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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페셜리스트] 류현진의 '유쾌한 반란', 비결은?

메이저리그는 지금 강속구의 시대입니다.

투수들의 공을 빠르게 만드는 훈련 방법이 발견되고 진화하면서 해마다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2002년의 메이저리그 투수들 직구 평균 시속이 143.2km였는데, 점점 빨라져서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50km를 돌파했습니다.

이 선수가 뉴욕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이라는 투수입니다. 자타공인 현역 최고 투수죠.

올해 나이가 33살인데, 해마다 공이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시속 159.2km라는 인류가 듣도 보도 못한 역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류현진은 '별종 중의 별종'입니다.

직구 평균 시속이 145km 정도밖에 안 됩니다.

디그롬의 변화구보다 느린 것이죠.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류현진보다 직구가 느린 투수는 6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메이저리그 전체 투구 중에는 직구가 반, 변화구가 절반씩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류현진은 이런 반반 공식과도 거리가 멉니다.

직구는 25%, 그러니까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세 가지 변화구, 체인지업과 커터 그리고 커브가 나머지 4분의 3을 채웁니다.

원래 미국 진출 초창기에는 류현진도 '직구 반, 변화구 반'의 상식을 따랐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직구가 줄더니 올해는 리그에서 제일 직구를 안 던지는 투수 중의 한 명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속도로 보나 볼 배합으로 보나 멸종위기종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위력은 세계 최정상권입니다.

2019년 이후로 3년 동안 류현진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투수는 아까 소개한 디그롬 1명 뿐입니다.

그러니까 류현진은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선발투수로 왼손 투수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비주류 중에 비주류인 류현진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요.

이것을 타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서 타자 앞에 도착하는 시간이 약 0.4초인데, 스윙을 하는 데 실제로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타자는 0.1초 만에 아직 4분의 1밖에 오지 않은 공을 보고 언제 어디로 올지를 짐작해서 스윙을 해야 합니다.

강속구 투수를 만나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단순합니다.

빠른 공을 대비해서 스윙을 하고 변화구는 임기응변에 맡기는 것이 정석이죠.

시험에 비유하자면 이지선다를 생각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류현진을 만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직구는 4분의 1밖에 안 되고, 각기 다른 속도의 변화구 세 종류가 비슷한 빈도로 날아옵니다.

이것만으로도 사지선다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류현진은 이 모든 구종을 아래쪽 혹은 위쪽으로 조절해서 마음대로 던질 수 있고,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도 정확하게 겨냥해서 던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0.1초가 어떤 시간이냐 하면 이 시간 안에 16개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결정을 하지 못하면 공은 지나가 버립니다.

류현진 같은 느린 공 투수들은 장점도 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어깨와 팔꿈치의 부상 위험도 높습니다.

그래서 야구 역사를 보면 류현진처럼 무리해서 속도를 내지 않는 기교파 투수들은 장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 야구 최다승 투수인 송진우, 또 메이저리그 최고령 승리 기록 보유자인 제이미 모이어가 대표적이죠.

모두가 힘과 속도를 쫓는 시대에 류현진은 정반대의 길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꽤 오랫동안 이 유쾌한 반란을 계속할 듯합니다.

(영상취재 : 이천수·양현철, 영상편집 : 김병직, CG : 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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