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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한국이 mRNA 백신 허브국 돼야"…톰 프리든 전 CDC 국장 인터뷰

[월드리포트] "한국이 mRNA 백신 허브국 돼야"…톰 프리든 전 CDC 국장 인터뷰

신종플루부터 지카 바이러스까지…오바마 정부의 방역 수장 톰 프리든 전 CDC 국장

톰 프리든은 2009년부터 8년간 CDC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을 지냈습니다. 신종플루부터 지카 바이러스 대응까지 미국 방역의 총 사령탑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프리든과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장을 투톱으로 삼아 전염병 대응을 했습니다. 프리든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미국 언론에 워낙 자주 나와서 개인적으로도 매우 낯익은 인물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의회 청문회에서 전문가로 등장해 의원들에게 바이러스에 대해 설명을 하는 과외 교사 역할도 했었고, 마크 저커버그가 코로나19 페이스북 라이브를 했을 때도 등장해 질문에 답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외국인 기자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스타일이어서 예전부터 눈여겨봤던 전문가였습니다.

정부 당국자의 언론 출연이 워낙 많은 미국에서 전직 관료들은 현직 관료들보다 다소 과감한 주장을 정부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 미리 제기하는 역할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현직보다 발언이 자유롭고 운신의 폭이 넓어서 가능한 면도 있을 듯합니다. 과거 마스크 의무 착용 직전에도 FDA 상임위원 출신의 스콧 고틀립이 먼저 언론에 나와 분위기를 띄우고, 얼마 뒤 시행에 들어갔던 걸 본 기억도 있습니다. 최근 프리든이 폴리티코에 쓴 기고문을 봤는데, 미국이 미국만 백신 맞고 끝나면 변이 때문에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습니다. 백신을 전 세계적으로 최대한 빨리 생산해 바이러스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거기에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 줄 걸쳐놨습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인터뷰 일정이 워낙 눈코 뜰 새 없이 잡혀 있던 프리든과 몇 번 시간 조정을 한 끝에, 어렵게 시간을 내서 화상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 [단독] "한국을 백신 허브 만들어야…미국에도 이익"

"미국 안전 위해 한국이 mRNA 코로나 백신 생산 허브가 되어야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건 미국이 백신을 언제 다른 나라에 풀겠냐는 것이었습니다. 프리든 전 국장은 여름쯤 되면 상당한 양의 미국 백신이 다른 나라에 기부되거나 대여되는 형태로 나가게 될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답변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는 백신이 엄청나게 부족하고 미국 백신이 나간다고 해도 이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백신을 많이 생산해서 전 세계가 백신을 같이 맞아야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상당한 백신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활용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프리든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변이 속도가 워낙 빨라서 지금 백신을 우회하는 것이 나올 우려가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미국이 백신 잘 맞았다고 좋아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연결된 상황에서 나만 백신 맞고 잘 살아봐야 곧 다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런 식으로 글로벌 백신 기근이 오래 가면 변이 출현 가능성 때문에 미국이 더 위험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이익 때문에라도 한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미국 방역이 중요한 전직 관료 입장에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

그러면서 프리든은 "한국은 한국만을 위해 백신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위해 mRNA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국가"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신 허브 국가의 개념을 얘기했는데, 아예 한국을 허브 국가로 지정해서 거기에 미국 전문가들이 직접 가서 백신 생산 방법 등을 이전해주고 하루라도 빨리 백신 생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그런 만한 능력을 갖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전 인류가 최대한 빨리 백신을 맞고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를 총동원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한국을 전 아시아인들을 위한 구원 투수로 차출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수요 못 따라가는 공급…한국 통해 생산하는 게 백신 업체에도 이득"

주장이 그럴듯한데 사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먼저 mRNA 백신을 그렇게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 이전을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인지와, 떼돈을 벌고 있는 백신 업체들은 물론 백신 패권주의 얘기까지 나오는 미국이 과연 이를 허락하겠냐는 것입니다.

mRNA 백신 제조 기술에 대해서는 프리든은 이 기술이 기존 백신 제조 방식과 달리 생산 시설을 만드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mRNA 방식은 변이 바이러스 대응도 쉽고,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몇 달의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한국처럼 백신 생산 기반과 전문 인력이 있는 나라에는 미국 mRNA 업체들이 가서 직접 기술을 이전하고 생산하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본주의 이윤추구 동기 때문에라도 이 같은 논리가 실행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백신 업체들이 떼돈을 벌고는 있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 공급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로열티를 적절히 조절해서 기술을 빨리 이전해 백신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그게 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백신 한 병에 1,2달러라도 돈을 번다면, 만들지도 못하는 것보다는 업체들에게 훨씬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프리든은 아예 대놓고 미국 정부가 돈을 댄 모더나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더나의 mRNA 기술은 미국 정부가 오퍼레이션 워프스피드 작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대서 탄생시킨 것입니다. 나랏돈으로 만들어진 기술이기 때문에 이런 업체가 기술 이전에 앞장서 하루빨리 백신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공급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프리든 전 국장은 "우리가 모더나에 이런 일을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프리든은 민주당 방역 정책의 이너서클에 속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모더나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미국 정부 내에 이런 논리가 먹히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

"미국 정부 협조 가능하다"는 프리든…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 활용해야

미국의 백신에 대한 집착은 자신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바이든식의 미국 우선주의 양쪽을 다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57만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코로나 바이러스 브리핑에서 'war time'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웬만한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숫자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숨졌기 때문에 백신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 이해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만일 미국의 백신 공급에 위협적인 일을 다른 나라에서 한다면 미국은 아마 핵전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국 정부가 백신 기술 이전을 허락할 것인지에 대해서 프리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프리든이 그래서 허브 국가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개별 기업 간에 일대일 기술 이전은 번거롭고 여러 가지 챙길 게 많지만 허브국에 통째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국가단위에서도 관리하기 쉽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국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하는 것은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가 협력해서 창의력을 발휘해 백신 원료 서플라이 체인의 문제를 풀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

이 문제부터는 완전히 정치의 영역으로 접어듭니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바이든의 미국 우선주의 차이를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식의 미국 우선주의는 내 밥통은 물론 남의 밥통에 있는 밥까지 일단 다 내 거라고 우기는 식의 막무가내라면, 바이든의 미국 우선주의는 내 밥통의 밥은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겠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이익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나라가 계속 코로나 위기에 처해 변이 바이러스 유입으로 미국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결국 내 밥통의 밥이 상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면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특히 기후변화 등 지구적인 일에 관심이 많은 민주당 정부는 진짜 지구적인 문제인 바이러스 문제에 대해서도 잘만 설득하면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백신 담판' 최대 화두 된 한미 정상회담…우리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다른 미국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지만 프리든도 지난해 한국의 방역 정책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전 국민의 피와 땀이 들어간 방역은 한국인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놀라운 성취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백신 정책에서는 실패했다는 지적은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방역을 워낙 잘했기 때문에 백신 도입에는 독이 됐다는 자조적인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K 방역이 성공했다는 찬사를 받았을 때 오히려 사안을 냉정하게 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인 백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실현 여부를 따져봤어야 했던 건 정부의 기본 의무입니다. K 방역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비판을 금기시하고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안 하겠다고 안주했던 게 후반부 패착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감내한 고통을 감안하면 정부에 백신 정책까지 잘했어야 한다고 질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백신을 최대한 빨리 들여와 팬데믹을 종식시키느냐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호불호를 떠나 우리 국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빨리 백신을 맞을 수 있느냐 방법을 논의하는 건 좌우도 없고, 여야도 따로 없는 문제입니다. 어차피 백신을 만들어낸 미국을 움직여 백신을 들여온다면, 우리는 그걸 아시아 전체 팬데믹 종식을 위한 백신 생산으로 되갚겠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한 기업의 이익, 한 국가의 이익으로 보이지 않게 논리를 잘 개발하고 지구적인 문제로 호소한다면, 미국도 쉽게 외면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됩니다. 미국의 안위를 위해 한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프리든의 주장은 백신 담판을 해야 하는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에게 더 시사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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