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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사 역량 강화' 공수처 워크숍 홍보에 도사린 함정

휴일인 지난주 토요일,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소환조사했습니다. 재작년 이규원 검사가 김학의 전 차관을 허위 문서로 출국금지하는 과정을 이 비서관이 사실상 지휘했다고 의심하는 수사팀은 10시간 반 동안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수사팀은 이 비서관을 또 부르지는 않을 방침입니다. 하루 조사된 내용을 토대로 대검찰청과 이 비서관을 기소할지 여부를 논의 중인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불법 출금'과 관련된 이광철 비서관의 혐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변필건 부장검사)가 수사 중인 이른바 김학의 '기획사정' 의혹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지검은 '기획사정' 의혹과 관련한 이규원 검사의 혐의를 공수처에 이첩했지만, 공수처가 사건을 직접 수사할지 아니면 사건을 되돌려 보낼지 한 달 넘게 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법출금' 의혹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은 비교적 신속히 검찰로 재이첩한 공수처는 이규원 검사 사건에 대해서는 직접 수사 의지를 꽤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윤 지검장 사건을 이첩받았을 때와는 달리, 신임 검사와 수사관들을 선발해 수사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갖춘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공수처는 지난 주와 이번 주에 걸쳐 수사 기법과 관련한 워크숍을 열었다는 홍보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엔 '인권친화적 수사기법 워크숍'을 열었다는 보도자료를, 어제는 신임 검사의 '수사 및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한 워크숍'을 열었다는 홍보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린 것입니다. 하지만 갖가지 논란과 정치 일정으로 이 사건 수사의 판이 커진 상황 속, 사건 재이첩 결정을 내리지 않은 공수처가 워크숍 홍보에 나서는 건 향후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사진=연합뉴스)

이광철 기소, '출금 불법성' 인식했나가 쟁점…중앙지검 수사와 밀접한 연관

수원지검이 이광철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판단하는 데에는 이 비서관의 '출금 지시' 여부와 함께 중요한 쟁점이 또 있습니다. 이 비서관이 김학의 전 차관 출금 불법성을 인식했는지 여부입니다.
재작년 김학의 전 차관이 갑자기 해외 도피를 시도할 당시에는 김 전 차관에 대한 과거사 재조사가 한창이었고 본격적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김 전 차관은 법적으로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이규원 검사는 이광철 비서관에게 긴급출금 요청서를 전송하는 등 연락을 주고받으며 피의자 신분이 아닌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금을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광철 비서관은 당시 이규원 검사는 물론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과도 연락하며 출금 과정에 관여한 걸로 알려졌는데, 이 행위가 죄가 되려면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금하는 게 불법이라는 걸 이 비서관이 인식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김학의 전 차관

당시 긴급출금을 실행한 이규원 검사는 출국 금지 사유로 '뇌물 혐의 수사의뢰 예정'이라고 긴급출금요청서에 기재했습니다. SBS가 입수한 <윤중천 2회 면담보고서>에는 이규원 검사가 인식한 김 전 차관 뇌물 혐의의 일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규원 검사가 김학의 출국 금지 3개월쯤 전인 2018년 12월 28일 작성한 <윤중천 2회 면담보고서>에는 윤중천이 '여러 검사들과 어울렸으나, 그 중 김학의와 한상대에게는 각 수천만 원씩 현금을 준 적도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조사 진척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규원 검사는 성 접대 의혹과 함께 윤중천의 이러한 진술을 뇌물 혐의로 인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규원 검사와 이광철 비서관이 현재 받고 있는 '불법 출금'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이들이 김학의 출금요청서에 기재한 '뇌물 혐의'를 정당한 출금 사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합니다.

하지만 수원지검은 이규원 검사가 당시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이규원 검사 공소장에 이러한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더해 '김학의 뇌물 혐의'가 기재된 <윤중천 2회 면담보고서>에 대한 과장ㆍ왜곡 혐의도 불거진 상황입니다. 당시 청와대 반부패정책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에서 선임행정관으로 있었던 이광철 비서관이 평소 긴밀한 관계였던 이규원 검사와 어느 정도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또 이 과정에서 이 비서관이 '김학의 뇌물 혐의'가 충분치 않았음을 알았는지 따져보는 게 이 비서관 기소 판단에서 중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 검사실

공수처 보낸 사건 감감무소식인데…'수사 배우는 중' 홍보 적절한가

문제는 이 지점을 정확히 따져보기 위해서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수사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윤중천 면담보고서>의 허위성을 수사 중인데, 속도를 내던 수사가 최근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규원 검사가 수사 자료인 <면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수사자료가 언론에 유출되는 데에도 관여됐다고 보고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사건을 중앙지검으로 다시 돌려보낼 건지, 아니면 직접 수사할 건지 1달 넘도록 묵묵부답입니다. 이 결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중앙지검 수사팀은 이규원 검사와 공범으로 고발된 이광철 비서관 소환 일정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가 연달아 워크숍 홍보에 나선 것입니다. 새로 임명된 검사들이 초빙된 강사들로부터 수사 기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취지인데, 이는 바꿔 말하면, 아직 공수처 검사들이 본격적으로 수사할 상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공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빙 강사와 강의 내용 등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한 워크숍 홍보와 비교해보면, 이규원 검사 사건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매우 부족합니다. 공수처장 출근길마다 기자들이 결정이 미뤄지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검토 중'이라거나 '기록을 보고 있다'는 대답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기록 검토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에 대해 납득할 법조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각종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박범계 법무장관도 수십만 페이지에 이르는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의혹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법원의 부장판사는 "판단이 오래 걸리는 것에 대한 이유가 기록 보는 데 시간이 걸려서라고 말하는 건 실력 부족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수사를 배우고 있다'는 홍보를 하기 전에 구체적 이유를 제시하며 이규원 검사 사건은 공수처가 직접 수사할 당위가 있고, 또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정도의 사건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먼저 설명하는 것이 일의 순서입니다. 사건 재이첩 여부 결정은 미루면서 '열심히 수사 기법을 배우고 있다'는 홍보를 하는 건, 아직 수사 준비도 안 됐는데 사건을 갖고 있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꼴입니다.

공수처 검사 교육 착수 (사진=공수처 제공, 연합뉴스)

재이첩 결정 전 워크숍 홍보에 도사린 함정

공수처의 이런 행보는 나중에 후환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공수처가 만약 중앙지검으로부터 이첩 받은 이규원 검사 사건을 직접 수사해 이 검사를 기소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제 막 수사를 배우고 있다고 홍보된 공수처 검사들이 내린 기소 결정을 이규원 검사 측이 받아들일 리 만무합니다. 공수처가 이규원 검사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 하더라도, '워크숍 받던 검사들이 수사해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는 반대 세력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김학의 전 차관 재조사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수사기관이 작성한 불기소 이유서도 역사와 여론의 엄정한 평가를 받는 세상이 됐습니다.

재이첩 결정은 미루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건 '인권 친화적이면서도 엄정한 고위공직자 수사를 하겠다'는 공수처 스스로의 목표와도 상충됩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이 조사해 혐의가 없다면 빨리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혐의가 있다면 정확히 기소 판단을 내려 피고인으로 하여금 재판에 대비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엄정히 하면서도, 불필요하고 과도한 조사로 피의자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는 방법입니다. 사건은 쥐고 있으면서 신임 검사들에게 수사 교육을 하는 건 '엄정한 수사'도 '인권 친화'도 아닙니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데도 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홍보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을 제대로 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신생 기관이라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수처의 구성원들은 육성군에 있는 아마추어가 아닌, 엄연한 프로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관의 홍보에는 명확한 목표와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공수처와 같은 소규모 신생 기관일수록 이는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공수처는 지금이라도 이규원 검사 사건 재이첩 여부와 관련해 신속한 결정을 내리거나, 결정에 더 시간이 걸린다면 납득할 만한 설명부터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 공수처에게 워크숍 홍보보다 중요한 일은 따로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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