관천 면담보고서'의 내용이 진술자의 진술과는 다른 취지로 적혀 있음을 공식화한 것으로,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가 잘못됐다고 비판한 셈이었다. 검찰 과거사위는 특정 검찰 관계자들이 건설업자 윤중천과 유착된 의혹이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 수사단은 수사에 착수할 단서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 내용에 비춰보면 허무한 결론이었다. 이 결론을 위해 제한된 공적 자원이 김학의 사건에 투입된 사이, 누군가는 피해를 봤을 지도 모른다.

검찰에는 검사장 인사와 관련한 속설이 있다. 서울과 가까운 자리일수록 요직이라는 것이다. 이런 속설에 따를 때, 희망 답안을 순순히 따르지 않은 여환섭 검사장은 요직에서 점점 멀어졌다. 청주지검장에서 대구지검장으로, 다시 광주지검장으로,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은 결과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주목받지 못했던 '출국금지 조회' 사건

한편, 검찰이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 대상 사건을 한창 수사하고 있을 무렵, 예상치 않았던 사건이 불쑥 튀어나왔다. 2019년 3월 23일 새벽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이전에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여부를 검색한 혐의를 받는 공익 법무관에 대한 수사가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수사는 법무부의 자체 감찰에 이은 수사 의뢰로 시작됐는데, 김학의 전 차관에게 출국금지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미리 전달한 사람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런데 간단해 보이는 이 사건의 수사 결과는 빨리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김학의 수사단, 그리고 진상조사단의 고(故) 장자연 사건 재조사에 시선이 뺏겨 안양지청 사건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당시 안양지청은 공익 법무관의 출국금지 여부 조회뿐 아니라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적법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당시엔 수사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김학의 전 차관의 해외 도피를 막은 것은 정의의 실현 아니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검찰, '김학의 출금사건' 대검찰청 압수수색

재조사에 대한 재조사…우리는 무엇을 놓쳤나

2년이 지난 2021년 4월. 김학의 사건은 검찰청으로 다시 소환됐다. 과거와 달리,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의 재사건화 '과정'이 수사 대상이라는 게 차이일 뿐이다. 2년 전 우려했듯이 재조사가 재조사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의로운 구호 실현을 위해선 그 과정도 정의로워야 하고, 그 내용은 논리적 근거와 엄밀함을 가져야 하지만, 그런 부분이 의도적으로 생략되거나 호도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2년 전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배우지 못한 걸까. 왜 과거사위의 재조사는 다시 재조사 받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걸까. SBS는 최근 입수한 대검 진상조사단의 최종 보고서 등을 토대로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김학의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볼 예정이다.

▶ '김학의 사건' 취재파일 시리즈 보기
[취재파일] 김학의 사건 ② 착취와 이용 사이, 토론 없는 평행선
[취재파일] 김학의 사건 ③ '여론의 생산적 에너지화' 위한 전문가의 역할
[취재파일] 김학의 사건 ④ 과거사 청산과 '기억의 정치'
[취재파일] 김학의 사건 ⑤ '절차적 정의와 객관성, 그리고 공론화가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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