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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헤엄 귀순' 대책이 AI와 4차 혁명?…되살아난 '창조국방'적 발상

[취재파일] '헤엄 귀순' 대책이 AI와 4차 혁명?…되살아난 '창조국방'적 발상
국방부는 지난 15일 서욱 장관 주재로 국방개혁 2.0 추진점검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정부의 국방개혁 추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손봤습니다. 청년 인구 감소에 따른 군 구조 개혁, 효율적 획득체계 등이 큰 과제로 다뤄졌습니다.

군은 이 자리에서 22사단 헤엄 귀순 사건 후속조치도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논의했습니다. 정밀진단 결과, 경계 실패의 원인으로 ▽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노후화와 기능 미흡으로 과도한 오경보 발생, ▽ 넓은 경계지역과 육상 해안 동시 경계 등 경계 작전 여건의 상대적 불비를 지목했습니다.

국방부 보도자료 중 22사단 경계 실패의 원인과 대책

기계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 데다 책임 경계 범위까지 너무 넓어서 헤엄 귀순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딱히 누구의 잘못도 없다는 투입니다. 22사단뿐 아니라 육군, 합참, 국방부에 발부하는 셀프 면죄부 같습니다.

대책은 올해 헤엄 귀순이 발생한 곳에 AI(인공지능) 기반 과학화경계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성과가 좋으면 내년에는 22사단 전 지역으로 AI를 확산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효과적으로 획득하는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국방부는 설명했습니다.

말의 향연입니다. 면죄부 느낌의 정밀진단 결과도 그렇고, AI와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하겠다는 대책도 그렇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이랬습니다. 청와대가 창조경제 운운하니까 국방부와 육해공군에서는 온갖 일에 창조국방을 갖다 붙였습니다. 이제는 AI와 4차 산업혁명이 창조국방 내쫓고 그 자리를 꿰찼습니다. 현실성과 실속 없기로는 창조국방이나 AI, 4차 산업혁명의 국방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광망은 손으로 짜면서 AI가 웬 말

오작동이 빈번한 감시 카메라와 광망 철책

22사단의 과학화경계시스템 엉망인 것 맞습니다. 한 감시 카메라는 1년에 21만 번 오경보를 울린 것으로 S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동물이 지나가도, 바람이 불어도 거동수상자로 판단해 하루 575번, 시간당 24번 작동한 셈입니다. 22사단 전체로는 감시 카메라 1대 평균 연간 6만 번, 하루 200번 이상 오경보를 울렸습니다. 소초 상황실 한 곳이 이런 카메라 9대를 관리하니까 밤낮없이 경보가 울리는 실정입니다. 장병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은 2016년 10월에 설치됐습니다. 5년도 안됐고, 당시만 해도 최첨단이었습니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철책은 그냥 철책이 아닙니다. 광케이블망입니다. 그래서 철책을 광망이라고 부릅니다. 광망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감시 카메라가 그쪽을 찍는 것이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지금 봐도 제법 첨단이지만 관리는 4차 산업혁명은커녕 원시적입니다.

작년 8월 폭우와 태풍으로 전방의 광망 철책 17km가 유실됐습니다. 지난 3월 초 현재 17km 중 10km가 미복구 상태입니다. 5월 말에서 7월은 돼야 복구가 끝난다고 군은 밝혔습니다. 광망을 손으로 짜느라 시간을 지체한 것이 복구가 늦어진 이유 중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광망을 손으로 짜면 아무래도 광망의 마디와 간격이 둘쑥날쑥해서 인장력이 달라지고 이로 인해 잦은 오경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미리 적격 보수업체 정해놓고 천재지변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군은 손 놓고 있었습니다. 광망이 한꺼번에 유실돼 경황이 없자 광망 짜는 기계도 없는 업체에 덜컥 일을 맡긴 것입니다.

군은 이렇게 기본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원시적 땜질 대응을 하는데 국방부는 몇 계단을 퀀텀 점프(Quantum Jump)해서 AI를 하겠다고 하니 도통 믿음이 안 갑니다. AI가 온갖 데이터를 쌓아놓고 바람, 동물의 움직임을 식별해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 국방부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AI가 당장 올해부터 최전방 철책에 적용될 정도로 안정적인 기술인지 의문입니다.

혁신을 멀리하면 뒤처지겠지만 섣부른 혁신을 준비 안 된 곳에 주입하면 감당 못할 뒤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최전방이 바로 그런 준비 안 된 곳입니다. 섣불리 실험 대상으로 삼을 데도 아닙니다. 광망의 반응 수준을 조정해 과학화경계시스템을 안정화시킬 방법은 없는지부터 치밀하게 따져봤으면 좋겠습니다.

20분 비행 드론, 추락 드론으로 국방혁신?

방사청이 신속획득시범사업으로 도입한 자폭용 드론

과거에는 군사기술이 민간으로 이전돼서 많은 이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민간의 신기술이 군으로 이전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요즘 방사청은 신속획득사업이란 것을 하고 있습니다. 민간의 혁신적 기술을 재빨리 획득해서 전력화하는 사업입니다.

시범적으로 작년 12월 신기술이 적용된 드론 3종을 도입했습니다. 자폭 드론과 소총 사격 드론, 정찰·타격 복합형 드론 등입니다. 짧으면 석 달, 늦어도 반년만에 군에 배치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사청은 "3종 중 2종은 도입한 지 얼마 안 돼 추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총 조준사격 드론은 작전시간이 20분에 불과합니다. 20분 내에 이륙, 비행, 탐지, 식별, 사격, 복귀, 착륙한다는 것인데 아군 살상용이면 모를까 적을 대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작년 11월 다목적 무인차량 신속획득사업에서는 가위바위보로 사업자를 선정했습니다. 참여업체들이 낸 제품이 가격, 옵션, 성능 등에서 동점이 되자 가위바위보 한판으로 승자를 정한 것입니다. 방사청은 "절차가 그렇다"는 투로 해명했다가 빈축을 샀습니다.

신속획득사업으로 도입한 무기체계가 몇 가지 안 되는데도 말썽의 연속입니다. 절차는 또 황당합니다. 민간의 빼어난 기술을 군에 도입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분명한데 실제로 해보면 이런 사태가 터집니다.

책임은 기계에 떠넘기고, 대책은 기술이 맡고

AI도 좋고 4차 산업혁명도 좋습니다. 창조국방이 앞세웠던 ICT,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도 기술 자체로는 좋습니다. 다만 최첨단 기술을 맹목적, 정치적으로 좇는 군의 우(愚)는 경계해야 합니다. 최첨단 기술은 태생적으로 혁신과 모험적 성격을 내재하고 있는데 이는 안보의 최전선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적당히 익었을 때를 기다렸다가 도입해도 늦지 않습니다.

잔뜩 익은 기존 기술로도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오작동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국방부는 설익은 AI부터 꺼냈습니다. 경솔합니다. 언뜻 보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뿐입니다. 국방부는 현재 AI 기술로 과학화경계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못합니다.

헤엄 귀순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22사단장이 여당 유력 국회의원에게 전화했다"는 오해가 있었는데 사실은 국회의원이 사단장에게 전화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그 사단장도 다소나마 짐을 벗었습니다. 군의 정밀진단은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오작동을 경계 실패의 원인으로 짚었으니 책임은 오롯이 기계에만 지우는 형국입니다. 대책은 최첨단 기술입니다. 국방부가 내놓은 책임과 대책에 사람이 빠지니 뭔가 헛헛합니다. '물 샐 틈 없는 경계', '철통 같은 경계' 같은 엉터리 신화들은 솔직하게 포기하고 한반도에 걸맞은 실현 가능한 경계의 상(像)을 제시하는 군의 용기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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