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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객석이 사라졌다!"

- SDF2020 곽승영 CP (SBS 예능본부 책임프로듀서) 강연 다시보기


"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16년 전 'X맨'을 처음 시작했을 때, 유재석, 강호동의 현란한 재능을 보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편집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긴장하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야심만만'의 출연자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한 토크들을 쏟아냈을 때,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설렘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미운우리새끼' 첫 녹화 날, 엄마들의 거침없는 토크에 당황하는 국민MC 신동엽을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트롯신이 떴다' 베트남 첫 촬영 날, 노래 부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가수들을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공연을 해야 하는데, 객석이 사라졌다.
공연 첫 날, 랜선을 통해 들리는 수백 명의 함성 소리를 듣고 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곽승영 SBS 예능본부 책임 프로듀서(CP)는 <미운우리새끼>,<스타킹> 등을 연출한 베테랑 연출가입니다. 그런 그도, 지난해 코로나 발생 이후 관객과 함께 하는 콘서트 포맷의 프로그램 <트롯신이 떴다>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치열한 고민의 결과는 바로 '쌍방 소통형 언택트 공연'이었습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간 곽 PD는 지난해 SBS 대표 포럼 'SDF2020'에서 <객석이 사라졌다> 를 주제로 강의를 선보였습니다. 아래는 곽 PD의 강연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 강연 영상 다시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SDF2020 홈페이지[ ▶바로가기]나 유튜브 [ ▶바로가기]를 이용해 주세요.
진행=조정식 / 아나운서

Q. 네, 지금부터는 곽승영 SBS 책임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SBS 예능본부 곽승영 피디입니다.

Q. '랜선 콘서트를 세계 최초로 기획, 개발한 프로듀서다' 이렇게 소개 드렸는데요, 실제 <트롯신이 떴다>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신 건지요.
= 제가 만든 여러 프로그램들은 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거든요. <트롯신이 떴다>의 경우 처음엔 국내 트로트 가수들이 외국에 나가서 해외 버스킹을 한다는 포맷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베트남으로 첫 촬영을 다녀와서 두 번째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상황이 급변한 거예요.


Q. 코로나가 터진 거죠.
= 네.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축인 2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외국에 나가지 말라', 그리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지 말라'. 이렇게 되면 저희 프로그램 제작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거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첫 방송이 나간 후 시청률도 그렇고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제작진들과 출연자들이 너무 아쉽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돌파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예요.

Q. 프로그램을 닫을 수는 없으니까…
= 네. 또 당시엔 코로나가 곧 종식될 줄 알았거든요. 우선 외국을 못 나가게 됐으니까, 국내에서 하기로 했어요. 문제는 객석이었죠. 갑자기 객석이 사라졌는데, 이건 어떻게 하지? 당시 발 빠른 아티스트들 사이에선 온라인에서 객석 없이 하는 콘서트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저는 출연자들한테 '자, 앞에 객석이 있다고 생각하고 불러주세요. (시청자들이 나중에 TV로) 다 보실 겁니다.' 이렇게 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Q. 느낌이 안 살 테니까요.
= 그렇죠.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객석에서 영감을 받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지? 그런데 그 때 막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여기 이 (수업을 듣는) 10명이 200명, 300명이 되고, 수업하시는 선생님 자리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제가 필요한 건, 객석의 모습과 함성 소리이니까요. 그래서 급하게 집단 화상 채팅 프로그램을 찾아봤는데 마침 국내 한 업체에서 갖고 있더라고요. 200명, 300명이 들어와서 마이크를 전체적으로 껐다가 켤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 "박수 쳐 주세요", "함성 질러 주세요"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제 입장에선 그때 함성 소리와 박수 소리가 필요했거든요.

Q. 그렇게 실제 랜선 관객과 함께했던 첫 녹화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쌍방향 언택트 콘서트로선 세계 최초였기 때문에 가수들도 전혀 예측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 가수들한테는 비밀로 했었거든요. 객석의 존재 자체를. 가수 선배님들이 도합 경력이 222년인데, 정말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제작진으로서 정말 짜릿했죠. 저희는 '어떻게 하면 공간적인 이질감을 덜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시청자분들도 같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처음엔 대형 LED 스크린 판을 앞에 세울까 했는데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공간적인 이질감이 너무 큰 거예요.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그래, 뺑 에워싸자. 사실 조 아나운서도 아시겠지만, 이렇게 세트 전체를 에워싸는 게 촬영의 문제 때문에 사용을 거의 안 하잖아요?


Q. 네. 저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 그런데 저희는 '2층, 3층으로 케이크처럼 관객들을 올려버리자'.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가수들은 공연에 다들 특화돼 있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익숙할 거다, 그리고 시각적으로도 가수들이 올려다보면, 왠지 진짜 오프라인 공연하는 것처럼 보이겠다, 그랬는데 정말 시각적인 효과가 있더라고요. 웃긴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초창기에 저희 가수 분들이 '자, 2층에 계신 분들, 3층에 계신 분들, 손들어 주세요!' 이 멘트를 하는데 청중들 중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거예요.

Q. 가수들 시점에선 세트의 2층, 3층인데, 집에서 보고 계신 분들은 이해가 안 됐겠죠. 실제로 아파트 2층이나 3층에 사신 분들이 소리를 질렀겠네요.
= 네 그랬어요.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지금도 관객과 가수 사이의 공간적 위화감을 없게 하려 이 세트를 고수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Q. 이밖에도 처음 도입한 쌍방향 언택트 공연이니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 저희 쇼를 보는 관객들의 경우 이게 영상으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포맷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에 아무리 말로 설명해드려도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실제 첫 녹화 때 관객 반 정도가 중도 포기하셨어요. 제작진들조차도 '과연 이게 가능할까?' 걱정이 컸죠. 저희 녹화 시간이 좀 길거든요. 중간에 다들 이탈해서 모든 화면이 까맣게 변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분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급적 가장 오프라인 공연에 가깝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여기에 집착했는데.

Q. 온라인 공연인데, 어떻게 하면 오프라인처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하셨다는 말씀이네요.
= 네. 그리고 그게 저희의 큰 판단 미스였어요.

Q. 판단 미스요?
= 네. 온라인 객석들은 이미 온라인 상황에서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내더라고요 가령, 온라인 화상 채팅 시스템을 보면 청중들이 서로 글로 채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객석들이 서로 눈치 게임도 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객석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새로운 규칙,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제작진들만 계속 오프라인 공연과 비슷해야 한다는 사실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예요.


만약 제가 오프라인 공연장 앞에서 공연을 보러 오신 분께 노트북을 건네면서 '자, 오늘은 이 노트북으로만 보셔야 합니다' 라고 한다면 당연히 화를 내고, 불만을 토로하시겠죠. 그런데 저희 프로그램의 청중들은 본인이 직접 집에서 '나는 오늘 노트북으로 볼 거야', '나는 데스크톱으로 볼 거야', 이렇게 선택을 하신 분들이에요. 제작진들은 그렇다면 그들이 온라인상에서만 즐길 수 있는 '놀 것'을 제공했어야 했던 거죠. 그게 우리의 판단 미스였어요.

온라인 공연이 오프라인과 가장 다른 건 객석이 움직인다는 점이었어요. 온라인 콘서트에선 청중들의 표정 하나하나. 그리고 이분들이 응원 문구를 들었을 때, 글씨 하나하나가 다 보여요. 여태까지 오프라인 콘서트는 어떻게 보면 가수가 일방적으로 음악을 전달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객석에서도 가수를 향해 뭔가 메시지를 보내오더라고요. 서로 상호작용, 교류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물리적 거리를 두기 위한 언컨택트 공연이었었는데, 정서적으로는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 새로운 뉴 컨택트가 발생한 셈이죠.

Q. 그렇겠네요. 객석에서 가수만 바라봤었다면, 이제는 서로 바라볼 수 있고
= 그리고 온라인 객석의 목소리 하나하나가가수에게 전달되는 거예요. 그리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얘기, 그런 건 메시지로. 장윤정 씨도 자신이 그렇게 공연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오롯이 응원 받는 느낌은 처음이라는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Q. '뉴 컨택트'라는 단어, 이 단어가 크게 와 닿는 것 같아요.
= 오프라인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온라인을 생각해내니까 조금씩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당시 오디션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랜선 시스템으로 투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객석을 자세히 관찰해보니까 저희들이 콘서트를 시작할 때, '자, 청중 분들 들어와 주세요. 카메라를 켜주세요' 하면, 한 분씩 깜깜한 상태에서 들어오면서 접속하는 게 보이는데요. 이걸 보고 있다가 '다 같이 카메라를 꺼주세요. 그리고 투표하고 싶으신 분들만 카메라를 켜주세요.' 그러면 한 명, 두 명씩 사람이 들어오는 시각적인 효과도 있고. 그러니 이분들의 수를 세면 투표가 될 수 있겠는 거예요. 그렇게 온라인 투표를 시작하게 됐어요. '온라인 객석'이 '온라인 심사위원'으로 업그레이드 된 거죠.


Q. 시청자가 투명하게 투표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고. 그렇죠? 결국 제작진들에게 고정 관념이 있었고, 관객들이 그 생각을 바꾸게 해준 거네요. 그걸 또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수용했고요.
= 그렇죠. 어떻게 보면 제작진과 관객들의 '뉴 컨택트'가 만들어낸 기획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또 이런 식으로 투표했더니 새로운 면도 보이더라고요. 저희가 오프라인에서 청중 100명을 상대로 투표하면 정말 100명의 의견이잖아요? 그런데 랜선 객석을 상대로 투표하다 보니까 집에서 혼자 보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가족들이 같이 보시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인당 1표가 아니고 집, 그러니까 세대 투표가 되더라고요. 100명의 화면이 켜져 있으면 이게 100명의 의견이 아니라 그 집에 같이 계시는 7명이 될 수도 있고, 4명도 될 수 있고. 가족끼리 '나는 이 사람이 좋은데', '나는 저 사람이 좋은데', 이렇게 상의를 해서 의견을 내거든요. 그러니까 100개의 모니터가 켜져 있으면, 이게 200명, 300명, 400명의 투표 결과가 될 수도 있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랜선 콘서트를 세계 최초로 기획 개발하셨는데, 미래는 어떻게 보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 랜선 콘서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시 우리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랜선 콘서트가 없어지거나, 점점 필요 없어지는 것. 저희가 이 랜선 콘서트를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는데, 하면 할수록 가수 선배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아, 관객을 보고 싶다. 관객들의 진짜 박수 소리가 듣고 싶다'예요. 이걸 평생 해야 된다는 상상은 너무 끔찍해요. 다시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시 객석 여러분들을 모니터가 아닌 실제로 만나볼 수 있어야 합니다.

Q. 랜선 콘서트를 기획한 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이렇게 답변해주실 줄 알았는데요.
= 저희 출연자인 주현미 선배님이 '어느 멋진 날'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어느 멋진 날, 돌아갈 수 없는 날, 그날.'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했던 그 날이 정말 어느 멋진 날이었더라고요. 그 어느 멋진 날로 빨리 돌아가서 공연을 보며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여러분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SBS 보도본부 미래팀의 취재파일은 이라는 SBS의 대표 사회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을 중심으로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연중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 보고, 의미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전하는 뉴스레터 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SBS 미래팀의 취재파일 내용을 남들 보다 먼저 접하고 싶은 분은 SDF다이어리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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