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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시대] "낡은 방패가 새 창을 다 막진 못해도…"

100년 만에 발견된 12살 소녀의 일기장 "오늘 밤부터 조금 무서워진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시대를 몸소 경험한 한 소녀의 일기장이 최근 발견됐다.
일본 교토의 한 사찰에서 납골당을 정리하던 중 서랍에 보관돼 있던 허름한 일기장.
그 속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을 몸소 겪은 감수성 예민한 12살 소녀의
공포와 걱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일기장 초반에는 여학교에 입학을 해 기뻐하는 일상적이면서도 잔잔한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이 심각해지면서 소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감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석해
결국 나만 남았다."

1918년 11월 11일에 적힌 일기장에는
"저녁에 아버지는 히로시마로 가셨다. 오늘 밤부터 조금 무서워진다."
히로시마에 사는 할아버지를 아버지가 급히 찾아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할아버지의 건강과 관련해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 것.

다음 날 일기장에는 "요즘 신문에는 검은 테두리 광고가 많이 실린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이처럼 1918년 11월 한 달에만 일본에서는 약 13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사료를 통해 당시 폭발적인 감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방역이라든지 정부의 통제 같은 것들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 독감 당시 행해졌던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방역은 사실상 100년 전에 했던 것에서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지금처럼 일반인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게 '스페인 독감' 유행 때부터이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차량 탑승을 거부당했다.
또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인 '사회적 거리두기'도 개인적 차원에서는
스페인 독감 때 처음 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이규원 객원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자부하는 시대에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를 앞에 두고 취할 수 있는 대책이
고작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마치 백신만 나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들떠 있지만 (……)
유행의 종식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이규원 교수의 지적처럼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발전하는 인류의 특성상,
재앙에 가까운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책도 함께 진화되는 게 자연스럽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목숨을 잃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은 쌓여가지만
그 지식은 신종 감염병의 유행 자체를 막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 하는 게 현실이다.

감염병의 유행과 방역을 논할 때 '창과 방패'에 많이 비유하는데
"낡은 방패로 새로운 창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애석하게도 "낡은 방패로 새로운 창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다"에 수렴된다.

그 이유는 신종 감염병이 닥쳐왔을 때 의학이 선제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이다.
일단 병원체의 정체가 밝혀지고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백신이든 치료제든 개발할 수 있다.
결국 국제 공조를 통해 감염병 발생의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고,
철저한 검역과 방역을 통해 유입과 확산을 저지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래서 감염병과 방역의 역사는 면밀히 검토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감염병을 막기 위한 모든 활동, 즉 '방역(防疫)'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롭게 변이 된 바이러스를 기존의 백신과 치료제로서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새 바이러스 백신을 비롯한 의학적인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가 방역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 피해를 확산을 막는 것이 이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감염병 시대의 이슈를 날카롭게 캐치하는 SBS 이종훈 기자,
감염병 시대를 역사와 의학전문 지식으로 풀어주는 이규원 교수,
감염병 시대를 영화와 문학적 상상력의 힘으로 설명해주는 윤성은 평론가.

세 사람은 단순히 바이러스를 질병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
인간 사회, 인류 문명에 주어진 무거운 과제 속에서
앞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또 감염병 시대에서 나눠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총 네 편의 콘텐츠로 제작되었으며 이번이 두 번째 에피소드(EP.2)입니다.
** 매주 토요일 업로드됩니다 **

(기획: 이정애 / 구성: 이종훈, 최유진 / 촬영: 임세종 / 편집: 편집: 구승환, 조윤주 / 디자인: 최진영 / 연출: 최성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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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상은 'SBS D포럼'을 기획하는 SBS 미래팀에서 만든 유튜브 콘텐츠입니다.

'SBS D 포럼(SDF)'은 SBS의 사회 공헌 지식나눔 플랫폼으로,
지난해 <겪어본 적 없는 세상: 새로운 생존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석학 유발 하라리 교수를 비롯
국내외 여러 연사와 함께 비대면 온라인 포럼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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