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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Thanks to Korea, 한국은 미얀마의 희망입니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지 83일 만이던 지난 24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미얀마 사태의 해결을 위한 5가지 합의 사항이 발표됐습니다. 미얀마에서 즉각 폭력을 중단하고, 반쿠데타 진영과 군정이 대화를 시작하며 아세안은 이 대화를 중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세안 정상들은 물론 미얀마 민주진영도 합의 내용에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미얀마의 반군부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는 "아세안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와 우리 국민과 지역을 위한 민주주의, 자유 회복을 위한 단호한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얼핏 미얀마 사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된 것처럼 보였지만,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는 활동가 웨 노에 흐닌 쏘(35) 씨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합의안이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군부의 시간 끌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제든 유혈진압은 재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 미얀마 군부는 아세안 회담이 열린 24일 당일에도 까친 소수민족 주거지를 공습하는가 하면, 만달레이에서는 한 청년을 총으로 쏴 숨지게 했습니다.

웨 노에 씨는 그럼에도 미얀마 국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으로 한국이 민주화를 이뤄낸 사실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습니다. 웨 노에 씨는 "한국도 큰 희생을 겪었지만 끝내 민주화를 이뤄냈다"며 "이 사실은 미얀마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웨 노에 씨는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 국민들이 앞으로도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응원하며 지켜봐준다면 그 자체로 큰 힘이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음은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에서 진행된 웨 노에 씨와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시 쓰기를 좋아하던 유학생 웨 노에 씨는 이제 군부의 만행을 알리는 '투사'로 활동 중이다.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 공원에서 SBS와 인터뷰한 모습.

시 쓰기 좋아하는 유학생, 군부 만행 알리는 '투사'가 되다


Q.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2019년에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연세대에서 석사를 졸업한 후 지금은 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요즘은 주로 공무원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통번역을 하고 있고요. 시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를 다른 공동 대표 4명과 함께 조직해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큰 조직은 아니지만,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해나간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가 미얀마 군부 만행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죠?

A. 네, 2월부터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2월 1일에 쿠데타가 발발했고,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를 만든 건 2월 3일이었습니다. 현재는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인 여학생, 노동자 등 총 20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찾아가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설명하거나 전국역사교사 모임에 가서 미팅을 갖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화상으로 주로 만나지만, 한국의 역사교사분들의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각 대학 특강과 언론 인터뷰, 또는 기고문을 통해서 미얀마 상황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고요. 또 미얀마 쿠데타 희생자들을 위해서 절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오체투지 행진도 하고, 애도를 위한 분향소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김혜영 취재파일용-미얀마
▲ 웨 노에 씨가 다른 리더들과 함께 이끄는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의 집회 모습.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는 지난 24일 재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에서 해외주민운동연대(KOCO), 아시아주민조직연대(LOCOA)와 함께 집회를 열고, 흘라잉 군부 총사령관의 아세안 정상회의 초청 취소를 촉구했다. (사진=웨 노에 씨 제공)

"한국 국민의 민주화 투쟁 지지, 큰 힘…2천400여 분 도움으로 2억 모아"


Q. 한국 국민들로부터 연대 의식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한국 국민들의 지지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는 외국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통장 개설부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시민단체인 해외주민운동연대라는 곳을 통해서 저희가 미얀마로 전달하려는 기금을 모으고 있는데, 지금까지 4차까지 모금이 진행됐습니다. 무려 2천400여 명이 참여해주셔서 2억 원 가까운 성금이 모였습니다. 4차 모금까지 관심이 하나도 시들지 않고 계속 진행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군부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큰 도움입니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로 전달되는데요. 초창기에는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안전모 같은 보호장치를 구입하는 데 자금을 지원했지만, 최근에는 화재 피해가 많았던 까친주, 까렌주 이재민들에게도 성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 기금뿐 아니라 다양한 온라인 캠페인에서도 미얀마 국민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계속 내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한국 국민들이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는 걸 미얀마 사람들도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일 전에는 미얀마 현지에서 한국인들의 연대에 고마움을 표하는 Thanks to Korea 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김혜영 취재파일용 이미지- 광주
▲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버스에서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광주 시민들. 사진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이 정보활동을 위해 채증한 것으로, 2019년 11월 26일 당시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이 사진첩의 존재를 확인한 후 지속적인 공개를 촉구해온 끝에 공개됐다. (당시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실 제공)

"민주화 이룬 한국, 미얀마의 희망…5·18 민주화운동은 큰 교훈 줘"


Q.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국민들의 항쟁은 한국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떠오르게 합니다. 웨 노에 씨에게, 그리고 미얀마 국민들에게 광주 민주화운동은 어떤 의미인가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모여있는 광주 시민들. (당시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실 제공)

A. 저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지난 2007년에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미얀마 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국은 이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선진국이었지만, 영화 속 1980년 광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잔혹한 군부의 학살이 있었고, 그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서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짜로 이뤄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군부 쿠데타 세력의 총탄에 쓰러지고 군화발에 짓밟히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며 싸우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40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군부의 잔혹한 학살이 2021년 미얀마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반독재 반쿠데타를 외치며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미얀마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며 학살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미얀마 국민들도 광주 상황과 미얀마 상황이 어쩜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군부 독재 쿠데타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국민을 탄압하는 게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군부의 잔혹한 살상으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오는 현실이 절망스럽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한국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토대로 끝내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희망을 봅니다.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주동자와 그 세력들이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점은 저희에게 또 다른 과제를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는 한국보다 더 복잡한 정치 지형, 특히 과거 한국보다 더 단단하고 뿌리 깊은 군부 독재의 카르텔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 군부 세력을 뿌리 뽑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깨어있는 국민들과 세계 언론이 미얀마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4일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살인마'를 회의에 초청한 아세안…합의 이행할지는 지켜봐야"


Q. 아세안 정상들이 미얀마 군부 쿠데타 책임자인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아세안 정상회의에 초청해 '폭력 중단' 등 5가지 합의 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나요?

A. 제 개인적인 의견을 대신해, 미얀마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문구 하나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감옥에 가고, 열 사람을 죽이면 정신병원에 가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면 아세안 정상회의에 초청받는다."

미얀마 국민의 분노가 함축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폭력 중단과 건설적 대화, 아세안의 대화 중재, 인도적 지원 제공, 특사단 방문 등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5개항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이 합의는 의미가 있었다고 보나요?

지난달 27일 수도 네피도에서 미얀마군의 날을 기념해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하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A. 첫 번째 합의 내용은 '미얀마 내 즉각적인 폭력 중단이 있어야 하며, 모든 당사자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모든 관련 당사자들 간의 건설적인 대화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미얀마인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비상사태입니다. 심지어 흘라잉 사령관이 정상회담을 마친 당일 밤에도 범행을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평화적인 해결책을, 다른 이도 아닌 학살의 주범인 흘라잉 사령관과 모색할 수 있을까요? 800명에 가까운 희생자에 대한 애도조차 없었다는 점도 이 합의를 회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만달레이에서 총에 맞은 시민을 시위 참가자들이 옮기는 모습. 군부는 반독재 반군부를 외치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다.

네 번째 합의는 아세안이 아세안재난관리 인도적지원조정센터(AHA 센터)를 통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자연재해가 아닌 군부 쿠데타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인도주의적 지원만으로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일까요? 이런 인도주의적 지원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미얀마 국민들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합의 내용은 특임 대사 및 대표단이 미얀마를 방문하여 모든 관련 당사자를 면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면담이라는 걸 통해서 정확히 어떤 내용을 이끌어낼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처음부터 저는 아세안이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기대한 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4월 16일 NUG, 민족통합정부도 생겼는데 그쪽 인사를 초청하지 않고 학살자 주범을 초청했더군요. 도대체 왜 살인마를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Q. 아세안 정상들이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초청한 행위 자체가, 그를 계속 국가수반으로 인정하는 행위로 이어질까 걱정되는 거죠?

A. 그렇죠. 미얀마 국민들 대다수가, 95% 이상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부가 4월 16일에 생겼는데, 그를 놔두고 살인마를 초청했으니까요. 민족통합정부도 외교부가 따로 있는데, 그러면 외교부 장관을 초청하든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Q. 아세안 외 다른 국제사회의 지원은 어떻게 보나요?

A. 미얀마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세안에 대해서는 그렇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요. 다만, 우리가 유엔의 '보호책임'(R2P·Resposibility to protect)을 호소했잖아요. (※R2P : 한 국가가 집단학살·전쟁범죄·인종청소·반인륜 범죄 등 4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경우,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 하지만 그 어떤 조치도 없었어요. 지금까지 미얀마 사태로 소집된 세 차례 안보리 회의가 있었지만,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 사람들은 절망했고, 우리는 더이상 잃을 게 없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설령 내전이 일어난다 하더라도요. 최근 가두시위가 움츠러들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다시 이 마음이 대규모 시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미얀마 국민들의 모습. 아세안 정상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곳곳에서 반군부, 반쿠데타를 외치는 평화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Z세대 자발적 투쟁에 모두 놀라…전단지 뿌리며 군부 만행 알리기도"


Q.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Z세대가 있습니다. 과거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중장년 세대나 종교 지도자들의 참여에 비해 Z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뭔가요?

A. 지금 제일 안타까운 게 바로 재야 정치인, 재야 시민 운동가, 종교인 등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월 10일 기준으로 집계된 것을 보면, 구금·체포당한 이들 가운데 일반 시민은 1,846명인데요. 이 가운데 학생들, Z세대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409명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이 159명, NLD 의원들은 135명, 파업에 참여하는 공무원은 64명, 언론인 62명, 사회활동가 39명, 연예인 24명, 스님 8명 순입니다. 이 통계로 봤을 때에도 종교 지도자 또는 정치인의 참여가 그만큼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월 17일은 미얀마의 새해였는데, 미얀마에서 가장 상징적인 스님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살인마인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과 손을 잡고 국영방송에 나왔습니다. 군부는 이렇게 종교 지도자를 이용해 시민들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2007년도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스님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긴 했지만, 그때 역시도 대표성을 가진 스님들이 아니라, 청년 스님들이 보다 못해 나선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Z세대가 이런 저항 운동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는 Z세대라고 하면 'K팝 콘서트만 따라다니고, 게임만 즐기는 생각 없는 아이들' 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쿠데타를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재야 정치인, 시민 운동가, 종교인 등 지도자들이 없었음에도 Z세대들은 자기들에게 익숙한 SNS를 활용해서 이 저항운동을 21세기의 방식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흘라잉도 청년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희생된 800명 가운데 Z세대는 40.9% 정도인 것으로 저희는 집계하고 있습니다.

Q. 지금 현지 인터넷 사정이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며 소식을 공유하고 있나요?

A. 군부가 3월 14일부터 양곤과 만들레이, 네피도 등 3곳을 제외한 나머지 광케이블을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재 다른 지역으로 피신 중인 제 언니와는 페이스북 메신저 같은 SNS를 통해서는 소통을 하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국제 전화로 연락을 합니다. 언니는 지금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국영방송이 나와 맨날 가짜뉴스만 전달하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 뉴스가 나오면 제가 한국에서 언니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Z세대들은 팩트체크를 위한 전단지를 만들어서 수도권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도 전달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라디오를 통해서 소식을 접하는데요. 가령 BBC 라디오 뉴스나 DVB, MIZZEMA 이런 라디오 매체를 통해서 소식을 전달 받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양곤에 있는 시민과 연락이 닿아서 민족통합정부에 대해서 미얀마 사람들의 지지율이 얼마나 되느냐 물었는데요. 그 시민은 '다들 민족통합정부의 출범 소식 자체를 접하지 못했다. 아마 이 소식을 모두 접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NS가 되지 않다 보니 지난 16일 미얀마 군부에 대항하는 세력인 민족통합정부가 생긴 것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반군부 민족통합정부 출범에 감사…하루빨리 사태 종식시켰으면"


Q. 말씀하신 것처럼, 미얀마의 반군부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가 2주 전 출범했습니다. 이 민족통합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A. 우선 민족통합정부가 정말 다양하고 종합적으로 내각을 채우려고 한 의도가 보여서 고마웠습니다. 작년에 선출된 의원들뿐 아니라 국가 지도자, 그리고 소수 민족 무장단체 대표도 있고요. 각 분야의 전문가와 Z세대 여성 중 한 사람도 차관이 됐습니다. 아무쪼록 민족통합정부가 하나의 정부로 국제사회에서의 인정과 지지를 받으려면 연합군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안에서 헌법도 만들어야 합니다. 게릴라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런 조직 운영까지 하려면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최근에도 희생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리더인 웨 노에 흐닌 쏘씨(오른쪽)와 헤이 만 흐닌씨(왼쪽)가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에서 <SBS><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와 인터뷰를 마친 뒤 미얀마 민주화 시위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data-captionyn="Y" id="i201545355"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10428/201545355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720" v_width="1280">

"한국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 미얀마 국민들에게 큰 힘"


Q.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미얀마 민주 항쟁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장기화되면, 어쩌면 언론도 소극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태가 장기화되더라도 한국 국민들이 지금과 같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심신이 지쳐가는 미얀마 현지 국민들에게 지금과 같은 한국 국민의 강한 연대의식은 그 자체로 동력이 됩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민들의 삶은 폭력과 학살로 무너졌습니다. 나라를 다시 복구할 때에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이 참사를 경험한 미얀마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심리 치료 역시 절실할 텐데, 만약 한국이 추후 교육 지원, 의료 지원에 나서 주신다면 미얀마가 정상적인 민주국가로 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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